모스크바 군사 장비 전시회장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함께 소총을 살펴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2022년 2월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2년 4개월 가까이 전쟁을 지휘해온 세르게이 쇼이구(68) 러시아 국방 장관이 12일 전격 교체됐다. 푸틴의 측근 중 측근으로 2012년 11월부터 12년간 국방 장관 자리에 있었던 그가 물러나면서 푸틴의 인사(人事)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앞서 러시아의 침공에 항전 중인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도 지난해 9월 올렉시 레즈니코우 국방장관을 루스템 우메로우(42) 현 장관으로 교체했다.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통념을 깨고 교전 중인 두 나라가 모두 국방장관을 바꾸게 된 셈이다.

쇼이구의 후임은 푸틴의 경제 보좌관을 지낸 안드레이 벨로우소프(65) 전 제1부총리다. 푸틴은 이날 벨로우소프를 새 국방 장관으로 임명하는 것을 골자로 한 내각 개편안을 연방평의회(상원)에 전달했다. 러시아는 대통령이 장관 후보를 지명하면, 이를 상원이 심의해 통과시키는 방식으로 개각을 한다. 러시아 상원은 여당인 통합 러시아당이 전체 178석 중 4분의 3이 넘는 138석을 점유하고 있고, 다른 정당들도 대부분 친정부 성향이기 때문에 푸틴의 개각안은 무난히 통과될 전망이다.

러시아의 국방 장관 교체는 최근 러시아군이 전선 전역에서 대대적인 공세를 펼쳐 우크라이나를 잇따라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나왔다. 더구나 군 경험이 전무한 경제 관료를 국방 수장으로 앉혔다는 점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를 놓고 푸틴이 전쟁 장기화로 인해 중구난방 비대해진 국방 부문의 비용 구조를 개선하고 러시아군의 운영 체계를 효율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관측이 나온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경제 전문가를 국방 장관에 기용한 것에 대해 “오늘날 전장에서는 혁신에 더 개방적인 사람이 승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국방 부문의 지출이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의 7.4%를 차지하는 등 (구소련 시절인) 1980년대 수준과 비슷해지고 있다”며 “이 분야 지출을 국가 경제 전반에 더욱 부합하게 해줄 민간인을 국방 장관 후보로 올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쟁은 당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신속히 굴복시키고 조기에 종결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미국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지원을 받은 우크라이나가 예상을 깨고 일부 점령지에서 러시아군을 쫓아내며 전세가 역전됐다. 이후 우크라이나가 지난해 재반격에 실패하고, 장기전 체제로 돌아선 러시아의 역공이 최근 탄력을 받으며 분위기가 다시 바뀌고 있다.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러시아 경제가 선방하면서 푸틴은 대선에서 압승, 5선 임기까지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군사와 경제를 아우르는 큰 틀에서 전쟁을 이끌어갈 지휘관이 필요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로이터는 “푸틴이 국방비를 더욱 잘 활용하고 군산 복합체를 잘 관리할 수 있는 경제학자를 신임 국방 장관에 임명했다”며 “우크라이나전은 물론 서방과 경제 전쟁에서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고 분석했다.

쇼이구 장관의 2선 후퇴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군과 정보기관, 군산 복합체 출신으로 채워진 푸틴의 이너서클(최측근) ‘실로비키(siloviki)’ 중 한 사람이다. 1990년대 초반 소련 해체기 러시아 비상대책위원회 의장에 오르면서 푸틴과 연을 맺었고, 이후 30년 넘게 그의 충실한 협력자로 일해왔다. 1999년 푸틴의 친위 정당인 ‘통합 러시아당’의 전신을 창당했고, 대통령 직속 장관 중 하나인 비상사태부 장관으로 12년간 재직했다. 2012년 잠시 모스크바 주지사를 맡았다가, 그해 11월부터 지금까지 무려 12년간 국방 장관으로 일해왔다.

그는 푸틴의 또 다른 측근인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과 함께 군부를 철저히 통제, 푸틴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침공이 2년 넘게 장기화되도록 만든 책임자라는 비판도 받아왔다. 이는 지난해 6월 러시아 민간 용병대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일으킨 무장 반란의 명분이기도 했다. 푸틴은 그러나 당시 쇼이구 국방 장관을 교체하지 않았다. 사실상 ‘무한 신뢰’를 받았던 그가 교체된 것을 놓고 현지 언론은 “최근 쇼이구의 측근 티무르 이바노프 전 국방 차관이 뇌물 수수 혐의로 체포되면서 그의 입지가 불안정해졌다는 평가가 있다”고 전했다.

쇼이구는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로 임명될 예정이다. 형식상 국방 장관보다 상급자로 나름 ‘영전’의 형식을 취했다. 국가안보회의는 러시아의 국방·안보 분야 의사 결정 최고 기구다. 한편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 장관과 블라디미르 콜로콜체프 내무 장관, 알렉산드르 쿠렌코프 비상사태부 장관 등은 유임됐다. 라브로프 장관은 2000년부터 25년째 러시아 외무부를 이끌고 있는 푸틴의 최장기 재임 각료다. 이 밖에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 빅토르 졸로토프 국가근위대 대장, 드미트리 콘체프 연방경호국(FSO) 국장, 알렉산드르 보르트니코프 연방보안국(FSB) 국장. 세르게이 나리시킨 대외정보국(SVR) 국장 등 군 핵심 인사들도 자리를 지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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