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통탄 친나왓(37) 태국 프이타이당 대표가 의회의 총리 선출 표결이 열린 16일 수도 방콕에 있는 당 사무실에 들어서고 있다./AP 연합뉴스

탁신 친나왓(75) 전 태국 총리의 막내딸 패통탄 친나왓(38)이 16일 태국 신임 총리로 선출됐다. 타이포스트 등 현지 언론은 태국 연립정부 제1당 프아타이당(Pheu Thai Party·태국을 위한 당) 대표 패통탄이 이날 하원 표결에서 재적 의원 493명(489명 출석) 중 319명의 찬성으로 제31대 총리직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태국에서 부녀(父女) 총리가 나온 것은 처음이다. 패통탄은 역대 최연소 총리이자, 10년 전 재임한 고모 잉락 친나왓(57)에 이은 두 번째 여성 총리 타이틀도 갖게 됐다. 탁신 가문에선 탁신과 그의 매제 솜차이 웡사왓(77), 둘째 여동생 잉락에 이어 네 번째 총리가 나왔다.

그래픽=김하경

1986년생으로 탁신의 1남2녀 중 막내인 패통탄은 태국 명문 쭐랄롱꼰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영국으로 건너가 서리대에서 국제호텔경영 석사 학위를 받았다. 탁신 가문이 소유한 부동산 기업을 경영하다 2021년 10월 프아타이당 고문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지난해 10월 당 대표에 올랐다. 지난해 총선 과정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의료서비스 확대, 대중교통 요금 인하 등 친(親)서민 공약을 내세워 인지도를 쌓았다. 특히 당시 둘째 아이를 임신한 몸으로 무더운 날씨에도 유세에 나서 젊고 헌신적인 이미지를 구축했다고 카오소드 등 태국 언론이 보도했다.

패통탄은 전임 세타 타위신(61) 총리가 해임된 다음 날인 15일 총리 후보로 지명돼 다시 하루 만에 선출됐다. 정계 데뷔 3년 만에 각료 경험도 없이 정부 수반을 맡게 된 것이다. 탁신의 딸인 패통탄은 정계 입문 이후 차기 총리 후보 중 하나로 꾸준히 언급돼 왔지만, 지난해 총선 돌풍 주역이었던 전진당의 피타 림짜른랏(44) 전 대표 등에게 밀려 대중적 지지를 얻진 못했다. 미국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한 여론조사에서 패통탄을 총리로 선호한다는 응답은 6%였다. 프아타이당은 최근까지도 차이까셈 니띠시리 전 법무부 장관을 총리 후보로 유력하게 고려했다고 알려졌으나, 결국 정치 신인인 탁신의 딸을 선택했다. 탁신·잉락 남매의 지지자들이 2008년 창당한 프아타이당은 사실상 탁신이 지배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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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8일 태국 방콕에서 ‘소프트파워 포럼’에 함께 참석한 탁신 친나왓(앞줄 왼쪽) 전 총리와 막내딸 패통탄 친나왓(앞줄 오른쪽) 신임 태국 총리. 이 행사를 개최한 국가소프트파워전략위원회는 세타 타위신 당시 총리가 위원장을, 패통탄이 부위원장을 각각 맡고 있었다. /로이터 뉴스1

이날 태국 하원의 표결은 지난해 8월 취임한 프아타이당 소속 부동산 기업가 출신 세타 총리가 지난 14일 집권 1년 만에 불명예 퇴진한 지 이틀만에 치러졌다. 세타는 2008년 부패 혐의로 재판받던 탁신을 변호하다 법원 공무원에게 뇌물을 건네 징역형을 산 측근을 최근 장관직에 앉히려다 구설에 올랐다. 결국 태국 헌법재판소가 그의 해임을 결정했고 프아타이당은 다음 날 패통탄을 새 총리 후보로 지명했다.

세타는 지난해 총선에서 제1당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킨 전진당이 정부 구성의 주도권을 놓치는 바람에 총리직에 올랐다. 총리 후보로 나섰던 피타 림짜른랏 전진당 전 대표가 왕실모독죄 개정 등 개혁 정책을 추진한다는 이유로 보수 진영에서 거센 반발이 일었고, 전진당은 총리를 선출하는 하원 표결에서도 과반 지지를 얻지 못했다. 주도권을 쥐게 된 프아타이당은 과거 대치해왔던 군부 진영 정당들과 연합해 하원 과반의 찬성을 얻는 데 성공했다. 20여 년간 태국 정계를 양분하며 대치한 탁신계와 군부가 공동 집권하게 된 것이다. 지난 7일에는 헌법재판소가 ‘입헌군주제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전진당을 해산시키는 바람에 프아타이당이 제1당 자리까지 되찾은 상태다. 피타 전 대표도 향후 10년간 정치 활동을 금지당했다.

탁신 가문이 총리를 4명이나 배출하며 ‘장기 집권’한 비결로는 서민 친화적인 행보가 꼽힌다. 탁신 전 총리(2001~2006년 재임)는 농어촌 지역 개발, 의료보험 등 사회복지 시스템 구축을 추진하며 서민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쌓았다. 둘째 여동생인 잉락 전 총리(2011~2014년 재임)도 대중주의 행보를 계승했다. 1932년 입헌군주제 전환 이후 군부 쿠데타 시도만 19번 벌어지며 혼란이 계속된 태국에서 서민 친화적 정책을 내세운 탁신 가문은 광범위한 지지를 얻었다.

영국 가디언 등 외신들은 “탁신은 재임 시절 빈곤 타파와 의료 복지 보편화, 인프라 구축 정책으로 서민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군부에 축출된 뒤 약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태국 정치권에 막대한 영향을 발휘하고 있다”며 “그 덕에 그가 해외 도피한 이후에도 그와 관련된 정당이 작년을 제외한 모든 선거에서 득표율 1위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부동산 기업 등을 경영하며 쌓은 막대한 부 역시 탁신 가문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탁신은 대중주의 행보로 군부와 충돌했다. 그가 2006년 실각한 것도 유엔 총회 참석차 출국한 사이 정권에 반감을 가진 군부가 쿠데타를 벌인 탓이었다. 그러나 ‘왕실 개혁’과 ‘군부 타도’를 내세우며 젊은 층에서 큰 인기를 얻은 전진당이 급부상하는 사이 탁신과 프아타이당은 군부와 손잡고 연정을 꾸리는 이중적 모습을 보였다. 이에 전진당의 개혁 정책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이 군부와 손잡은 탁신계에 반발해 반(反)정부 시위가 확산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전진당 후신(後身)인 인민당 측은 패통탄 선출에 찬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고, 실제로 인민당 의원 전원이 기권표를 던진 것으로 전해졌다.

탁신 가문은 과거 부패로 비판받기도 했다. 방콕포스트에 따르면, 탁신·잉락은 모두 쿠데타로 실각한 뒤 부패 혐의를 받다 해외로 도피했다. 때문에 총선에서 1위를 한 정당이 해산되고 총리가 1년 만에 퇴진하는 초유의 정국 혼란 속에서 부패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탁신 가문 일원이 총리직에 오르면서 ‘세습 정치’ 논란도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현지 매체 네이션타일랜드는 “패통탄이 탁신의 딸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의 성취는 불가능했을지 모른다”며 “막중한 도전에 직면한 그에게 국가를 발전시킬 자질이 있느냐는 의문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경제 침체와 야당들과의 경쟁 구도 속에서 패통탄은 여러 전선에서 적들을 마주할 것”이라고 전했다.

탁신은 지난해 귀국해 8년형을 선고받았다. 프아타이당이 그를 사면시키려 딸을 전략적으로 총리직에 앉혔다는 관측도 있다. 이에 대해 홍콩 아시아타임스는 “탁신의 운명을 둘러싼 패통탄 총리의 행보는 면밀하고 비판적으로 감시받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티티폴 팍디와니치 태국 우본랏차타니대 교수는 “패통탄의 취임은 탁신에게도 큰 모험”이라며 “그가 경제 정책에 성공하지 못하면 인민당 인기가 더 높아져 프아타이당도 몰락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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