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차기 대통령 선거의 공화당 후보이자 전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에게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 배심원단 12명은 지난 30일 사업 기록 위조 혐의 34건에 대해 만장일치로 유죄 평결을 내렸다. 혐의 숫자가 많아 트럼프가 범죄를 여러 건 저지른 듯 보인다. 하지만 혐의는 모두 2016년 대선 당시 성인물 여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에게 ‘성 추문 입막음’ 대가를 지급한 단일 사건에 관한 것이다. 이와 관련한 일련의 행위에 대해 각각 혐의를 적용하면서 혐의 숫자가 늘었다.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은 2016년 대니얼스에게 13만달러를 주고 입막음을 했고,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후 2017년 2~12월에 걸쳐 트럼프 소유 기업(트럼프 재단)을 통해 이 비용을 코언에게 나누어 갚았다. 이 과정에서 재단 장부엔 송금 내역을 ‘법률 자문료’라고 허위로 기재하는 등 사업 기록을 조작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선거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대니얼스와의 관계를 숨기기 위한 대가성 비용인데도 이를 ‘코언에게 주는 법률 비용’이라고 거짓으로 기록했다는 것이다.

30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유죄 평결이 나온 뒤 앨빈 브래그 맨해튼 지검 검사장(가운데)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AFP 연합뉴스

트럼프에게 적용된 혐의는 크게 셋으로 분류할 수 있다. ①입막음 비용을 ‘법률 자문료’라고 거짓으로 적은 청구서를 코언이 트럼프 재단에 보내게 했고 ②트럼프 재단은 코언에게 돈을 주면서 이를 ‘법률 자문료’라고 장부에 허위로 기재했으며 ③이 과정에서 코언에게 발급한 수표에 대한 내역도 ‘법률 자문료’라고 기록해 두었다는 것이다. ①과 ③에 대해서 청구서 발급과 수표 발행 한 건을 혐의 하나로 잡아 각각 11건(총 22건), ②에 대해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12건의 혐의가 적용됐다.

그래픽=김하경

문제의 사건은 트럼프가 2006년 대니얼스와 캘리포니아 레이크 타호의 한 호텔에서 성관계를 가진 의혹에 관한 것이다. 트럼프는 성관계 자체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사건이다. 2016년 대선에 출마한 트럼프는 대니얼스가 자신과의 성 추문을 외부에 공개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당시 자신의 개인 변호사였던 코언을 통해 입막음을 위한 돈 13만달러를 전달했다.

그래픽=이철원

코언은 2017년 2월 트럼프와 대통령 집무실에서 입막음 합의금 변제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고, 그 후 법률 자문비 명목으로 총 42만달러를 수표로 받았다고 주장한다. 코언의 진술에 따르면, 이때 청구한 ‘법률 자문비’라는 명목의 청구서는 가짜였고 사실은 대니얼스에게 준 입막음 대가와 코언의 수고비에 대한 대금이었다. 검찰은 코언의 녹음 파일, 통화 내역, 송금 영수증 사본, 이메일 등 트럼프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재판 과정에 공개했고 배심원단은 이를 토대로 트럼프가 유죄라고 판단했다. 검찰은 각각의 조작 행위에 대해 ‘E급 중범죄(Class E Felony)’를 적용했다. 중범죄 중엔 가장 낮은 등급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서 열린 형사 재판에서 배심원단이 34개 혐의 모두에 대해 유죄 평결을 받은 귀 트럼프타워에 도착해 지지자들을 향해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법원은 트럼프의 형량과 징역 여부를 7월 11일 오전 10시(현지 시각)에 선고한다. 그 전에 변호인과 검찰 측은 각자가 주장하는 처벌 수위에 대한 논거를 제시하는 서류 등을 법원에 제출한다. 재판을 담당한 후안 머천 판사는 이 모든 기록을 종합해 검토한 뒤 형량을 결정한다. CNN은 “트럼프는 각각의 혐의에 대해 최대 4년, 도합 20년 징역형까지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현지 전문가들은 법원이 트럼프를 구속 수감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전망한다. 트럼프가 77세의 고령이고 범죄 전과가 없다는 점 등이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뉴욕시 변호사 마이클 바흐너는 NBC에 “기업 문서 조작으로 유죄가 선고된다면 집행유예가 정상적일 것”이라고 했다. 법원이 징역형을 선고하면서 보호관찰형을 선고할 수도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전직 대통령을 교도소에 가둔다면 경호 등 복잡한 문제가 많아진다. 이 때문에 플로리다 자택에서 보호관찰을 받도록 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이 경우 보호관찰관의 허가 없이 여행해서는 안 되고 집도 무작위로 수색받을 수 있다.

트럼프는 유죄가 선고되는 즉시 항소한다는 계획이다. 트럼프가 항소하면 뉴욕 항소법원에서 재판하게 된다. 트럼프가 항소법원 판결에도 불복하면 뉴욕주(州) 대법원에서 한 번 더 판단을 받을 수 있다. 뉴욕주 법원 관계자는 “주 대법원 판결에 불복하면 연방 대법원으로 올라가는 것을 시도는 해 볼 수 있지만 (개인의 형사 사건이) 받아들여질 확률이 매우 희박하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트럼프는 이번 재판 외에도 세 건의 추가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2020년 대선 불복 관련 의회 난입 선동, 백악관 기밀문서 불법 반출, 2020년 대선 관련 조지아주 투표 결과 조작 시도 등에 관한 재판인데 11월 대선 전에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작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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