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품질생산력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올해 3월 시진핑의 싱크탱크 격인 베이징대 국가발전연구원이 동명의 책을 출간했다./베이징=이벌찬 특파원

“지역·환경에 맞춰 신품질생산력[新質生産力]을 발전시켜야 한다.”

18일 폐막한 ‘중국 공산당 20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 회의(3중전회)’에서 중국의 새로운 장기 경제 전략인 ‘신품질생산력’이 또다시 등장했다. 신품질생산력은 시진핑 집권 3기를 관통할 전략으로서 중국과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시진핑의 싱크탱크, “가이드북” 출간

외부에서 신품질생산력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올해 3월 시진핑의 싱크탱크 격인 베이징대 국가발전연구원이 출간한 동명의 책이 나오면서 그 궁금증이 풀리고 있다. 291페이지의 이 책은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린이푸 베이징대 교수, ‘중국금융 40인 포럼(CF40)’의 학술고문 황치판, 홍콩중문대의 정융녠 교수 등 저명한 경제학자 20여 명의 공저다. 사실상 중국 정부가 친절하게 ‘가이드’를 내준 셈이다.

신품질생산력은 지난해 9월 하얼빈에서 열린 ‘신시대 동북 지역 진흥 촉진 좌담회’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처음 언급한 개념이다. 자원·인력을 대량 투입해 성장을 이뤘던 기존 방식을 탈피해 첨단 기술 기반으로 생산력을 극적으로 끌어올린다는 구상을 담았다. 2017년 시진핑은 중국이 덩샤오핑 시대부터 이어온 ‘고속 발전 단계’를 지나 ‘고품질발전[高質量發展]’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선언했는데, 집권 3기에서는 고품질발전의 실현 수단으로 신품질생산력을 제시한 것이다.

책에서 제시한 신품질생산력의 세가지 과제는 신(新)기술 기반 제조업 발전, 생산과 연관된 서비스업 비중 확대, 산업의 표준화(세계화·디지털화)다. 새로운 기술·장비·연구 성과 등을 이용한 제조업과 생산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서비스업(물류, 금융, 인력관리 서비스 등)을 중심으로 경제 구조를 개선하고, 미국의 기술 봉쇄를 타파하고자 한다. 산업 표준화는 중국 내 무역 기준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산업 전(全)과정을 디지털화하여 수출과 생산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이 과제들은 중국이 미국과 대등하게 경쟁하기 위해 경제·산업 구조를 미국과 비슷하게 바꾸겠다는 결심으로 보이기도 한다.

◇”미국 때문에 신품질생산력 추구”

책에서는 중국이 신품질생산력을 추구하게 된 이유가 미국의 압박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동안 중국은 미국이 대(對)중국 탄압을 멈춰야 한다고 줄곧 말해왔는데, 책에서는 ‘필연적 결과’라고 규정한 점이 눈에 띈다. “40여 년의 개혁·개방으로 일어난 중국 경제의 양적 변화가 세계 경제 구도의 질적 변화를 가져왔다”면서 “중국은 이미 방 안의 코끼리가 되어 몸을 숨길 수 없게 되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중국 외교나 홍보[傳播]의 실패가 미국으로 하여금 중국을 탄압 타깃으로 삼게 만든 것이 아니며, 미국의 반응은 필연적 결과”라고 지적했다. 또 “미국은 중국의 기술 진보, 특히 격전이 벌어지는 기술과 산업 경쟁에서 사력 방어하고 있는데, 이것이 양국 무역 마찰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이 ‘급격한 경제 변화’를 이뤄야 한다는 조급함도 드러냈다. 책에서는 과거 중국 경제가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단계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국제 정세와 기후변화, 글로벌 기술 혁신 때문에 신품질생산력 가속 발전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신품질생산력 발전에 힘을 쏟지 않고, 속도를 내지 않으면 중국식 현대화 목표 실현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했다. 중국의 경제 기조가 은연중에 온중구진(穩中求進·안정 기초에서 발전 추구)에서 이진촉온(以進促穩·적극적인 발전 전략으로 안정 촉진)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안보, 국방안보와도 연결

신품질생산력의 핵심 산업으로는 반도체, 의약(바이오), 전기차, 상업우주, 디지털경제, 로봇, 첨단 전자기기 등이 대표적으로 언급됐다. 향후 중국에서 가장 주력해서 키울 산업을 나열한 것이다. 신품질생산력을 뒷받침하는 두 기둥으로는 ‘인재’와 ‘금융’을 강조하는데, 교육 부문과 금융 부문에서 대규모 개혁이 계속될 것을 시사한다.

신품질생산력이 ‘안보’와 연결된 점도 주목해야 한다. 책에서는 미국의 인공지능(AI) 서비스 챗GPT 출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활약한 위성 통신망 스타링크 등의 활약을 언급하면서 “신품질생산력은 경제 안보와 국방 안보까지 연결된다”면서 “혁명적인 신기술의 세계 잠식 능력은 얕볼 수 없다”고 했다.

◇‘중국식 현대화’가 종착지

중국 일부 지역에서 먼저 미래 산업과 서비스업 혁신이 일어날 것이라고도 암시했다. 책에서는 “부동산, 건축, 교통, 강철, 석탄 등 ‘구품질[舊質]생산력’이 없으면 신품질생산력을 지탱할 수 없다”면서 “중서부와 동북 지역 등은 신품질생산력을 억지로 추진할 필요 없고, 상대적 우위가 있는 전통 산업에 전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덩샤오핑이 1978년 3중전회에서 “일부 도시를 먼저 부유하게 하자”는 선부론(先富論)을 폈다면, 시진핑은 신품질생산력을 일부 지역에서 먼저 시행하자고 제안하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중국 경제를 ‘정부’가 주도한다는 점은 명확히 했다. 책에서는 “신품질생산력은 자전거처럼, 동력인 뒷바퀴는 ‘시장’이란 보이지 않는 손에게 내주고 균형 잡는 앞바퀴는 정부란 보이는 손에게 맡겨야 한다”면서 “국가는 모(母)기금(펀드)을 세우는 등의 방식으로 특정 산업 발전을 지지할 것”이라고 했다.

신품질생산력의 최종 목표에 대해서는 ‘중국식 현대화’를 제시했다. 중공 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이 내세운 중국식 현대화는 중화인민의 위대한 부흥을 위해 서방과는 다른 방식으로 선진국 수준의 발전 단계에 도달한다는 구상이다. 시진핑은 ‘신(新)품질생산력’을 빠르게 키워 ‘고(高)품질발전’을 달성하고, 이를 통해 ‘중국식 현대화’를 실현하여 ‘위대한 부흥’이란 업적을 남기겠다고 다짐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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