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자 멜로니(왼쪽) 이탈리아 총리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AP 연합뉴스

극우가 예상보다 많은 의석을 확보하며 부상한 유럽의회(EU) 선거 결과의 여파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유럽의 미래가 세 여성 정치인에 달렸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EU의 ‘대통령’ 격인 집행위원장을 연임할 가능성이 큰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충격패를 안긴 극우 정당 국민연합당(RN)의 마린 르펜, 강경 보수로 이탈리아에서 최다 득표당이 된 이탈리아의형제들(FdI)을 이끄는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에 시선이 집중된다. 총 720석으로 구성된 유럽의회는 EU 소속 27국이 각각 선거를 치른 후 그 결과를 합쳐 확정하기 때문에 각 나라의 정치 지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10일 잠정 집계 결과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속한 FdI은 29%를 득표하며 승리해 강한 지지 기반을 다시 확인했다. FdI의 선전(善戰)은 유럽의회의 강경 우파 정치 그룹(국가의 정당 격) 유럽보수와개혁(ECR) 의석수가 73석으로 5년 전 선거보다 4석 늘어나는 데 결정적 동력이 됐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멜로니는 유럽 주요 국가 중 가장 안정적인 정부의 수장임을 증명했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EU에서도 추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백형선

멜로니는 이탈리아에서 이민 통제 강화, 정부의 경제 개입 확대, 동성애 권리 제한 등을 추진하고 있다. 강경 보수로 분류되는 그는 이번 선거를 통해 자국 내 입지 강화와 함께 EU에서도 결정적 역할을 할 정치 지도자로 떠올랐다. 2019년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EU 수장에 올랐던 폰데어라이언의 연임에 멜로니의 지지가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이끄는 중도 성향 정치 그룹 유럽국민당(EPP)은 예상보다는 많은 186석(26%)을 차지해 원내 1당 자리를 지키게 됐다. 그러나 집행위원장 연임을 위해서는 유럽의회 인준 투표 가결에 필요한 과반 찬성표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정치 그룹의 도움이 필수다. 이번 선거에서 EPP가 주도한 ‘중도 대연정’ 일원인 사회민주진보동맹(S&D)·중도 자유당그룹(RE) 의석을 더하면 과반(361석)을 달성할 전망이지만 무기명 방식이라 이탈 표가 나올 수 있어 안심은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코노미스트는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 입장에서는 멜로니 총리의 지지를 확보해 연임에 확실한 동력을 얻어야 하는 상황”이라며 “그 과정에 중도 정책을 다소 ‘오른쪽’으로 수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이런 이유로 선거 전부터 멜로니 총리에게 꾸준히 공을 들여 왔다. 지난달 23일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열린 TV 토론에서 “멜로니 총리는 분명한 친(親)EU 인사”라며 “그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대통령)에 반대하고 법치주의를 지지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이들이 협력하고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연임에 성공한다면 난민 정책 개혁, 친환경 정책 ‘후진(後進)’등을 위한 유럽 개혁이 힘을 받게 될 것”이라며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등 ‘정장을 입은 전통적인 남성 지도자’들을 제치고 두 여성의 역할이 앞으로 한동안 두드러져 보일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선거 득표율이 15%로 극우 RN의 절반 득표에 그친 마크롱은 9일 의회를 해산하고 오는 30일 조기 총선을 실시한다는 ‘특단의 대책’을 발표했다. 그에게 ‘한 방’을 먹인 극우 정당 RN은 이 당을 만든 정치인 집안 출신인 르펜 원내대표가 이끌고 있다. 이민 규제 강화, 탈세계화, 우크라이나 EU 가입 반대 등을 주창하는 ‘극우의 대모’로 불린다. 그 또한 멜로니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RN이 속한 정치 그룹 ‘정체성과 민주주의(ID)’는 58석을 얻었는데, 멜로니가 속한 ECR(73석)과 연정을 꾸릴 경우 131석이 된다. 르펜은 독일 극우 정당 ‘독일을위한대안(AfD, 9석 확보)’ 등을 끌어들여 극우파를 원내 거대 정치 세력으로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르펜은 이미 지난달 멜로니 총리에게 “지금이 바로 단결해야 할 때”라며 “유럽의회에서 둘째로 큰 정치 그룹이 될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연정을 제안한 상황이다. 멜로니 총리는 아직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폰데어라이엔·멜로니·르펜 세 여성의 ‘합종연횡’ 방식에 따라 앞으로 5년간 EU의 의제가 어디를 향할지가 결정될 것으로 전망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EU가 단합해 지원하는 지금의 방식에 변화가 가해질 가능성도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등으로 인해 유럽은 현재 불안한 위치에 놓여있다. 이런 위험에 대처하려면 EU 수준에서 일관된 리더십이 필요한데, 성공 여부는 세 여성(멜로니·폰데어라이엔·르펜)의 선택에 달렸다”고 했다.

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연합(RN) 원내대표.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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