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중 한 명인 제임스 로빈슨 미국 시카고대 교수가 2018년 촬영한 프로필 사진. 그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한국 경제 개발 정책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인공지능(AI)으로 인해 파괴되는 일자리만큼 좋은 일자리가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이는 사회의 분노를 유발해 경제를 넘어, 정치적 양극화로 치달을 위험이 있습니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 공동 수상자인 사이먼 존슨(61)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15일 본지 화상 인터뷰에서 “AI가 초래한 부의 편중으로 시민들의 분노가 커지고 이를 포퓰리스트(대중 영합주의자)가 파고든다면 지금까지 구축한 제도가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부의 집중을 완화할 대안으로 일부 정치인과 기업인이 거론 중인 보편적 기본소득에 대해선 “일 자체가 갖는 가치와 존엄성이 존재하며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일하기를 원한다. 인간의 역량을 끌어올릴 직업을 통해 경제 자체가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며 반대한다고 했다.

존슨 교수는 국가의 번영과 쇄락을 정치·경제 제도라는 관점에서 분석한 공로로 다론 아제모을루(57) MIT 교수, 제임스 로빈슨(64) 미 시카고대 교수와 노벨 경제학상을 14일 공동 수상했다. 아제모을루 교수와는 AI 혁명 시대의 국가 제도를 연구한 책 ‘권력과 진보’를 썼다.

한편 로빈슨 교수는 14일 전화 인터뷰에서 “박정희 대통령 시절 수출 주도형 개발 정책이 한국의 경제 발전을 이룬 중요한 성공 요인 중 하나인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한국 모델’의 놀라운 독창성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모든 극적인 성공은 내부에서 나오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경제적 성공으로 가는 길은 정치의 과제”라고 했다.

제임스 로빈슨, 사이먼 존슨

로빈슨 교수는 인터뷰에서 “최근 박정희 대통령 시절(1963~1979)의 개발 정책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며 “한국은 1960~1970년대 교육에 막대하게 투자하는 등 재능과 창의성이 번성할 수 있는 일련의 제도를 도입했지만, 북한은 그러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재능과 창의성이 짓밟히고 있다”고 했다. 그는 최근 미·중 갈등으로 인한 세계 무역 구도 개편을 한국이 기회로 삼으라고 당부하면서 “한국은 아시아에서 서방 국가들이 확실히 신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민주주의 동맹국으로서, 세계 질서 재편으로 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는 한반도의 위성 사진이 실려 있다. 남한은 불빛으로 밝게 빛나고 북한은 암흑 상태인 사진이다. 이 사진이 실린 챕터엔 이렇게 쓰였다. “남북의 이런 격차가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1945년 남북한 정부가 판이한 경제 운용 방식을 채택하면서 운명이 갈렸다.” 로빈슨 교수는 인터뷰에서 “큰 그림을 보자면 ‘사람들에게 인센티브와 기회를 창출하는 제도와 규칙이 있는가’ 하는 것이 (남북 간의) 근본적인 차이”라고 했다.

-남북의 제도 차이를 경제학적으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북한은 ‘착취적(extracting) 제도’를 기반으로 사회를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모든 권력과 자원을 공산당에 집중시키는 독재 체제다. 자유가 없는 대다수 북한 주민들은 기근에 시달리며 희생된다. 반대로 남한은 1960~1970년대 교육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리면서 극도로 ‘포용적인(inclusive) 사회’를 만들었다.”

-한국은 무엇이 달랐나.

“당시 한국의 경제적 성공이 지금 같은 발전된 한국으로 변모하려면 ‘제도적 변화’가 뒤따라야 했다. 한국은 독재자 한 명이 성공하기를 원해서 성공한 나라가 아니다. 번성하는 민주주의로, 훨씬 더 포용적인 정치 제도로 전환했는데, 이것(민주주의 제도 정착)이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폭발적인 경제 발전을 (한국이 이후에도) 지탱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 이 모든 것을 개인적 역량으로만 추구하지 않고 제도화했다는 게 ‘한국 모델’이 가진 독창성이다.”

-한국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독재자란 비판도 받는데.

“나도 그가 독재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에 대한 (경제 발전) 계획을 수립했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서울에 있는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가 (나라를 위해) 수출에 집착하고 또 집착했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세계 역사에서 그런 사례(리더가 경제 발전을 위해 노력한 사례)는 많지만 성공한 사례는 많지 않다.”

-지금의 한국 경제에서 주목하는 것은.

“나는 요즘 한국에서 창의성(creativity)을 본다. 한국의 성공을 말할 때 삼성·현대만 말하는 게 아니다. K팝, 영화, 드라마도 있다. 지금 한국은 하나의 문화 현상이다. 이 현상의 근본엔 창의성이 있다. 그래서 나는 한국인들이 새로운 시대의 경제난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매우 낙관한다. 지금 한국의 가장 큰 매력은 ‘문화적 폭발’이다. (문화의 영향으로) 내 아들은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멋진 곳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이 이 번영을 유지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모든 극적인 경제적 성공은 (국가) 내부에서 나온다. 경제학자가 ‘요술 지팡이’를 들고 와서 한국인들이 생각하지 못한 어떤 정책을 내놓는 모습을 상상한다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모든 국민은 번영을 열망한다. 이를 이룰 제도를 제대로 구축하는지가 관건인데, 이 과제는 정치적 과제이고 국가가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중국과 다른 대만의 (정치·경제) 제도를 보라. 누가 만들었나? 대만인들이 스스로 만들지 않았나.”

-한국은 고령화 등 문제도 적지 않다.

“고령화가 자주 언급되지만, 지금은 청년 인구 부족과 노동력 감소에 대한 기술적 해결책이 있는 ‘로봇의 시대’ 아닌가. 물론 (신기술이 유발하는) 어려운 문제들이 존재하지만 내가 아는 한국은 이런 문제들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굉장히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무엇보다 (한국의 정치 제도인) 민주주의가 문제를 알아내고 해결하는 데 매우 효율적인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빠른 속도로 발전 중인 AI(인공지능) 또한 인구 고령화, 출산율 하락, 노동력 감소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AI는 인간의 생산성을 엄청나게 끌어올리고 생활 수준을 높이며 많은 유익한 결과를 가져올 잠재력을 지닌 기술이다.”

-10년 후 한국의 경제적 위치는 어떻게 변할까.

“요즘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상은 ‘세계화의 후퇴’다. 한국은 분명히 세계화에서 엄청난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은 (지나친) 중국 의존 등에서 벗어나 수출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최근의 (미·중 갈등 등) 글로벌 무역 재편은 한국에 수출국을 다변화할 기회가 될 것이다.”

-북한·러시아 등 권위주의 국가들의 앞날은.

“(권위주의 국가 등의) 착취적 제도는 경제의 역동성이나 혁신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러시아는 천연자원 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란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누구든지 사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제품을 생산할 능력이 없다. 그들의 국가 제도가 혁신을 창출하지 못하고, 세계를 위협할 기술적 역동성도 이뤄내지 못한다는 게 내 의견이다. 물론 북한도 미사일을 발사할 수는 있겠지만 한국을 능가하는 능력은 없다는 사실을 모두 안다.”

한편 이정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올해 노벨 경제학상의 의미에 대해 “수상자들은 지리적으로 붙어 있고 인종도 똑같은 남북한의 사례를 통해 제도적 차이가 국가 번영의 막대한 격차를 불러왔다는 점을 성공적으로 입증했다”고 했다.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의 김용범 해시드오픈리서치 대표는 “그간 주류 경제학이 수학·통계학적 분석에 몰두하다 보니, 더 큰 범주에서 정치와 사회적 변수들을 놓치고 있었다”며 “(이번 수상이) 경제학의 본류를 회복했다”고 평가했다.

☞제임스 로빈슨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시카고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를 맡고 있다. 1960년 영국에서 태어나 런던정경대를 졸업하고 미 예일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정치경제와 비교정치, 정치·경제발전론을 전공했다. 주로 중남미와 아프리카 국가들의 정치·경제 체제와 역사를 연구한다. 다론 아제모을루 MIT 교수와 함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좁은 회랑’을 썼다.


사이먼 존슨 교수 인터뷰 전문은 링크를 클릭하세요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us/2024/10/16/4VKWYFLHDZAPVM5CYEAG5M7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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