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스크 지역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군 탱크와 장갑차의 모습. 러시아 국방부가 11일 공개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900일을 맞은 가운데 지난 6일부터 러시아 본토로 진격해 들어간 우크라이나군의 ‘깜짝 공세’가 예상외의 전과를 거두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새로운 위기에 봉착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다. 러시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외국 군대에 자국 영토를 내주지 않았다. 이런 러시아에서 엿새 넘도록 전투가 벌어지며 3년째 전쟁을 끌어 온 러시아군의 허술함이 다시 한번 드러났고, 푸틴의 지도력에도 상처가 나게 됐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 남서부 쿠르스크 공격 엿새째인 11일에도 진격을 이어갔다. 러시아 현지 군사 매체들은 “우크라이나군이 이날 쿠르스크주 플레호보 마을을 추가 점령했다”고 전했다. 이 마을은 지난 9일 우크라이나군이 진격한 소도시 수드자 남쪽에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천연가스관 시설이 있는 수드자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을 하나씩 점령해 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반격에 나선) 우리 군이 국경으로부터 10~20㎞ 안쪽에 있는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그래픽=양진경

미국 전쟁연구소(ISW)도 이날 인공위성 사진을 분석해 “우크라이나군은 기존 위치를 고수하면서 일부 지역에선 약간 더 진격했다”고 평가했다. ISW는 전날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영토 안쪽 약 34㎞ 지점까지 진출했으며, 약 350㎢를 손에 넣었다고 추산했다. 우크라이나군 일부는 국경에서 약 55㎞ 떨어진 쿠르스크 원전을 향해 계속 전진 중이다. 키이우포스트 등 우크라이나 매체들은 “러시아군이 강력하게 반격해 며칠 못 버티고 철수하리라고 여겨졌던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라고 평가했다. 또 “오랜만에 러시아군으로부터 전황의 주도권을 빼앗아오게 됐다”는 해석도 내놨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러시아는 쿠르스크주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이 지역에 사는 7만6000여 명을 긴급 대피시켰다. 또 10일에는 테러(우크라이나 공격을 러시아가 부르는 용어) 대응 작전 체제로 돌입해 곳곳에 검문소를 설치하고 신규 병력을 배치하며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전폭기와 공격 헬기를 출격시켜 우크라이나군을 몰아내는 중”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전황을 뒤집지 못한 채 후방의 주요 군 시설이 파괴되는 등 피해가 누적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WP는 “우크라이나군의 이번 공격이 러시아군의 허술한 본토 방어를 다시 한번 노출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남서부 쿠르스크의 한 아파트. 외벽이 우크라이나 군대가 쏜 미사일 잔해를 맞고 망가졌다. 이곳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엿새째 교전을 벌이며 예상 밖의 전과를 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등은 “우크라이나군의 이번 공격이 러시아군의 허술한 본토 방어를 노출했다”고 했다. /로이터 뉴스1

본토를 지키는 ‘러시아 방위군’은 지난해 6월 예브게니 프리고진(지난해 8월 사망)이 이끄는 용병 집단 ‘바그너 그룹’의 무장 반란 때도 쉽게 뚫리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우크라이나에 주둔하던 프리고진 부대는 국경을 넘어 러시아에 들어간 지 하루 만에 모스크바 인근 200㎞ 거리까지 진격하며 푸틴을 위기에 몰아넣었다. WP는 “우크라이나군의 본토 공격은 러시아군과 정보 체계 전체의 실패”라며 “이에 대해 책임을 지는 푸틴에게도 큰 타격”이라고 분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사태를 놓고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합동참모의장)에 대한 경질설도 나온다”고 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10일 저녁 연설을 통해 “침략자(러시아)의 영토로 전쟁을 밀어내는 것에 대해 보고받았다”며 러시아 본토 공격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서방 군사 전문가들은 “병력과 무기 부족으로 고전해왔던 우크라이나군이 이번 급습으로 분위기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군은 손에 넣은 러시아 영토를 요새화해 ‘버티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펼쳐온 전술과 같다. 러시아와 평화(휴전 혹은 종전) 협상이 벌어질 경우 영토 교환을 위한 ‘협상 카드’로 삼으려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본토가 뚫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곳곳에 보복 공습을 감행했다. 우크라이나 공군은 “10일 밤 수도 키이우와 전국 다섯 개 도시에 러시아의 미사일·무인기(드론) 공격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키이우에는 밤새 공습 경보가 울리는 가운데 미사일 두 발이 날아왔다고 AFP는 보도했다. 이중 격추된 미사일 잔해가 북동쪽 외곽의 한 주택에 떨어지면서 부자(父子)지간인 남성(35)과 아들(4)이 숨졌고, 세 명이 중상을 입었다. 다른 지역에도 러시아의 드론 공격이 벌어졌다. 현지 매체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에 대규모 공습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

🌎조선일보 국제부가 픽한 글로벌 이슈! 뉴스레터 구독하기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75739

🌎국제퀴즈 풀고 선물도 받으세요!https://www.chosun.com/members-event/?mec=n_qui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