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 정장을 택함으로써 전당대회의 관습을 넘어섰다.”(뉴욕타임스) “옷차림에 무신경하고 보수적이라는 쓸데없는 비판을 갈색 옷으로 정면 돌파했다.”(LA타임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향한 장난기 넘치는 경의의 표현이었다.”(CNN)

지난 19일 미국 시카고에서 시작된 민주당 전당대회 첫날, 대선 후보로 나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입고 나온 갈색 정장이 뜻밖의 화제를 낳고 있다. 이날 해리스가 입은 옷은 갈색 바지 정장과 크림색 블라우스로, 해리스가 평소 즐기는 ‘파워 슈트’ 스타일이다. 관심을 끈 건 색깔이었다. 전당대회에 나서는 여성 정치인들은 보통 애국심을 고취한다는 의미를 담아 성조기에 들어가는 붉은색이나 푸른색, 흰색 중심으로 의상을 선택한다. 반면 해리스는 의외로 갈색 옷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주요 언론들은 이런 해리스의 선택을 놓고 “전형적인 스타일을 벗어난 파격” “또 다른 목소리를 들려주려는 의도”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동안 튀지 않고 실용적인 정장을 고수해 옷차림으론 거의 주목받지 않았던 해리스가 이번만큼은 신선한 전략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그래픽=이진영

뉴욕타임스는 ‘해리스의 뜻밖의 갈색 정장(Tan Suit Surprise)’이란 제목의 칼럼을 통해 전당대회 무대에서 해리스가 프랑스 패션 브랜드 끌로에의 황갈색 맞춤 정장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이를 통해 해리스가 전당대회의 하이라이트인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 앞서 ‘커튼을 열고’ 대중의 시선을 끄는 데 성공했을 뿐 아니라 ‘유해하지 않은 방식으로’ 관심을 모았다고 평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도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해리스가 이번 무대에서만큼은 낯선 색상을 택함으로써 ‘기존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장(場)으로 나아가겠다”는 메시지를 냈다는 것이다. 황갈색이 “낙관주의”와 “부드러움”을 보여준다는 해석까지 나왔다.

언론들이 해리스의 갈색 정장을 놓고 이렇게까지 호들갑을 떠는 것은 해리스가 그간 다른 여성 정치인들에 비해 옷차림으로 주목받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리스는 줄곧 단정한 바지 정장을 고수해 왔다. 가끔 보랏빛이나 자줏빛처럼 튀는 색상도 입긴 했지만, 스타일만큼은 늘 단정하고 보수적인 쪽에 속했다. 워싱턴포스트가 “옷차림으로는 주목받길 거부하는 것 같다”고 평했을 정도다.

그래픽=이진영

일각에선 이번 옷차림이 전당대회 주요 연사로 등장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향한 ‘장난기 넘치는 애정 표현’ 아니냐고도 얘기한다. 오바마는 재임 중이던 2014년 8월 테러 단체 ‘이슬람국가(IS)’에 맞설 대책과 관련한 기자회견에 밝은 황갈색(tan) 정장을 입고 나와 “진지함이 부족하다” “대통령답지 않다”는 비판을 들었다. 당시 미 정치권에선 ‘황갈색 게이트(tan-gate)’라는 말이 나왔다. 오바마의 대선 슬로건이었던 ‘예스 위 캔(Yes We can)’을 희화화한 ‘예스 위 탠(Yes We Tan)’, 자서전 제목 ‘담대한 희망(The Audacity of Hope)’을 비꼰 ‘담대한 회갈색(The Audacity of Taupe)’ 같은 패러디가 쏟아졌다. 이에 해리스가 황갈색을 입은 것은 민주당을 향한 상대 진영의 ‘트집’을 재치 있게 풍자하면서 오바마를 향한 경의를 표시한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가디언 등은 다만 “물론 해리스가 그냥 이날 이 옷이 입고 싶었을 뿐일 수도 있다”고 했다.

LA타임스 등은 해리스가 이번에 갈색 옷을 입음으로써 “옷차림에 있어선 보수적이고 무신경하다는 쓸데없는 비판을 정면 돌파했다”고도 보고 있다. 미국 최초로 여성 대통령에 도전하는 해리스로서는 ‘보수적인 옷차림만 고수한다’는 지적을 새로운 이슈로 불식시키고 싶어 한 게 아니냐는 얘기다. 실제로 소셜미디어엔 “여성 정치인의 옷 얘기는 그만 듣고 싶다(tired of talking about what public women wear)는 얘기도 만만치 않게 쏟아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영국 패션 전문 매체 비즈니스오브패션(BOF) 등도 비슷한 분석을 내놓았다.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 정치인으로 대중들은 흔히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배우자인 미셸 오바마 여사,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 장관 등을 꼽는다. 모두 대통령 배우자 출신이고, 각자 다채로운 스타일을 보여줬다. 반면 검사와 부통령을 거쳐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해리스는 옷차림보단 능력과 정책으로 대선 경쟁에서 승부를 보는 것이 빠르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대선이 임박한 만큼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비즈니스오브패션은 “미국의 주류 정치계에서 활동하는 흑인·인도계 여성으로서 자기표현을 절제하면서 정치력을 보여주려는 시도”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