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연방대법원 청사 밖에서 낙태권 보장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AFP 연합뉴스

여성의 낙태권(落胎權·the right of abortion)이 오는 11월에 치러질 미(美) 대선의 판을 흔들 새로운 ‘게임 체인저’로 떠오르고 있다. 낙태권에 대한 찬반 목소리가 미 전역에서 뜨겁게 격돌하며 이번 대선의 가장 첨예한 정치 이슈가 된 것이다.

양쪽 입장이 격렬하게 맞서면서, 낙태권 찬반 논쟁이 기존 대선 투표에 관심 없던 이들까지 투표장으로 불러들이는 핵심 쟁점이 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초박빙 접전을 벌이는 상황에, 낙태권 이슈가 대선의 승패를 가를 결정적 한 방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지난 24일은 미국 대법원이 낙태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을 뒤집은 지 2년째 되는 날이다. 대선 주자들은 이날 낙태권 논쟁에서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앞다퉈 입장을 내놓았다. 바이든은 “트럼프가 임명한 보수 성향 판사들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으면서, 수백만명 여성의 권리를 빼앗고 생식의 자유를 앗아갔다”면서 “이번 대선에서 공화당이 이긴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지난 22일 한 행사에서 “아기의 생명은 대단히 중요하다”면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한) 대법관들에게 감사를 전한다”고 했다.

그래픽=양인성

Q1. 2년 전 무슨 일이 있었나

1971년 미 텍사스주에 사는 노마 매코비라는 여성은 성폭행으로 원치 않은 임신을 했음에도 낙태 중절 수술을 거부당하자 소송을 시작했다. 매코비는 당시 신변 보호를 위해 ‘제인 로’라는 가명을 사용했고, 피고 측은 텍사스주의 지방 검사 헨리 웨이드였다. 2년 소송 끝에 1973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낙태권이 헌법에 기초한 사생활 권리에 포함된다고 보고 이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판결했다.

논쟁은 2022년 6월 미 대법원이 이 판결을 뒤집으면서 다시 시작됐다. 대법원 판사 9명 중 3명이 트럼프 행정부가 임명한 보수 성향의 판사로 바뀌면서 미 연방이 낙태권을 더는 보장하지 않게 된 것이다. 낙태 제한 여부는 각 주 정부가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됐다.

Q2. 판결 이후 2년 동안의 변화는

현재 미국 50주 중 앨라배마·아칸소·아이다호·텍사스 등 14주에서 임신 초기 단계부터 낙태를 금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주에선 산모가 심각한 임신합병증을 겪거나, 치명적 기형의 아이를 가져 생명의 위협을 받는데도 낙태 시술을 받지 못하고 숨지는 경우까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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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낙태권 논쟁은 미국 대선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나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히자 여성과 진보 성향 시민들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정부가 (낙태라는) 사적 결정에 개입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수백만명의 미국인들이 반란에 동참하고 있다”고 했다. 2020년 미 전역을 휩쓴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10년 전 보수주의 정치운동 ‘티 파티’만큼이나 거대한 정치 운동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이미 수백만명이 낙태에 대한 찬반을 주민(州民) 투표에 부치자는 청원에 서명했다. 이에 대선 투표날 최다 16주에서 이에 대한 주민 투표가 치러질 수 있다.

Q4. 낙태권에 대한 투표는 어떻게 치러지나

각 주에서 일정 비율이 넘게 유권자 서명을 받으면, ‘임신 24주 이내 낙태를 허용하는 개정안’에 대한 찬반 투표를 11월 5일 대선일 시작한다. 미 언론들은 ‘낙태 투표’가 대선 투표율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 보고 있다. 대선에 관심 없던 이들도 낙태에 대한 찬반을 표시하기 위해 투표소에 나올 가능성이 높아서다. 미국 질병 정책 리서치센터 KFF가 실시한 최근 여론조사에서 성인 8명 중 1명은 “이번 대선에 낙태 이슈가 투표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로 대 웨이드' 판결 폐기 2주년을 맞은 24일 미국 워싱턴 DC 연방대법원 청사 앞에서 시위대가 낙태권 보장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손에는 "안전한 낙태는 인간의 권리" "낙태 합법화를 유지하라" 등 문구가 적힌 패널을 들었다. /로이터 연합뉴스

Q5. 누구에게 유리할까

낙태 옹호론자들이 많을수록 민주당에 유리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전망이다. 특히 ‘스윙 스테이트(경합주)’인 애리조나·네바다·펜실베이니아 등에선 낙태에 찬성하는 중도 및 진보 성향의 유권자가 투표장에 많이 나올 수록 민주당이 우세하게 된다. 미 대선은 현재 트럼프가 바이든을 약간 앞서는 박빙 상황이어서 이들 경합주 하나하나의 결과가 대선 판도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 공화당도 이를 의식하고 있다. 온라인 매체 액시오스는 “공화당 인사 중 일부는 선거에서 질까 두려워 강경한 낙태 반대 입장과 거리를 두고 있다”고 했다.

☞로 대 웨이드 판결

임신 24주까지 낙태를 여성의 헌법상 권리로 보장한 판결.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세 번째 아이를 임신한 여성 노마 매코비가 텍사스주 낙태 금지법을 무효화하는 소송을 1971년 제기, 1973년 대법원에서 7대2로 위헌 판결을 받아낸 데서 유래했다. 당시 매코비가 사용한 가명 로(Roe)와 댈러스 지방검사장 웨이드(Wade)의 이름을 땄다. 2022년 6월 폐기되기 전까지 미국에서 여성의 신체적 자기 결정권을 법적으로 보장한 대표적인 사례로 인용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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