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국경 근처 수미 지역에서 러시아제 탱크를 몰고 이동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쿠르스크 공격 작전을 뜻하는 삼각형 표식이 되어 있다. /AFP 연합뉴스

허를 찌른 우크라이나의 기습에 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자국 영토를 점령당한 러시아가 결국 우크라이나 침공에 투입한 병력 일부를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중요한 전투마다 활용해 온 ‘이슬람 전사’ 체첸군도 불러들이고, 우크라이나군의 추가 진격이 예상되는 지점의 참호 건설에도 뛰어드는 등 부랴부랴 대응을 강화하는 모양새다. 우크라이나는 오랜만에 거머쥔 ‘칼자루’를 놓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다.

우크라이나 현지 매체들은 15일 우크라이나군 발표를 인용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남부 전선에서 일부 병력을 빼내기 시작했다”며 “이는 러시아 영토 쿠르스크에 진주한 우크라이나군의 추가 진격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선의 병력 일부를 새로 배치 중”이라며 “러시아가 전투 계획을 바꿔야 하는 상황에 처했음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그래픽=양인성

러시아가 전황이 불리할 때마다 단골로 보내는 특수부대인 체첸군 ‘아흐마트 여단’도 긴급 투입됐다. 푸틴의 최측근 람잔 카디로프 체첸 자치공화국 수장이 직접 지휘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부대는 잔혹한 전투 방식으로 악명 높다. 키이우포스트는 “우크라군이 생포한 포로 중 체첸 출신들이 확인됐다”며 “러시아 측에서도 아흐마트 여단이 투입됐다는 소식이 확인됐다”고 했다.

러시아는 다만 격전지인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도네츠크)에서는 아직 병력을 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NYT는 “탱크 등 기갑 부대의 이동도 아직 보이지 않는다”며 “예비대 성격의 부대가 주로 빠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미국 전쟁연구소(ISW)도 “일단 징집병과 비정규 부대 등이 주로 쿠르스크에 투입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열흘간의 전과에 고무된 분위기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14일 연설에서 “우리는 전략적 목표에 다가서고 있다”고 밝혔다. ‘전략적 목표’란 러시아 병력 분산, 협상에 활용할 러시아 영토 획득, ‘완충지대’ 설치 등이다. 완충지대 설치는 러시아군의 포격과 미사일, 활공 폭탄 공격을 막기 위해 러시아군을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가능한 한 멀리 밀어내는 것을 뜻한다.

러시아군이 황급하게 방어 진지 구축에 주력하고 있는 정황도 나오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군의 추가 진격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 점령당한 지역에서 수㎞ 떨어진 곳에 참호와 요새를 만들고 있는 장면이 위성사진에 잇따라 포착됐다. 키이우포스트는 “가장 가까운 참호는 국경에서 45㎞, 먼 곳은 75㎞ 떨어져 있다”며 구체적인 위치를 짚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러시아 인터넷에 월 보수 최대 21만루블(약 320만원)에 대전차 도랑, 참호, 보병 진지 구축을 돕는 인력을 모집하는 광고가 올라오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또 인근 벨고로드주에도 연방 차원의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이 같은 상황은 “우리 땅을 침범한 우크라이나군을 격퇴 중”이라는 러시아 측 주장과 배치된다. 앞서 러시아 외무부는 “쿠르스크에 침투한 우크라이나 무장 세력이 러시아군에 의해 밀려나고 있다”고 말했다. 아흐마트 특수부대 사령관도 “우크라군이 쿠르스크 원전 장악에 실패했으며, 남은 우크라군을 축출하기 위해 곧 강력한 공세를 개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우크라이나도 이에 맞서 병력을 계속 보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군사 전문가들은 텔레그램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쿠르스크 방면으로 ‘세모’ 마크를 단 우크라이나 기갑 장비와 장갑차들이 계속 들어가고 있다”며 관련 사진과 동영상을 올리고 있다. 세모 마크는 우크라이나의 쿠르스크 공략 작전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러시아의 반격에 우크라이나가 얼마나 잘 버티느냐가 이번 전쟁의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편 우크라이나는 이날 자국군이 점령한 쿠르스크 내 민간인 대피를 위한 ‘인도적 통로’ 설치 방침도 밝혔다. 이리나 베레시추크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쿠르스크의 민간인은 국제 인도법의 보호를 받을 것”이라며 “러시아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방향으로도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정부에 따르면 현재 쿠르스크에서는 약 13만명의 민간인이 대피했고, 앞으로 수만명이 더 대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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