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현지시각)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오크흐마트디트 어린이병원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중심부에 있는 우크라이나 최대 어린이 병원 등이 8일 러시아가 발사한 미사일의 공습을 받아 최소 41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부상했다. 로이터는 이날 “우크라이나 전역을 러시아가 미사일로 공격해 민간 시설과 주거·상업용 건물 다수가 파괴됐다. 수개월 만에 가장 치명적인 공습이었다”고 보도했다. 이날 러시아의 공격은 9일부터 사흘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 회의를 앞두고 감행됐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키이우 및 크리비리흐·드니프로·슬로우얀스크 등이 러시아의 연쇄 공격을 받았으며, 방공 시스템이 킨잘 등 초음속 미사일을 포함해 미사일 총 38발 중 30발을 격추했다고 밝혔다. 유엔은 러시아의 대규모 폭격으로 어린이 병원 등에서 민간인 피해가 발생한 사태와 관련해 9일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그래픽=양진경

국제형사재판소 규정에 따르면, 병원과 병자와 부상자가 밀집한 장소를 의도적으로 표적으로 삼는 것은 전쟁 범죄에 해당한다. 러시아 공습이 발생한 어린이 병원의 현장에 있던 우크라이나 기자들이 본지에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기록한 기사를 보내왔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 범죄를 기록하는 ‘레크닝 프로젝트(The Reckoning Project)’ 소속 안젤리나 카랴키바, 가나 마모노바 두 기자는 이날 전쟁 피해 취재를 위해 병원 부근을 방문했다가 피해를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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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오흐맛디트 어린이병원. 우크라이나에서도 가장 큰 의료 센터이자, 매일 600여 명의 어린이가 진료를 받는 이곳에, 러시아가 발사한 미사일이 떨어졌다. 슬퍼할 시간은 없다. 일부는 부서진 병원 건물의 잔해를 치우기 위해 황급히 모였고, 의료진은 다친 아이들을 품에 안고 뛰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공습경보가 울린 시간은 업무가 시작된 직후인 오전 10시 30분이었다. 미사일 중 대부분은 우크라이나 방공 시스템에 격추됐지만 일부가 주거용 건물, 공장 그리고 어린이 병원인 ‘오흐맛디트’에 떨어졌다. ‘오흐맛디트’는 우크라이나어로 ‘어머니와 아이를 돌보다’라는 뜻이다.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큰 의료 센터 중 하나로 매일 어린이 약 600명이 진료를 받는다.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이래 전국 각지에서 신체 절단을 포함한 가장 심각한 부상을 입은 어린이들이 오흐맛디트로 온다.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현대적인 장비를 갖춘 건물 열 개에서 공습경보에도 멈출 수 없는 급박한 수술이 날마다 진행된다. 8일 러시아의 미사일이 병원 건물 중 하나에 떨어졌을 때도 수술이 진행되고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외과 간호사인 이리나는 “생후 8개월 된 아기의 심장 수술을 준비하고 있었다. 폭발이 일어나자 의사 선생님이 아이에게 달려가 쏟아지는 유리와 콘크리트 파편에서 아이를 보호했다”고 말했다. 옆 수술실에선 이미 수술이 시작된 상태였다. 그 방 의사들도 일단 아이들을 몸으로 보호했다. 중환자실의 선임 간호사인 인나 본다렌코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간호사들은 벽에 내동댕이쳐졌고 유리가 쏟아져 팔과 얼굴을 베었습니다. 건물 전체가 땅에서 떨어져 나갈 것 같았고, 그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다쳤습니다. 공습으로 인한 폭발이 너무 강력해서 무거운 의료 장비들이 복도를 날아다녔어요. 어른들은 온 힘을 다해 아이들을 끌어안고 흐느꼈습니다.”

폭발 직후부터 잔해를 치우는 작업이 시작됐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가장 먼저 나섰다. 그들 중 다수는 피투성이가 된 하얀 의료용 가운을 입고 있었다. 손은 상처투성이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느 순간 인간 사슬이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부서진 벽돌과 시멘트 덩어리를 서로에게 건넸다. 미사일 공격에 부서진 돌은 너무 뜨거워서 손을 덴 사람도 있었다. 잔해 아래에 의사와 아이들이 있을까. 아무도 알 수 없었다.

8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오흐맛디트 어린이병원. 우크라이나에서도 가장 큰 의료 센터이자, 매일 600여 명의 어린이가 진료를 받는 이곳에, 러시아가 발사한 미사일이 떨어졌다. 슬퍼할 시간은 없다. 일부는 부서진 병원 건물의 잔해를 치우기 위해 황급히 모였고, 의료진은 다친 아이들을 품에 안고 뛰었다. /AFP 연합뉴스

의사 중 한 명이 소셜미디어에 호소문을 올렸다. “잔해를 치워야 합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글이 퍼지면서 인근 주민들이 어린이 병원으로 달려와 도움을 주었다. 일부는 물병을 들고 왔고, 일부는 잔해를 치우고, 다른 사람들은 부서진 병동으로 들어가 아이들을 품에 안고 나왔다. 이불에 싸여 산소마스크를 쓴 어린 환자들이 들것에 실려 나왔다. 항암 치료로 머리가 없는 아이들이 부서진 건물 잔해에 줄지어 앉아 있는 모습도 보였다.

병원 마당은 점차 구조대원·경찰·군인 그리고 키이우 주민 등 수백 명으로 가득 찼다. 도와주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경찰이 병원 진입을 막아야 할 정도였다. ‘아이들과 의사들이 잔해에 갇혔다’는 소문을 듣고 병원으로 향한 민간인들이었다. 중환자실 건물은 약 다섯 시간이 지난 후에야 청소되었다. 아이들은 피해가 심하지 않은 병동으로 옮겨졌다.

10여 시간의 구조 작업 끝에 오후 9시쯤, 병원을 찾은 빅토르 리아슈코 우크라이나 보건부 장관은 “미사일 공격으로 병원에서 50명이 부상을 입었고, 성인 두 명이 사망했으며, 그중 한 명은 서른 살 의사 스비틀라나 루캰추크”라고 발표했다. 투석이 필요한 아이들을 치료해 온 소아 신장 전문의였다. 두 번째 희생자는 병문안을 온 환자의 친척이었다고 한다.

안젤리나 카랴키바, 가나 마모노바.

오흐맛디트에서 구조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키이우의 다른 민간 의료 시설도 러시아의 공격을 받았다. 한 시설에선 사무실에서 일하던 회사 직원을 포함해 아홉 명이 사망했다. 국제인도법에 따르면, 병원과 진료소는 공습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들은 ‘특별한 보호를 받는 민간인 대상’으로 인정된다. 하지만 ‘인권을 위한 미디어 이니셔티브’ ‘인권을 위한 의사회’ 등 여러 국제 단체가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2022년 2월 러시아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일대의 병원 742곳이 공격을 당했고 의료진 최소 210명이 목숨을 잃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발전소·난방 및 상수도 시설을 계속 공격하고 있다. 이젠 병원까지 폭격한다. 전기·난방·수도가 없어도 생존할 수 있지만 병원이 없는 도시에서 살아가기는 불가능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사기를 꺾으려고 약한 환자들을 돌봐온 병원을 비인도적으로 공격했을 것이다. 이에 맞서 키이우에선 2000명 넘는 구조대원·경찰·군인·자원봉사자가 구조 작업에 힘을 모았다. 공습 후 열 시간 동안, 병원 재건을 위한 기부금 250만달러(약 34억6000만원)가 모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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