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2024년 대선 첫 TV 토론이 열렸다. /AP 연합뉴스

10일 TV 토론으로 처음 격돌한 민주당 대통령 선거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여성 낙태권 문제에 대해 특히 강하게 충돌했다. 두 사람은 ‘낙태는 연방 정부가 지켜야 할 여성의 생존권’(해리스) ‘각 주가 결정하고 판단할 사안’(트럼프)이라는 각자 입장을 앞세우면서 날 선 공방을 주고받았다. 첫 ‘유색인종(인도계 흑인) 여성’ 대선 후보인 해리스의 등판으로 여성·이주자·인종 등의 문제가 더 선명하게 부각됐다는 평가다. 2020년 대선 토론 때는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코로나 대응 실패와 경제난, 기후 변화 대응, 경찰 과잉 진압으로 인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이 촉발한 인종차별 문제 등이 주요 이슈였다.

해리스는 이날 “많은 미국 국민은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을 내릴 자유가 정부에 의해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면서 “트럼프가 재선된다면 그는 전국적인 낙태 금지법에 서명할 것”이라고 했다. 또 “낙태 금지로 인해 주차장에서 아이를 낳거나 15세 소녀가 임신을 유지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성폭행과 근친상간 등 긴급한 상황에서 낙태를 결정할 권리가 여성에게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해리스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서 “나는 낙태를 금지한 적이 없고 낙태 금지법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래픽=백형선

낙태권 문제가 미 대선의 핵심 현안으로 떠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낙태권을 헌법상 권리로 인정하고 임신 6개월 전까지 낙태를 가능케 했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연방 대법원이 “낙태 허용 여부는 연방 정부가 다룰 일이 아니라 주 정부의 결정 사항”이라며 49년 만인 2022년 폐기하면서 핵심 정치 현안으로 급부상했다.

이 판결은 조 바이든 행정부 때 나왔지만, 전임인 트럼프가 대통령 재임 시절 보수 성향 대법관 세 명을 잇달아 임명하면서 대법원의 이념 구도가 6대3 ‘보수 절대 우위’ 구도로 재편돼 가능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트럼프가 여성 낙태권을 빼앗았다”고 주장하면서 대선 이슈로 불을 지폈다.

10일 미국 대통령 후보 TV 토론에서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오른쪽) 부통령이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바라보며 발언하고 있다. 두 사람은 낙태, 이민자 등 현안에 대해 날 선 공방을 주고받았다. /AFP 연합뉴스

‘로 대 웨이드’ 판결 폐기에 따라 보수 성향 주 정부들이 임신 초기부터 낙태를 엄격하게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이에 반대하는 시민 청원이 잇따르면서, 미 50주 중 10주가 대선(11월 5일)과 같은 날짜에 낙태권의 주 헌법 명시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를 치르기로 했다. 여기엔 대선 결과를 결정할 일곱 경합주 중 두 곳(애리조나·네바다)도 포함돼 있다. 낙태권 보장을 원하는 유권자들이 추가로 투표소에 많이 나올 경우 트럼프에게는 불리한 구도라는 전망이 많다. 이날도 해리스는 “트럼프가 (보수 성향) 대법관 3명을 직접 고른 것은 낙태권을 후퇴시키려는 의도가 있었고 대법관들은 정확히 그의 의도대로 움직였다”고 공격했다.

이날 토론에선 불법 이민자 문제로도 공방이 벌어졌다. 트럼프는 이날 “많은 이민자가 불법으로 국경을 넘어 들어오고 있고 해리스는 (바이든 정부에서) ‘국경 차르(강력한 권한을 부여받은 공직자)’였다”고 비판했다. 해리스가 국경을 제대로 통제하지 않았다고 비난한 것이다. 하지만 이어 “이민자들은 개·고양이를 먹는다” “베네수엘라의 범죄율이 낮아졌는데 이는 그들이 범죄자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미국으로 보내기 때문” 등 사실과 먼 무리한 발언으로 역효과가 났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해리스는 이런 발언에 “너무 극단적이다. 이래서 한때 지지자들이 당신에게서 돌아선 것”이라고 역공했다.

TV토론 다음날 '9·11테러 23주기 추모식'서 나란히 - 9·11 테러 23주기인 11일 미국 뉴욕의 테러 현장인‘그라운드 제로’에서 열린 추모 행사에 11월 대통령 선거의 주역들이 집결했다. 조 바이든(왼쪽에서 둘째) 대통령과 그에게서 민주당 대선 후보직을 물려받은 카멀라 해리스(왼쪽) 부통령,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오른쪽에서 둘째) 전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 J D 밴스(오른쪽) 상원 의원이 모두 참석했다. 이들 가운데 선 인물은 테러 이듬해인 2002년 취임해 뉴욕을 이끌었던 마이클 블룸버그 전 시장이다. /AFP 연합뉴스

최근 들어 트럼프는 해리스의 ‘흑인 정체성’을 공격(“트럼프는 요즘에 와서야 흑인임을 강조하더라” 등)해 논란이 됐는데, 해리스는 이날 토론에서 이 문제를 꺼냈다. 당시 트럼프 발언에 대해 “미국 국민을 분열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인종을 이용하려 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것은 비극”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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