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언론 매체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의 이야기를 주로 정치나 경제, 굵직한 사회 이슈에 한해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에서 교환 유학을 하고, 일본 음식을 좋아하고,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기자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 일본에서 진짜 ‘핫’한 이야기를 전달해드립니다.

‘방구석 도쿄통신’, 지금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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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9월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유력 후보로 꼽히는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43) 전 환경상. 그의 출마 여부에 일본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니혼게이자이신문 디지털

지난 14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67) 총리의 불출마 선언으로 내달 치러지는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사실상 총리 선거) 레이스가 본격화했습니다. NHK에 따르면 선거는 내달 27일 치러질 것이 유력하다고 합니다.

고바야시 다카유키(小林鷹之·48) 전 일본 경제안보담당상이 지난 19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내달 치러지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연합뉴스

현재 레이스의 첫발을 뗀 건 고바야시 다카유키(小林鷹之·48) 중의원 의원입니다. 기시다 내각인 2021년 10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경제안보담당상을 지낸 그는 지난 19일 “자민당이 다시 거듭날 수 있음을 증명하겠다”며 총재선 입후보 의사를 공식화했습니다. 입후보에 필요한 20명 이상의 추천인 의원도 회견에 동석했습니다.

1974년 지바현 이치카와시에서 평범한 샐러리맨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난 고바야시는 기시다 총리와 같은 도쿄 가이세이고를 졸업하고 도쿄대 법학부를 다녔습니다. 186㎝의 장신으로 중고등학생 때 농구를 즐겼다고 합니다. 학사모를 벗고 당시 대장성(현재 재무성)에 입성한 뒤 주(駐)워싱턴 일본 대사관에 파견됐습니다. 당시 국제사회에서 일본이란 국가의 존재감이 작아지고 있음을 깨닫고 정계 입문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2012년 중의원 선거에서 고향인 치바에 출마해 당선됐고, 2021년 기시다 내각 발족과 함께 입각했습니다. 기시다가 총리가 된 2021년 총재선에선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63) 현 경제안보담당상을 지원했는데, 이번엔 직접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강점은 그의 젊은 나이입니다. 자민당 내부에서 ‘세대교체’를 요구하는 의원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고 합니다.

고이즈미 신지로 전 일본 환경상./니혼게이자이신문 디지털

고바야시와 마찬가지로 ‘젊은 피’ 이미지를 내세워 잠룡으로 총재선 물밑을 활보하고 있는 이가 있습니다. 오늘 레터는 이 인물에 포커스를 맞춰보려 하는데요. 2001~2006년 집권한 고이즈미 준이치로(82) 전 총리의 아들,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43)입니다. 정치 명문가 출신으로 가나가와현 간토가쿠인대, 미 컬럼비아대 대학원에 다닌 그는 졸업 이후 워싱턴의 한 싱크탱크를 거쳐 2007년 아버지의 비서로 정계에 재빨리 입문했습니다. 이듬해엔 아버지가 은퇴하면서 가나가와 차기 의원으로 점찍혔고 실제로 2009년 중의원 선거에서 당선됐습니다. 스물 여덟살 때였습니다.

의회 입성 직후부터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고 그간 자민당에 부재했던 ‘스타 정치인’의 탄생을 알리듯 인지도를 쌓아나갔습니다. 2009년 12월 그가 동행하는 가나가와 해상자위대 기지 견학에 5200여 명의 응모자가 쏠렸죠. 정원은 단 50명이었습니다. 영화배우를 연상케 하는 그의 수려한 외모도 인기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2013년 일본 내각부 장관정무관에 발탁된 고이즈미 신지로./지지통신

고이즈미는 초선부터 자민당 당직인 청년국장을 맡더니 2013년 내각부에 장관정무관으로 입각했고, 2015년엔 당 농림부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말 그대로 엘리트 코스를 밟았죠. 2019년 아베 집권기에 환경상으로 발탁, 당시 전후(戰後) 남성으로는 최연소 각료가 됐습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76) 총리 집권기인 2020~2021년에도 같은 직을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승승장구하던 고이즈미의 ‘허점’은 애석하게도 환경상 때 발생했습니다. 2019년 9월 취임 직후 미 뉴욕으로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참석하러 떠났는데요. 공개 석상에서 “기후변화 문제는 펀(Fun)하고 쿨(Cool)하고 섹시(Sexy)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을 했습니다. 일본은 물론 한국 등 다른 국가에서도 조롱의 대상이 됐어요.

2019년 9월 일본 환경상에 취임한 고이즈미 신지로는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 뉴욕을 찾았다가, “기후변화 문제는 펀(Fun)하고 쿨(Cool)하고 섹시(Sexy)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이 발언으로 그는 '펀쿨섹'이란 별명을 얻었다./X(옛 트위터)

이 밖에도 방미 도중 만찬 때 먹은 스테이크가 맘에 들었는지 “매일이라도 먹고 싶다”고 했다가, ‘소를 키우는 과정에서 온실 가스가 나와 환경오염 우려가 있다’는 즉석 질문에 “스테이크와 기후변화의 연관성이 뉴스가 될 수 있다면 (국민들이) 환경문제를 생각할 좋은 계기가 된다” “매일 먹고 싶다는 것은, 매일 먹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라고 엉뚱하게 답하며 그의 화법 자체가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밈(meme)’이 됐습니다. 젊은 층에 인지도를 높이는 데엔 성공했지만, 국민이 그의 각료로서의 자질을 의심하게 하였죠. 그의 어록을 모아 일본에선 ‘고이즈미 코분(構文·구문)’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고이즈미는 지금까지의 자민당 총재 선거 시즌마다 늘 하마평에 올라왔습니다. 이번 선거에선 비로소 가장 중요한 ‘키맨(key man)’의 역할을 맡게 된 모양새입니다. 일본 교도통신의 지난 17~19일 전국 여론조사에서 고이즈미는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25.3%)에 이어, 19.6% 지지율로 두 번째 총리 적합자로 꼽혔습니다. 3년 전 그가 도왔던 다카이치 경제안보담당상이 10.1%로 뒤를 이었고요. 이어선 고노 다로 디지털상(9.7%), 가미카와 요코 환경상(7.6%), 고바야시 전 경제안보담당상(3.7%) 등이었습니다.

이시바 시게루 전 일본 자민당 간사장./AFP 연합뉴스

사실 차기 일본 총리를 예측하는 데 전국 여론조사 결과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결국 현재 여당인 자민당 수장이 총리가 되는데, 자민당 수장인 총재는 당 소속 의원과 당원들의 투표로 뽑히기 때문이죠. 이에 교도통신이 자민당 지지층만을 상대로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고이즈미가 이시바에게 약 3% 앞선 24.2%로 당당히 1위였습니다. 지지율 추세가 파죽지세입니다.

다만 19일 출마를 발표한 고바야시와, 이미 물밑에서 출격을 준비 중인 이시바·고노 등과 달리 고이즈미는 아직 뚜렷한 출마 의지를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기시다가 불출마 선언을 한 지난 14일엔 “기시다 총리에게 ‘수고하셨다’는 말밖에 드릴 말씀이 없다. 그를 지지해 온 측근분들의 고생을 헤아릴 수 없다”며 말을 아꼈어요. 이에 그가 출마를 다음번으로 순연하고 이번에도 재차 다른 후보를 지원사격할 거란 전망도 적지 않습니다.

스가 요시히데 전 일본 총리./연합뉴스

고이즈미는 현재 자민당의 ‘큰손’이자 이번 선거의 킹메이커로 꼽히는 스가 전 총리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알려졌어요. 그는 스가 내각 시절 환경상을 지낸데다, 최근 기시다 내각에 ‘라이드쉐어(승차 공유 제도)’ 합법화를 함께 요구하며 합을 맞추기도 했죠. 지금은 정계에서 은퇴했지만 자민당 최대 파벌이었던 ‘세이와 정책연구회(올해 아베파로 해산)’ 상왕으로서 당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모리 요시로(森喜朗·87) 전 총리도 고이즈미를 물밑에서 돕고 있다는 보도(니혼게이자이신문)도 최근 나왔습니다.

이에 총재선 출격을 준비 중인 의원들은 고이즈미에게 도움의 손길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시바 전 간사장이 먼저 스타트를 끊었는데요. 그는 지난 14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자민당이 국민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나와 고노(디지털상), 고이즈미 등 세 명이 함께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이들과 연합을 구축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차기 총리 선호도 순위 상위권을 차지 중인 이 세 명은 3년 전 총재선에서 후보를 고노 디지털상으로 단일화해, 이른바 ‘코이시카와(小石河)’란 연합을 구축한 바 있어요. 지난 레터에서도 짧게 소개해드렸었죠.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의 아버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마이니치신문 디지털

이들 연합은 당시 선거 패배(기시다 승) 이후 허물어졌는데, 이시바가 다시 연합을 부활시키고 싶단 욕심을 드러낸 것입니다. 특히 이시바는 전국 여론조사에선 지지율 1위를 달리면서도, 당내 세력이 약하다는 게 한계점으로 꼽힙니다. 그만큼 자민당 거물들의 지지를 받는 고이즈미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죠. 고노 디지털상은 이미 자신이 속한 자민당 파벌 ‘아소파’ 수장인 아소 다로 부총재에게 출마 의사를 드러냈다고 알려졌습니다.

고이즈미가 다른 후보를 지원하는 대신 직접 출마에 나서 3년 전 뭉친 ‘코이시카와’가 완전히 라이벌로 돌아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는 지난 9일 현지 라디오 방송에서 “43세인 내가 이런저런 정치적 결단을 일일이 아버지 조언에 따라 내리진 않는다”고 언급했는데요.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평소 아들에게 “50세 전엔 총재 선거에 나오지 마라”고 조언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즉 고이즈미 전 환경상이 아버지의 ‘50세’ 조언을 따르지 않겠음을 시사한 거죠.

고이즈미 준이치로(가운데)의 일본 총리 재임 시절 모습./AP 연합뉴스

최근엔 고이즈미 전 총리가 “본인(아들)이 (출마를) 한다고 하면 말리지 않는다”고 말한다고 전해져, 사실상 아들에게 ‘출격 사인’을 보냈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한 일본 매체는 고이즈미가 최근 출마를 위한 ‘주변 환경 정비’를 하고 있고 이달 하순 이후에 움직임을 본격화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고이즈미 전 환경상이 출마할 경우, 그의 최대 강점은 ‘젊음’입니다. 그가 총리가 되면 세대교체를 통해 소속 의원들의 비자금 조성 논란 등 최근 국민 신뢰도가 바닥난 자민당도 쇄신의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다만 고이즈미의 발목을 잡는 건 역시 과거 수차례 논란이 됐던 그의 발언들입니다. 환경상을 빼면 총리에 오를만한 이렇다 할 이력이 없다는 ‘경험 부족’도 약점이죠.

고이즈미 신지로(왼쪽) 전 일본 환경상과 그의 부인 다키가와 크리스텔(47)./연합뉴스

고이즈미는 약점을 무릅쓰고 출마를 강행할까요, 혹은 이번 선거에선 다른 후보를 지원하고 약점을 보완한 뒤 나중 선거에 도전할까요. 약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자민당 총재 선거의 레이스를 유심히 들여다봐야겠습니다.

'도쿄 타워'가 보이는 일본의 수도 도쿄의 전경/조선일보DB

8월 21일 52번째 방구석 도쿄통신은 한 달 앞으로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 사실상의 총리 선거 레이스 상황과 그중에서도 유력 후보로 꼽히는 고이즈미 전 환경상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다음 주에도 일본에서 가장 핫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50~51편 링크는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고시엔 가고싶어” 별이 된 유망주의 꿈, 옛 동료들이 이뤄줬다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08/07/HHDWFQXP4BBA7PPQQYHXTO2UMU/

J팝 붐 중심, ‘파란나시’ 토미오카 “韓日 음악시장 가장 큰 차이는…”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08/14/GBYLLRHSZ5AOHPIX72RG7GG4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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