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서인도제도 가이아나에서 열린 T20 크리켓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인도팀의 주장 로힛 사르마가 경기에 임하고 있다./AP 연합뉴스

유럽 대륙이 축구로 달아오른 요즘, 지구 반대편에선 크리켓의 열기가 뜨겁다. 인도·파키스탄 등 옛 영국 식민지 국가에서만 열광한다고 알려졌던 크리켓의 인기가 올해를 기점으로 미국에서도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제크리켓평의회(ICC) 남자 T20 월드컵 예선전이 올해 처음 미국에서 치러지고 미국 팀이 뜻밖에 선전(善戰)한 후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크리켓은 야구처럼 배트로 공을 치지만 11명이 뛰고 2이닝으로 구성되는 등(야구는 기본 9이닝) 차이가 있는 스포츠다.

크리켓은 본래 전 세계서 축구 다음으로 인기 있는 종목이다. 16세기 영국에서 시작, 영국의 식민 통치를 받은 남아시아 및 아프리카 나라를 중심으로 널리 퍼졌다. 특히 인도·파키스탄에선 ‘국민 스포츠’로 불리며 폭발적 인기를 누린다. 하지만 야구·농구 등이 대세인 미국에선 인기가 적어 ‘변방의 게임’으로 분류됐다. 이 낯선 스포츠가 어떻게 미국에서 관심을 끌게 됐을까.

가장 큰 계기는 크리켓 월드컵이 미국과 서인도제도 공동 개최로 치러지면서 최약체인 미국팀이 자동 출전권을 얻은 것이다. ICC가 크리켓 저변을 넓히기 위해 처음으로 미국을 끌어들인 결과다. ‘국가 대표팀’을 갑자기 만들어야 하게 된 미국은 인도·파키스탄계 등 이민자들을 위주로 팀을 급조해 출전했다. 뉴욕타임스는 “한 주전 선수는 (미 IT 기업) 오러클에서 개발자로 일하는 사람”이라고 전했다. ‘구색 맞추기’에 가까웠던 미국 팀은 그러나 이달 초 예선에서 캐나다·파키스탄을 상대로 잇따라 승리하면서 이변을 일으켜 화제 몰이를 했다. 최강 팀인 파키스탄을 떨어뜨린 미국은 결국 본선 격인 ‘수퍼 에이트’에서 탈락했지만 많은 크리켓 팬을 형성하는 데는 성공했다.

크리켓을 그리워하던 미국의 인도·파키스탄계 이민자들이 몰리면서, 텅 빌 줄 알았던 미국의 경기장은 잇따라 매진됐다. 예를 들어 지난 9일 뉴욕에서 치러진 인도 대 파키스탄 토너먼트전에선 3만4000석 규모 스타디움이 관객으로 꽉 찼는데 NYT는 “당초 6~25달러 정도였던 입장권이 중고 마켓에서 최대 3500달러에까지 거래됐다”고 전했다.

IT 거물 중 인도계가 늘고 있다는 것도 크리켓엔 호재다. 미국 내 리그가 활성화할 경우 넉넉한 후원자가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뉴욕에서 경기가 열리자 마이크로소프트(MS), 어도비 등 쟁쟁한 기업들이 광고로 후원했다. MS 최고경영자(CEO) 사티아 나델라, 어도비 CEO 샨터누 너라연 등은 모두 인도계다. 한편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맞붙는 올해 크리켓 월드컵 결승전은 29일 바베이도스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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