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프런트 홈페이지에서 모금된 돈이 러시아를 거쳐 우크라이나 키이우 등 전쟁지역까지 흘러간 경로. photo 가상자산추적업체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북한 방문으로 두 나라의 관계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 정보기관 FSB(연방보안국)와 SVR(해외정보국)이 직접 자금을 투입해 운영하고 있는 온라인 매체들이 한·미 동맹과 윤석열 정부의 대미 정책을 비방하는 글을 통해 적극적 선전전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국제 무대에서 미국을 비롯한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등 우방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부당함을 알리고 나서면서 이들 매체에 우리 외교를 비난하는 기사가 집중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러시아 해킹조직은 푸틴 대통령 방북(6월 19일) 직전인 6월 12일부터 17일에 대통령실과 산업통상자원부 그리고 외교부 등 22개 주요기관에 대해 디도스 공격을 시도한 바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우리나라 좌파단체 활동가들이 이 매체에 글을 기고해 “북한 핵실험의 책임은 한국의 보수정권에 있다”는 북한 측 논리를 그대로 설파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FSB와 SVR 두 기관은 과거 소련 정보기관인 KGB가 1991년 해체되면서 역할을 나눠서 새로 만들어진 기관이다. FSB는 미국의 FBI(연방수사국), SVR은 미국의 CIA(중앙정보국)와 유사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가정보원이 유사한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의 외교정책에 대해 북한 조선중앙통신과 같은 논조로 비판하는 이 매체의 기사들은 국내에서 자유롭게 접속이 가능하다. 또한 비트코인이나 모네로 같은 암호화폐를 통한 기부도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기부가 가능하다는 점은 러시아의 정보기관으로 돈이 흘러들어가는 우회로가 버젓이 개설되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주간조선이 해당 사이트의 전자지갑을 추적한 결과 기부된 돈은 모스크바를 거쳐 우크라이나 키이우까지 흘러들어간 것으로 됐다.

미국과 일본, 캐나다, 뉴질랜드 등 우리나라의 주요 우방국가에서는 이 매체들을 대선 개입과 허위사실 유포 등을 이유로 자국인과의 자산 거래 금지, 자산동결 및 금융거래 제재 조치 등을 취했다. 특히 미국에서는 국무부가 직접 “러시아 외무부와 연결되어 있고, 러시아 정보기관이 직접 운영하고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페이스북과 X(구 트위터)도 해당 매체가 허위사실을 유포한다고 밝힌 바 있다. EU동유럽전략소통본부는 이미 2019년 이 매체들이 러시아에 등록되어 있고 사이트 기부금이 러시아로 전달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접속 제재까지는 과하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 우방국가에서는 이 매체에 기부하는 행위 등을 금지한 것은 물론이고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기관으로 정부 차원에서 지정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에서도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간조선 취재에 따르면 러시아와 크름반도 등에 기반을 둔 사우스프런트(Southfront)와 SCF(Strategic Culture Foundation) 등은 러시아 정보기관 FSB와 SVR이 사실상 운영하는 매체다. 2015년 창간한 사우스프런트는 모스크바에 소재를 둔 온라인 매체이며 FSB가 운영하고 있다. 2005년 창간한 SCF 역시 모스크바 소재로 SVR이 운영하고 있다. 1991년 옛소련 붕괴 직후 당시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실패한 쿠데타에 깊숙이 개입했던 KGB의 힘을 빼기 위해 두 기관을 분리했고 SVR은 KGB 내 해외 정보 수집과 공작을 담당했던 제1총국의 업무를 넘겨받아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승격했다. FSB는 국내 치안과 방첩을 담당하던 KGB 2국의 후신이다. 주로 △국가안보 위협, 비상사태, 대외정치상황 등을 대통령, 의회, 정부기관에 보고하고 △해외정보국, 국경수비총국과 협력해 방첩활동을 수행하며 △원자력, 우주항공, 통신, 교통 등 국가 주요 전략시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러시아 정보기관이 운영하는 온라인매체인 사우스프런트(위)와 SCF의 홈페이지 캡처 화면.

KGB 후신 FSB와 SVR이 직접 자금 투입

주로 국제정세를 다루는 이 매체들이 우리나라에 대한 비난·날조 기사들을 써댄 건 올해 초부터다. 주간조선이 확인한 결과 이 매체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및 나토, IP4 국가들과 안보협력을 강화하자 우리나라의 외교정책을 비난하는 글을 집중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다음은 두 매체에서 최근 우리나라의 외교정책을 비난하며 쓴 기사의 일부분이다.

“미국은 한·러 관계 악화에도 한국 핵잠수함 건조를 돕지 않을 것이다.(US Will not Help South Korea Build Nuclear Submarines Despite Ruining Ties with Russia.)” - 사우스프런트 6월 24일 자

“미 국방부는 호주에 대한 AUKUS (오커스)의 약속을 이유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돕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대러시아 관계를 희생하면서까지 국제적 위상을 제고하려는 윤석열 대통령의 노력에 큰 타격을 줄 것이다. (중략) 윤 대통령의 ‘글로벌 중추국가’ 전략은 한국을 중견국에서 세계적 영향력을 갖춘 글로벌 국가로 만드는 것이나, 한국의 군사·경제·외교적 활동의 외연 확장은 미국과의 동맹 강화로 인해 러시아와의 관계 단절을 초래했다. 한국은 다수 국가들이 대러 제재에 불참한 가운데 일본·싱가포르와 함께 대러 제재에 참여한 유일한 비서구권 왕따국가(Pariah)로 전락했다.”

‘북한 외교정책 : 제국주의에 맞선 단결 촉구(North Korean foreign policy: A call for the union against imperialism)’ - SCF 5월 7일 자

“한국은 제국주의에 의해 통제되고 있어 북한이 민족민주주의 혁명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하다. 북한은 민족민주주의 혁명과 반제국주의 투쟁에 대한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 ‘제국주의는 믿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으며, 소련과의 관계에서도 정치적 독립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중략) 더욱이 한국에 대한 제국주의의 반식민지 지배는 북한의 조선인민민족주의 혁명을 가로막고 있어, 향후 한반도 전체의 완전한 통일은 한국의 제국주의에 대한 완전한 독립으로만 가능하다.”

‘지정학이 북한의 길을 움직이고 있다.(Geopolitics Is Moving North Korea’s Way.)’ - SCF 1월 25일 자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패배를 기점으로 미국 패권은 본격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른 여파는 곧 우크라이나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사태와 같이 유라시아와 서아시아까지 확산했다. 김정은은 지정학 전문가로서, 과거 한국전쟁 발발과 관련해 당시 스탈린이 러시아·북한 간 전략적 협력을 통해 이뤄냈던 시너지 재현이 목표다. 최근 러시아와 북한의 밀착은 ‘극동지역’을 새로운 ‘지정학적 요충지’로 삼아, 미국 주도 서부전선(유라시아)·남부전선(서아시아)에 대적하기 위한 ‘동부전선’을 형성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두 매체에 한반도 관련 기사들을 검색하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칭송하고, 윤석열 대통령을 비난하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정작 이 매체들에 대해 우리나라의 동맹국인 미국과 일본 그리고 캐나다, 뉴질랜드 등은 이미 제재를 가한 지 오래다.

미국 재무부는 2021년과 2022년 연달아 두 매체에 대해 ‘허위정보 유포를 통한 외세 개입을 이유’로 제재를 단행했다. 국무부는 SCF가 SVR에 의해 직접 운영되고 있으며, 러시아 외무부와도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고 발표했다. 사우스프런트를 대상으로는 미국 내 자산동결 및 미국인과의 거래금지 조치를 단행하고, 행정명령 13848호 등을 발령했다. 13848호 행정명령은 미국 선거에 외국의 간섭이 발생할 경우 특정제재를 부과하는 집행명령이다. 미국 정부는 SCF를 대상으로도 미국 자산동결 및 미국인의 거래를 금지하고 특별지정제재대상자 목록(SDN List)에 등재했으며 행정명령 13848호를 발령했다. 일본에서는 사우스프런트와 SCF 등을 대상으로 일본 내 자산동결 및 개인·기관과의 금융거래를 금지했다.

캐나다는 지난해 2월 사우스프런트와 SCF를 포함한 16개 기관을 대상으로 특별경제조치법을 통해 캐나다인과의 자산·금융 관련 거래금지 제재를 부과했다. 캐나다 정부도 이 언론기관을 러시아의 정보기관으로 분류하고 제재를 가한 것이다. 뉴질랜드는 2022년 12월 사우스프런트와 SCF 등 러시아 언론매체를 대상으로 러시아 제재법을 근거로 자산, 서비스 이전 및 거래 금지 조치를 단행했다.

정부 차원의 조치만 있었던 건 아니다. 미국 민간기업인 메타와 X 등은 2020년 사우스프런트가 미국 대선 결과와 코로나 백신 효능에 의문을 제기하는 기사를 유포했다고 발표했다. 메타 측은 같은 해 9월 “코로나바이러스가 생물무기로 개발되었고 백신을 맞으면 위치를 추적당할 수 있다는 거짓 음모론을 퍼뜨렸다”는 이유로 SCF 기사를 페이스북에 공유하는 것에 대한 금지조치를 취했다.

기부금 러시아 거쳐 우크라 등지로 흘러가

그런데 정작 김정은을 칭송하고 한·미 동맹을 비판하는 이 매체에 우리나라 진보진영 활동가들은 글을 싣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제적 네트워크를 강조하는 국내 한 인권단체 활동가 2명은 지난해 5월 11일 자 SCF에 ‘갈등으로 향하는 대한민국(South Korea Pivots to Conflict)’이라는 글을 통해 “대한민국 극우파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의 반중연대에 동참함으로써 한국을 신냉전의 한가운데로 몰아가고 있다”며 “윤석열 대통령의 열망은 한국을 미국 전쟁 기계의 톱니바퀴로 전락시키고 있으며, 한국 경제·안보의 운명을 쇠퇴하고 있는 미국 주도 질서에 의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난해 4월 26일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핵잠수함을 한국에 배치하는 ‘워싱턴 선언’을 발표했는데, 이는 북핵을 견제하기보다 오히려 핵 군비 경쟁을 부추길 가능성을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말을 인용해 “북한의 6차례 핵실험 중 4차례는 대화를 거부하는 보수정권의 강경한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의 정책 방향은 남북관계를 불안정하게 만들뿐더러, 최대 교역국인 중국을 적대시하는 위험한 길로 유도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핵실험의 책임이 우리 정권에 있다는 북한의 논리와 거의 유사하다. 이 인사들이 속한 단체는 최근에도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집회를 비롯한 여러 반전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또한 국내 한 안보 관련 전문가는 주간조선에 “러시아를 정확히 적국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국내법상 처벌은 어려워 보인다”면서도 “다만 단순 진보 진영 언론 등이 아닌 러시아 정보기관이 직접 운영하는 매체고, 김정은을 칭송하거나 맹목적으로 우리 외교정책을 비난하는 상황에서 이 매체에 글을 쓰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고 말했다.

주간조선이 직접 확인해본 결과, 해당 사이트에서 비트코인, 비트코인 캐시, 모네로 등 코인을 모금하고 있는 지갑주소는 ‘정상 주소’로 한국 지갑으로부터의 출금 신청, 즉 코인 기부가 가능했다. 주간조선이 가상자산추적업체에 의뢰해 사우스프런트의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3개의 모금용 QR코드 중 2개를 통해 암호화폐 지갑을 추적한 결과, 해당 지갑은 OFAC(해외자산통제국)에서 거래중지된 지갑으로 확인됐다. 또한 해당 지갑은 최근까지도 활발하게 모금이 이뤄졌으며, 기부된 코인은 주로 바이낸스, 코인베이스, MEXC 등 해외 가상자산거래소를 통해 이체됐다. 모네로를 제외한 2가지 경로를 통한 총 모금액은 2000달러였다.

황석진 동국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2개의 지갑 중 1개는 마지막 거래일자가 작년이고, 나머지 1개는 거래일자가 올해부터 시작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지갑이 정지돼 교체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며 “이 두 지갑의 모금액은 총 2000달러지만, 지갑이 여러 개일 가능성이 크며 모금액 또한 2000달러보다 훨씬 클 것으로 추측된다”고 분석했다. 황 교수는 “한국은 해외거래소 가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신원불상의 자가 얼마든지 접근해 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며 “해외거래소를 통해 이 같은 테러자금 지원, 적성국(敵性國) 지원이 여전히 가능하기 때문에 하루빨리 규제를 통해 해외거래소를 차단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러시아는 두 매체 외에도 최근에는 아예 공식적인 선전매체의 한국어 사이트까지 만들어 여론전을 시도하고 있다. 러시아의 대외 선전 네트워크인 ‘프라우다(Pravda)’는 각국의 언어로 러시아 언론 뉴스나 친러 성향 인물의 주장을 전달하는 웹사이트를 운영해왔다. 주로 유럽 국가들을 대상으로 활동하던 프라우다가 최근 활동범위를 확대해 일본어와 함께 한국어로도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대부분 기사는 러시아와 해외 언론기사를 어색한 한국어체로 번역한 것이긴 하지만 올해 2월 프랑스 디지털 감시기구 ‘디지털외세개입방지국(VIGINUM)’은 EU 선거를 앞두고 프라우다를 유럽 내 허위조작정보 유포원으로 지목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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