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우크라이나의 하늘을 날아오르는 미국산 F-16 전투기 두 대. /AP 연합뉴스

“불가능하다던 일이 현실이 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4일 우크라이나의 한 공군 비행장에서 미국산 F-16 전투기 앞에 섰다. 우크라이나가 2년 이상 애타게 기다려온 F-16 전투기가 자국군의 손에 넘어와 실전 배치됐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그의 뒤에 서 있는 F-16 전투기의 꼬리 날개엔 우크라이나를 상징하는 삼지창 마크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우크라이나가 서방에 F-16 지원을 처음 요청한 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3개월 만인 2022년 5월경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침공 전 약 120대의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수개월 만에 절반 가까운 숫자를 잃었다. 이후 1년 만인 지난해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승인이 났고, 노르웨이, 덴마크, 벨기에 등 서방 11국이 잇따라 F-16 공여 약속을 했다. 동시에 미국, 덴마크, 네덜란드 등에서 우크라이나 조종사의 F-16 훈련도 시작됐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난 5월 자국 매체에 “곧 첫 번째 F-16이 우크라이나군에 인도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러시아 기지를 초토화해다오” - 4일 우크라이나 공군의 날 기념식에 참가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운데) 대통령의 뒷모습. 그가 F-16 전투기를 바라보며 연설하고 있다.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은 “F-16 전투기가 실전 배치됐다”면서 “우크라이나 공군이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AFP 연합뉴스

F-16은 현재 서방에서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다목적 전투기다. 공중전은 물론, 미사일 요격, 지상 목표물 공격 등 다양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1978년 처음 배치된 이래 지금까지 4600대 이상이 보급됐고, 꾸준한 업그레이드를 통해 현재도 3000대 이상이 현역 주력 전투기로 뛰고 있다. 한국도 160여 대의 F-16을 운영 중이다. 우수하고 다재다능한 성능 때문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도 F-16 구매를 끈질기게 요청해왔고,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 조건으로 이를 내걸기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감개무량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F-16 조종법을 익히고 실전에 나서기 시작한 군인들이 자랑스럽다”며 “우크라이나 공군이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서방이 주기로 약속한 F-16은 총 80여 대다. 젤렌스키는 더 많은 F-16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우리 파트너들은 우크라이나의 F-16과 조종사 수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좋은 소식은 우리가 추가 F-16 배치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제대로 맞서기 위해선 총 128대의 F-16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제 관심은 F-16이 과연 ‘게임 체인저’의 역할을 해줄 것이냐에 쏠리고 있다. F-16은 현재 미공군과 나토가 보유한 다양한 무기를 쓸 수 있다. 미 국방부는 이 중 AGM-88 레이더 공격 미사일, 레이저와 GPS 등으로 유도되는 장거리 합동직격탄(JDAM), 암람(AMRAAM)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AIM-9X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 등 최신 무기를 대거 제공할 예정이다.

우크라이나군은 F-16의 공대공 미사일이 우크라이나 후방에 대한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을 막아내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민간인 지역과 군수 시설, 에너지 시설 등을 집중 공습해 우크라이나의 전쟁 지속 능력을 떨어뜨리려 시도하고 있다. 또 F-16이 우크라이나 지상군과 함께 러시아 육군을 공격하는 ‘공지전’을 펼쳐 우크라이나군의 점령지 수복 작전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4일 자국에 도착한 F-16 전투기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국은 F-16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경계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제임스 헤커 미공군 유럽·아프리카 사령관은 “F-16은 기존에 이미 제공된 공대지 무기들의 활용을 용이하게 해줄 뿐”이라고 했다.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도 비슷한 시기 “F-16은 마법의 무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이 대치하고 있는 전방에서는 러시아의 강력한 방공망 때문에 F-16이 기대만큼의 활약을 펼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관건은 얼마나 빨리, 많은 수량의 F-16이 실전에 투입될 수 있느냐다. 현재 우크라이나에 배치된 F-16이 총 몇 대인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날 행사에선 지상에 주기 중인 2대, 공중 시연에 나선 2대 등 총 4대가 확인됐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지금 바로 F-16 조종이 가능한 조종사는 6명뿐”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아직은 10대 미만의 F-16이 우크라이나군의 손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정도 수량으로 전세를 뒤집는 것은 어렵다. 다만 우크라이나군은 지난해 32명의 F-16 조종사 후보를 선발, 서방에 교육을 위탁한 상태다.

우크라이나 현지 매체들은 “러시아에 정보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F-16 배치 대수는 앞으로도 계속 밝히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러시아는 F-16 배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올해 3월 “F-16은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전투기”라며 “(우크라이나의 F-16 보유를) 러시아의 군사 계획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러시아군은 두 달 후인 5월 “F-16을 핵무기 운반 장비로 간주하겠다”고 하고, 이어서 전술핵무기 훈련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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