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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 /조선일보 DB

11일(현지 시각) 워싱턴 D.C. 조지타운 인근에서 한국 동료 기자를 만났습니다. 나토 정상회의를 취재하러 온 동료였습니다.

간간이 뉴스로 봤지만, 현장 기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국 정치 상황은 활자로 읽는 것보다 더 뒤죽박죽인 듯했습니다.

미국도 사실 정치 난맥상이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 같은 ‘미드’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불안 불안합니다. 제삼자로 마음 놓고 보면 흥미진진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당장 미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주한미군 주둔 문제나 방위비 인상, 대북 정책 같은 국가 안보 사안을 비롯해 반도체·2차 배터리 등 한국 주요 산업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심각하게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美 K스트리트 ‘바이든 교체론’ 파다

지난달 27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CNN 스튜디오에서 열린 미국 대통령 선거 토론회에서 조 바이든(오른쪽) 대통령이 하려는 말이 생각나지 않아 말을 멈추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쳐다보는 모습. /CNN

워싱턴 D.C.에서 미 정가의 담론(談論)이 만들어지는 곳이 있습니다. ‘케이 스트리트(K Street)’입니다. 뉴욕에 월가(Wall Street)가 있다면 워싱턴 D.C.엔 ‘케이 가(街)’가 있는 것이지요. 종종 이걸 ‘한국(Korea)의 거리’로 오해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한국과 관련은 없습니다. 워싱턴 D.C.는 계획도시라서 거리 명을 지을 때 알파벳 순으로 했는데, 백악관과 가까운 북쪽 거리가 K 거리가 되어 이곳이 자연스럽게 정치인, 로비단체, 로펌, 싱크탱크, 언론계 인사들의 ‘접선 장소’가 된 것입니다.

요즘 K스트리트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중도 사퇴 여부가 단연 제1의 이야깃거리입니다. 바이든 대안 후보로는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 조시 샤피로 펜실베이니아주(州) 주지사, 그레첸 휘트머 미시간 주지사,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거론됩니다.

바이든의 절친 언론인이라는 뉴욕타임스의 토머스 프리드먼이나 그의 열렬한 지지자인 배우 조지 클루니도 얼마 전 트럼프와의 토론회에서 나타난 바이든의 실망스럽고 불안한 모습에 ‘용단(勇斷)’을 호소했습니다. 이대로 가면 질 게 뻔하니 더 늦기 전에 물러나서 트럼프와 맞서 싸워 정권 재창출을 이뤄낼 사람에게 길을 내주라는 것이지요.

흥미로운 건 바이든이 완주 의사를 ‘주님의 뜻’까지 거론하며 거듭 밝혔지만, 정치 평론가들이 해리스나 샤피로 등을 대안으로 띄웠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오바마 부부’의 존재감은 날로 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버락 오바마(이하 오바마) 전 대통령의 아내 미셸 오바마(이하 미셸)는 혹시나 오해받을까 손사래를 치며 출마 의사가 없음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오바마는 재임을 지낸 전직 대통령이니 출마할 일이 없고요.

◆존재감 날로 커지는 오바마 부부

하지만 요즘 ‘오바마 부부’는 마치 과거 그들이 백악관에 있었던 것처럼 ‘K 스트리트’의 주인공 그 자체입니다. 테드 크루즈는 공화당 의원인데도 11일 폭스 비즈니스 인터뷰에서 “바이든 교체 후보는 미셸이나 해리스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은 큰 나라입니다. 웬만한 경력이나 외모만으로는 50개 주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기 어렵습니다. 제가 사는 버지니아의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휘트머, 뉴섬 같은 사람 이름 들어봤느냐고 물어보면 “왓(what)?” “후(Who)?”라고 되묻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 반면, 미셸은 대통령 부인을 지내기도 했지만 미 역사상 최초의 아프리카계 대통령인 오바마의 정치적 동반자로서 오바마가 정치적으로 성장하면서 같이 이름을 알렸습니다. 오바마 대선 유세 때 미셸이 지원 유세를 많이 했는데, 그때 반대 진영에서 미셸에 대한 인신공격을 말도 못하게 많이 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 덕에 미셸은 더 유명해졌습니다. “웬 데이 고 로우, 위 고 하이(그들이 저급하게 굴어도, 우리는 품위 있게 한다·When they go low, we go high)”라는 미셸의 말 한마디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 연설이 될 정도로 널리 알려졌고, 그의 정치적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미셸은 여전히 출마 의사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미 정가에서는 매일 같이 미셸 이야기가 새어나옵니다. 지금 상황으로서는 미셸만이 트럼프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이지요. 미셸은 오바마 재임기 때도 교육 증진이나 비만 퇴치 운동 등을 활발하게 이끌고, 백악관을 나와서도 ‘비커밍(becoming)’이란 책을 내며 왕성하게 활동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언젠가는 정식으로 정계에 입문해 미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아프리카계 여성 대통령에 도전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습니다.

미셸 오바마 전 미국 퍼스트레이디가 2022년 7월 13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조선일보의 2022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서 화상 출연한 모습. /조선일보 DB

미셸은 2022년 7월 조선일보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에 화상 단독 인터뷰 형태로 참여했습니다. 저는 그때 미셸 인터뷰를 준비하고 기사도 썼었는데요. 미셸을 뒷받치고 있는 미디어팀, 정무팀 같은 조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셸 부대’는 화상 인터뷰 당시 인터뷰하는 사람의 의상부터 배경에는 어떤 소품을 놓을지 등 세세하게 챙겼습니다. 백악관 생활을 끝내는데도 마치 이제부터가 시작인 것처럼 미셸은 전 세계를 상대로 선거 유세를 한다는 인상이었습니다. 만약 그것이 이번 대선이라면 예상보다 빨리 찾아온 것일 뿐 미셸은 사실 일찌감치 대선 도전 생각이 있었던 듯합니다.

◆‘퍼스트 레이디’ 힐러리는 대선 도전했지만 실패

미국에서 대통령의 아내가 대통령이 된 적은 없습니다만, 대통령 후보가 된 적은 있습니다. 바로 42대 대통령(1993~2001년) 빌 클린턴의 아내 힐러리 클린턴입니다. 힐러리는 오바마가 당선된 2008년 대선에서 민주당 경선 후보로 나왔다가 오바마에게 자리를 내줬고요. 2016년에는 드디어 민주당 후보가 되어 공화당 후보 트럼프와 맞붙기도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결과는 트럼프의 승리였지만요.

만약이지만, 미셸이 바이든의 대타로 레이스에 올라 대통령이 된다면, 2016년 대선 때 ‘퍼스트레이디’ 선배인 힐러리가 못다 이룬 꿈을 실현하는 것이 됩니다. 트럼프 입장으로 보면, 힐러리에 이어 미셸까지 ‘퍼스트레이디’ 출신 민주당 대선 후보와 맞붙은 전무후무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미드’에서도 이런 스토리는 차마 쓰지 못할 텐데, 아직 모르는 일이지만, 일단 가능성은 있는 상태입니다. ‘평행이론’이 따로 없습니다.

버락 오바마(오른쪽) 전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 /AP 연합뉴스

주목되는 건 현재 민주당이 이런 일로 분열 중이라는 것입니다. 미 언론들은 클루니의 바이든 사퇴 압박 칼럼을 오바마가 사주했다, 바이든 교체론 뒤에는 오바마가 있다는 등 여러 버전의 루머가 나돌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사이가 좋았던 오바마와 바이든 관계에 금이 가고, 민주당 내에서도 이를 두고 감정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트럼프를 비롯해 공화당 진영은 팔짱을 끼고 미소를 짓고 있을 듯합니다.

2016년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에 있던 힐러리가 트럼프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한 이유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민주당 진영의 분열이었습니다. 힐러리는 고상한 이미지 때문에 민주당답지 않다, 공화당에 더 어울린다는 말을 민주당원들로부터 대선 막판까지 들었습니다. 진영 내에서의 지지도 온전히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그의 아내 손을 잡고 백악관 로즈 가든으로 향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미셸 출마 여부를 떠나 대타 주자가 누가 되든 ‘사퇴론’으로 오바마와 바이든의 갈등이 계속될 경우 민주당이 이번 대선에서 패할 가능성은 더 커질 것입니다. 누가 대타 주자가 될까를 놓고 해리스, 미셸, 휘트머, 샤피로 등 각 세력이 신경전을 벌이면 벌일수록 선거라는 전쟁에서 싸울 힘은 흩어집니다.

바이든이 오바마가, 그리고 민주당이 1968년 린든 B 존슨 대통령의 후보직 사퇴 이후 56년 만에 다시 닥쳐온 ‘대선 후보 교체론’을 어떻게 일단락 지을지 이목이 쏠립니다. 대선 본선 후보를 확정하는 민주당 전당 대회(8월 19~22일)는 이제 한 달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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