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의 은신처를 급습한 ‘여름 씨앗들’ 작전에서 가까스로 구출된 이스라엘인 인질 네 명이 가족과 재회한 모습.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알모그 메이르 잔, 노아 아르가마니, 안드레이 코즈로프, 샬로미 지브와 가족들. 이들은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의 이스라엘 급습으로 납치되어 245일 동안 가자지구에 억류돼 있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이 8일 오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중부 누세이라트의 주택 두 곳을 습격해 여성 한 명과 남성 세 명 등 인질 총 네 명을 구해냈다. 가자지구의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와 전쟁을 벌인 이후 가장 많은 인질을 구출한 성과다. 인질들은 하마스의 지하 땅굴이 아닌 민가에 붙들려 감시받았고, 이곳에선 민간인 수십 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피하고 인질을 숨기려고 민간인을 ‘방패’로 내세워왔음이 다시 확인된 셈이다. 이스라엘은 민간인 사망자가 늘어나는 데 대한 국제적 비난을 감수하면서 자국 인질을 구해내는 큰 규모의 작전을 감행했다. 가자보건부 주장으론 팔레스타인인 274명이 사망하고 약 600명이 다쳤다.

그래픽=송윤혜

이스라엘군은 이날 오후 1시 30분 긴급 성명을 내고 “가자 중부 누세이라트 시장(市場) 인근 주거 지역 내 하마스 은신처에서 인질 총 네 명을 구출했다”고 발표했다. 알모그 메이르 얀(22), 안드레이 코즐로프(27), 슬로미 지브(40) 등 남성 셋과 여성인 노아 아르가마니(26)다. 네 명 모두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 남부 레임 키부츠에서 음악 축제에 갔다가 인질로 잡혔다. 납치 당시 오토바이 뒷좌석에 태워진 아르가마니가 “죽이지 말아 달라”고 울부짖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세계적 공분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발견 당시 인질들은 모두 방에 갇혀 있었고 건강 상태는 괜찮았다고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밝혔다. 이스라엘은 약 한 달 전에 이 지역에 인질이 억류됐다는 정보를 입수했으나 사람이 많이 오가는 시장 부근에서 군사작전을 감행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요건 탓에 시간이 지체됐다고 한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스라엘 당국자를 인용해 “이스라엘군은 인질 구출 작전에 필요한 요소를 철저히 갖추기 위해 수주 동안 준비했다. 인질이 억류됐다고 추정되는 건물 모형을 만들어 집중적으로 훈련했고 작전 개시 수 분 전에야 승인이 떨어졌다”고 전했다. 인질 구출에는 이스라엘군 정보기관인 ‘신베트’와 국경수비대 소속 대테러 부대 ‘야맘’ 요원이 대거 동원됐다.

이날 작전은 오전 11시쯤 시작해, 오후 1시 30분 이스라엘 정부가 인질이 무사히 돌아왔다고 발표함으로써 마무리됐다. 인질 구출에 성공했음을 알리는 암호는 ‘다이아몬드를 손에 넣었다’였다. 대낮에 작전을 감행한 것은 하마스의 허를 찌르는 의도된 전략이었다고 한다. 이스라엘군은 인질과 자국 병사를 엄호하고자 하마스가 로켓탄을 발사하는 지점을 집중적으로 폭격했다. 이후 이스라엘군과 인질들은 하마스의 총탄과 로켓포가 빗발치는 가운데 헬기를 타고 작전 지역을 벗어났다. 인질들은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후 피랍 245일 만에 가족과 재회했다. 러시아와 이스라엘 이중국적자인 코즐로프의 부모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스라엘로 날아와 9일 아들과 상봉했다.

하마스는 이날 “인질 구출 작전 탓에 200명 넘는 주민이 사망하고 400여 명이 다치는 ‘학살’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 대표는 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 “가자지구에서 또다시 민간인 학살이 발생했다는 보도는 충격적”이라고 비난했다.

이스라엘군은 “100명 미만 팔레스타인인이 희생된 것으로 안다”며 “이 중 테러리스트가 몇 명인지는 모른다”고 밝혔다. 하마스가 민간인을 ‘방패’ 삼아 내세웠지만, 이 중 하마스 요원들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인질 구출을 위해선 대대적 작전이 불가피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수석 대변인(소장)은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은 의도적으로 인질들과 함께 민간인들 사이에 뒤섞여 있었다. 그들은 민간인들 뒤에서 (인질을 데리고 나가는 이스라엘군을 향해) 총격을 해댔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하마스가 우리를 공격하려고 민간인을 악용하는 방식은 비극적”이라고 했다.

8일 이스라엘군이 인질 구출 작전 과정에서 벌인 포격과 공습으로 파괴된 가자지구 중부 누세이라트 난민촌의 한 건물. 이스라엘군은 “이번 작전으로 발생한 사상자는 100명 미만”이라고 발표한 반면 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하마스 측은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최소 210명이 사망하고 400여 명이 다쳤다. 끔찍한 무고 민간인 학살”이라고 비난했다. /신화 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은 이번 작전에 ‘여름의 씨앗(Seeds of Summer)’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씨앗이 잘 익어 거두기 좋은 때를 뜻하는 말로, 지금까지 들인 노력이 결실을 보았다는 의미로 알려졌다. 이스라엘군은 앞서 인질 구출 작전을 세 차례 벌였으나 신통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지난해 10월 말 교전 중 이스라엘 여군을, 지난 2월에는 가자 최남단 라파에서 남성 인질 두 명을 구출했다. 지난해 12월엔 작전 실패로 25세 남성 한 명이 숨지고 군인 두 명이 전사하는 굴욕도 겪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병원을 방문해 “우리는 이스라엘이 테러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며 “모든 인질을 구해내는 임무를 마칠 때까지 느슨해지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가리 대변인은 “인질 구출 작전은 (1976년 우간다에서 100명이 넘는 이스라엘 인질을 구출한) ‘엔테베 작전’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날 작전엔 미국과 영국이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알려졌다. NYT는 “이스라엘의 미국 관리들이 인질과 관련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보도했다.

이번 작전으로 지난해 10월 하마스에 납치된 250여 명 중 여전히 가자지구에 남은 인질은 120명 이하로 줄었다. 이스라엘군은 이 중 시신이 39구 이상으로, 실제 생존자는 80여 명이라고 보고 있다. 남은 인질 가족 중 일부는 “이번 작전으로 남은 인질들에 대한 위협이 더 커졌을 수 있다”며 이스라엘 정부에 “인질 귀환을 위한 휴전 협상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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