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루 경기장에서 팔레스타인 국가 대표 축구 선수들이 요르단과의 경기에 앞서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5일 서울에서 열린 2026년 월드컵 축구 아시아 3차 예선에서 홈팀 한국을 상대로 깜짝 무승부를 기록한 팔레스타인이 지난 10일 요르단과의 2차전에서 1대3으로 패했다. 경기 시작 5분 만에 선제골을 내준 뒤 36분 만에 동점골로 따라붙어 돌풍을 이어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겼지만 잇따라 추가 골을 내줬다.

이날 경기는 본래 팔레스타인의 홈경기로 치러져야 했지만, 제3국인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경기장에서 진행됐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골키퍼인 라미 하마데는 “우리는 지금 전쟁을 겪는 이들을 위해 뛰고 있다”며 “곧 전쟁이 끝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戰時) 상황에도 팔레스타인 축구 대표팀이 자국 국기를 가슴에 달고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축구와 같은 스포츠 부문은 전쟁의 그늘에서 비켜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 않다.

지난해 10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무장 단체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전쟁이 발발한 이후 정상적인 팀 운영은 불가능해졌다고 아랍권 매체 알 자지라가 10일 전했다. 국내 리그가 중단됐고, 경기장 등 관련 시설은 인질 수용소로 쓰이거나 폭격에 파괴됐다. 축구 선수들은 이 때문에 요르단이나 리비아 등 인근 국가 리그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 남은 이들은 지역 체육관에서 훈련하며 정상적인 경기가 재개되기를 기다린다. 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가족이나 친척의 안전 때문에 출전을 포기한 선수들도 적지 않다.

계속되는 전쟁에 선수 숫자도 줄어들고 있다. 팔레스타인축구협회(PFA)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으로 현재까지 최소 410명의 운동선수와 코치를 비롯한 스포츠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중 297명이 현역 축구 선수다. 스타 선수 출신으로 코치와 감독을 지낸 하니 알 마스다르도 지난 1월 가자지구 내 고향 마을이 폭격당하면서 사망했다.

그럼에도 대표 선수들은 희망을 품고 그라운드를 누빈다. 앞서 지난 1월 열린 2023 아시안컵에선 16강에 올라 돌풍을 일으켰다. 2026 월드컵부터 본선 진출국이 기존 32국에서 48국으로 늘어나면서 월드컵 본선 진출의 꿈을 더욱 키울 수 있게 됐다. 미드필더 모하메드 바심은 “그들(이스라엘)은 우리의 꿈을 파괴하려 하지만, 우리 길을 막도록 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팔레스타인에서 축구의 의미는 남다르다.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1920년대 처음 축구가 들어온 이래로 축구는 점차 팔레스타인의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무력 충돌이 일상이 된 이후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축구는 저항과 연대의 상징으로 그 의미가 한층 격상됐다. 유엔에선 정식 국가가 아닌 ‘비회원 옵서버 국가(참관국)’ 지위에 머무르고 있지만, 1993년 이스라엘과 두 나라로 평화 공존을 추구하는 내용의 오슬로 평화협정 체결을 계기로 1998년에 국제축구연맹(FIFA)의 회원국으로 가입해 월드컵 예선전에 참가해왔다.

지난 6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데이르 알 발라 난민촌 인근 해변에서 젊은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 간 전쟁이 시작된 이후 경기장 등 체육 시설이 대거 파괴됐고, 국가 대표 축구팀은 월드컵 예선 홈경기를 제3국에서 치르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팔레스타인은 다음 달 15일 쿠웨이트와 홈경기를 치를 예정이지만 이 경기 역시 제3국에서 열릴 가능성이 크다. 골키퍼 하마데는 “조만간 (국내에서 경기를 치르는 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며 “우리는 팬들에게 힘을 얻고, 팬들은 경기장을 가득 채울 것”이라고 했다.

다음 달이면 발발 1년을 맞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의 총성을 멈추려는 협상은 공전을 거듭하고 있고, 포성은 여전히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10일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의 인도주의 구역에 있는 알마와시 난민촌을 공습했다. 이번 공습으로 최소 19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지자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인구가 밀집된 지역에서 살상 위력이 큰 무기의 사용은 용납될 수 없다”며 비난했다. 알마와시는 이스라엘군이 민간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지정한 ‘인도주의 구역’에 해당한다. PFA는 지난 5월 FIFA에 이스라엘의 월드컵 출전을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FIFA는 이에 대한 결정을 몇 차례 미룬 바 있다. 10월 열리는 회의에서 이에 대한 결론을 내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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