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 출산을 선택한 유명인들.(왼쪽부터 시계방향) 연인 기욤 카네와 결혼하지 않고 딸을 낳은 프랑스 배우 마리옹 코티야르, 2020년 해외 한 정자은행에서 일본인 정자를 기증받아 아들을 출산한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 비혼 동거를 하며 아이를 낳은 일론 머스크(사진 가운데) 테슬라 최고경영자와 연인 그라임스(사진 왼쪽). /게티이미지코리아·놀 출판사·X(옛 트위터)

지난 2분기 한국의 결혼 건수와 출생아 수가 모두 증가했다고 통계청이 28일 발표했다. 혼인은 전년 동기 대비 17% 늘어난 5만5910건, 출생아 수는 1.2% 증가한 5만6838명으로 집계됐다. 아울러 이날 발표된 ‘2023년 출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출생 중 비혼 출생 비율이 5%에 육박하며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혼인 관계 밖에서 태어난 신생아가 1만900명으로 전체의 4.7%였다. 한 해 전보다 1100명 늘었고 5년 전(2.2%)에 비해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이처럼 결혼의 테두리 밖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이 계속 늘고 있긴 하지만 한국의 비혼 출생은 주요국과 비교할 때 여전히 매우 적다. 세계 최저인 출산율이 반등하지 않아 고전하는 한국이 비혼 출생에 대해 지나치게 비(非)우호적인 제도 및 문화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비혼 출생 비율은 프랑스 62.2%, 영국 49.0%, 미국 41.2%, 호주 36.5% 등으로 대부분이 한국을 크게 웃돈다. 비혼 출생 비율이 한국보다 낮은 나라는 여전히 보수적인 일본(2.4%)과 이슬람 국가인 튀르키예(2.8%) 정도다. OECD가 집계한 회원국 37국(38국 중 통계 없는 콜롬비아 제외) 중 29국은 비혼 출생 비율이 30%를 넘었다. 회원국 평균은 41.9%였다.

그래픽=양인성

미국·유럽 등의 비혼 출생이 늘 지금처럼 많았던 것은 아니다. 미국만 해도 1960년대 비혼 출생 비율이 5%대였다. 현재 출생아 중 절반 정도가 결혼 밖에서 태어나는 영국도 1970년대엔 비혼 출생 비율이 7% 정도에 머물렀었다. 하지만 여성의 경제적 자립도가 올라가는 가운데 결혼이란 틀에 제한되지 않은 출산·육아의 인정이 출산율 제고에 득이 된다는 각국 정부의 제도 개정이 이뤄지면서 비혼 출생은 늘기 시작했다.

프랑스·영국 등은 동거 커플과 자녀가 혼인 가족과 같은 복지 혜택을 받도록 ‘가족’의 정의를 바꿨다. 미국·호주 등은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체외 수정을 통해 출산할 길을 넓혀 싱글 여성에게도 비혼 출생의 기회를 늘려주고 있다. 호주국립대가 발간하는 학술 저널 이스트아시아포럼은 최근 “출산율을 반등시키지 못하는 한국이 저출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에만 초점을 맞춘 그동안의 대책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정부가 먼저 (저출생 대책 수립 과정에) 다양한 유형의 가족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 아이가 누워서 엄마의 코를 잡고 놀고 있다. 아빠의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아이를 놀아주는 엄마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최근 서구권에서는 ‘자발적 싱글맘’을 뜻하는 ‘초이스맘’의 비혼 출산이 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법·제도의 부재로 OECD 평균 대비 비혼 출산률이 매우 낮게 나타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에선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나 혼인신고 없이 동거만 하는 커플의 자녀가 일반적이지 않다. 반면 미국과 유럽에선 유명인을 포함해 결혼 제도 밖에서 태어난 자녀와 함께 생활하는 이들을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다. 비혼 출생을 통해 엄마가 된 여성을 뜻하는 ‘초이스맘’이란 용어도 흔히 쓰인다. 결혼하지 않은 동거 커플이나 비동거 연인 사이에, 혹은 정자 기증을 받아 시술을 통해 아이를 낳은 싱글 여성 등을 두루 포함하는 용어다.

유명인 중에도 비혼 출생을 선택한 이들이 적지 않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캐나다 가수 그라임스는 3년 동안 동거하며 2020·2021년에 아들·딸(딸은 대리모 출산)을 낳았지만 결혼한 적이 없다. 프랑스 유명 여배우 쥘리에트 비노슈는 두 명의 전 동거인 사이에 각각 아이를 한 명씩 낳았다. 또 다른 프랑스 배우 마리옹 코티야르 역시 영화감독 기욤 카네 사이에 두 아이가 있는데, 결혼하지 않은 채 2007년부터 동거 상태다.

유럽연합(EU) 중 비혼 출생 비율이 가장 높은 프랑스는 비(非)혼인 동거 커플이나 싱글 여성이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법적 제도가 잘 마련돼 있는 국가로 꼽힌다. 가장 대표적인 제도가 PACS(팍스)라고 불리는 ‘시민연대계약(Pacte civil de solidarité)’이다. 1999년 도입된 팍스는 결혼하지 않은 동거 커플에게도 결혼과 유사한 법적 권리와 의무를 준다. 팍스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일반 결혼 가정의 자녀들과 똑같이 무료 교육, 양육 수당 등의 복지 혜택을 받는다. 프랑스 비혼 출생 비율은 팍스 도입 전인 1998년 41.7%였다가 2020년 62.2%로 빠르게 상승했다. 팍스는 197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이어지던 출산율 하락에 제동을 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8년 1.76까지 내려갔던 프랑스 합계출산율은 2010년 2.02까지 반등했고 지금은 다소 내려가 1.8 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영국도 혼인 외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보수적이었던 가족 정책을 점차 바꿔나가고 있다. 2005년 프랑스와 비슷한 ‘시민 계약’ 제도를 도입해 동거 커플 등이 낳은 아이도 혼인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와 동일한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여성 인권 신장에 이어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고 자립도가 높아진 것은 싱글 여성의 비혼 출생을 늘어나게 한 요인으로 꼽힌다. 과거처럼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할 필요가 줄자 결혼이라는 제도에 얽매일 필요 없이, ‘엄마와 아이’로만 이뤄진 가정을 선택하는 여성도 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 이 같은 사회적 인식 변화를 바탕으로 비혼 여성에게도 결혼한 부부와 마찬가지의 보조생식술(IVF) 건강보험 혜택을 주도록 하는 등의 내용으로 2021년 생명윤리법을 개정했다. 프랑스 정부의 개정안 검토 보고서는 “다양한 생활공동체를 영위하는 구성원 각자에게 동등한 자유와 평등을 보장한다”고 그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프랑스는 태어날 아이의 알 권리 보장과 무분별한 정자 기증 문제를 막기 위해 아이가 성인이 된 후 정자 기증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고 정부가 정자 기증자 신원 데이터베이스를 직접 관리하는 등의 보완 장치를 두었다.

미국은 세금·연금 등에서 여전히 혼인 부부와 자녀로 이뤄진 가족이 유리하지만 제도에 앞서 문화·사회적으로 비혼 출생이 정착한 경우다. 미 공영방송 NPR은 “결혼이라는 꼬리표 없이도 함께 살면서 파트너십을 맺고 자녀를 양육하는 생활양식이 이제는 일반적 현상이 됐다”고 했다. 특히 지난 몇 년 사이 소수자·다양성을 강조하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가치가 올라가고 있는 미국 사회의 분위기가 비혼 출생 가정에 대한 선입견을 희석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갤럽 설문에 따르면 ‘비혼 출생을 도덕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한 미국인의 비율은 2002년 45%에서 2015년 61%로 올라갔다.

결혼했다가 이혼할 경우 법원의 재산 분할 명령, 막대한 변호사 비용 등으로 경제적 타격을 받을 수 있어 자녀를 갖더라도 결혼이란 ‘리스크’ 대신 ‘커플과 자녀’로만 이뤄진 생활공동체에 머물겠다는 이들이 미국엔 적지 않다. 1984년부터 배우 커트 러셀과 동거하며 둘 사이에 자녀 한 명을 낳아 기른 할리우드 스타 골디 혼은 지난해 CNN 인터뷰에서 “과거 이혼한 경험이 결혼 대신 동거를 선택하게 했다”며 “이혼은 항상 추하고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다. 나는 ‘원한다면 매일 (홀로 돌아갈)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느낌이 좋다”고 했다.

☞비혼 출생

법률상 부부 사이가 아닌 이들 사이에서 이뤄진 출생. 동거·사실혼 관계의 커플 사이에 이뤄진 출생, 싱글 여성에 의한 출생 등을 포괄한다. 사회의 변화와 함께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이 진화하면서 미국·유럽 등에선 계속 늘고 있다.

☞초이스맘

’자발적 싱글맘(single mother by choice)’의 줄임말. 결혼하지 않고 본인의 의지로 정자 기증 등을 통해 아이를 낳거나 입양해 키우는 여성을 가리킨다. 스스로 선택한 결과라는 점을 강조해 ‘자발적’이란 표현이 들어갔다. 1980년대 인공수정·입양 등을 통해 아이를 갖는 여성이 증가하면서 쓰이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엔 경제적으로 자립한 여성이 전통적인 가족 구조 밖에서 출산하는 일이 늘고 사회·문화적 인식이 변하면서 더 많이 쓰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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