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패션 디자이너 아바카시의 패션 브랜드 ‘피냐(Pi?Ca)’의 ‘브라질 컬렉션’ 의상을 입은 모델들이 브라질 국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파벨라(빈민가) 출신인 아바카시는 극우 세력에 빼앗긴 ‘국기 패션’을 되찾겠다는 뜻에서 이 의상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나에게 브라질코어는 패션 트렌드 이상”이라며 “우리가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지를 보여준다”고 했다. /인스타그램

요즘 유행하는 패션 용어 중에 ‘브라질코어(Brazilcore)’라는 말이 있다. 패션계에서는 핵심을 의미하는 ‘코어(core)’를 접미사로 붙여 트렌드를 가리키는 신조어를 만드는데, 브라질 국기의 노란색과 초록색을 조합한 패션을 브라질코어라고 부른다. 선명한 원색(原色)의 조합이 원시적이고 강렬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노출이 많은 여름 패션으로 특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브라질코어 유행의 이면에는 브라질에서 국기(國旗)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문화 전쟁이 숨어 있다. 브라질 극우 세력이 애국심을 내세우며 국기를 자신들의 상징으로 선점하자, 2030 젊은 세대들이 “국기는 국민 모두의 것”이라고 반발하는 구도다. 세대와 정치색 차이에서 비롯한 갈등이 국기 쟁탈전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원래 브라질 국기의 노란색과 초록색을 조합한 패션은 파벨라(빈민가) 사람들의 것이었다. 파벨라 사람들의 희망인 브라질 축구 대표팀의 유니폼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가난한 파벨라 사람들은 천문학적 연봉을 받으며 세계 무대를 호령하는 축구 선수들을 우상으로 여겼다. 국가적 자부심의 상징인 대표팀 유니폼의 노란색과 초록색은 그들의 일상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전 대통령이 지난 3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알렉산드르 라마젬의 리우데자네이루 시장 선거 예비후보 출정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브라질 국가대표팀의 유니폼을 입고 있다./AFP 연합뉴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전 대통령과 미셸 보우소나루 전 브라질 영부인(가운데)이 4월 21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지지 행진에 참석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그런데 빈민가 사람들은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을 추종하는 극우 세력에 이 상징을 빼앗겨 버렸다. 극우 세력이 국기를 내세워 애국심에 호소하고 나선 것이다. 소수자를 탄압하는 극우 세력과 같은 편에 설 수 없었던 파벨라 사람들은 ‘국기 패션’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브라질 패션 디자이너 아바카시는 도이체벨레(DW)에 “보우소나루는 우리에게서 국기를 빼앗아갔다”며 “그가 대통령이 된 후 파벨라에서 브라질의 미학이 사라져 버렸다”고 했다.

패션모델 헤일리 비버의 브라질코어(Brazilcore) 패션/인스타그램

그러나 노란색과 초록색의 강렬한 색 조합이 외국 셀럽(유명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며 상황이 바뀌었다. 패션 모델이자 팝스타 저스틴 비버의 아내인 헤일리 비버가 2022년 인스타그램에서 이 패션을 선보인 후 브라질코어가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마돈나, 비욘세, 제이미 폭스 등 유명 팝스타와 배우들이 유행 대열에 합류했고, 패션지 보그 프랑스판은 브라질코어를 2023년 여름의 대표 트렌드로 꼽기도 했다. 이런 바람을 타고 브라질 젊은이들도 다시 노란색과 초록색의 조합을 ‘힙한(자유롭고 멋진)’ 패션으로 띄우기에 나섰다. DW는 “브라질코어는 정치적 오용(誤用)으로부터 국가의 상징을 되찾고 문화적 자부심을 통해 국가 정체성을 재정의하는 중요한 운동으로 발돋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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