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입구는 교황의 마지막 모습을 보려는 사람들로 새벽부터 북새통이었다. 23일 오전 5시, 교황의 일반 조문이 시작되는 오전 11시까지 여섯 시간이 남았지만, 대성전으로 이어지는 바티칸의 대회랑 북쪽 입구에는 벌써 200여 명이 줄을 서 있었다. 분 단위로 사람들이 불어났다.
미국인 그레고리(49)씨 부부는 “올해 희년(25년마다 돌아오는 가톨릭의 성스러운 해) 순례차 큰맘 먹고 왔다가 교황님 선종을 마주하게 됐다. 오늘 저녁 귀국이라 그전에 꼭 조문을 하려 새벽같이 나왔다”고 했다. 줄 뒤쪽에 서 있던 키아라(30)씨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같은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이었다. 그는 “지난 10년간 로마에서 공부하고 생활하면서 교황님의 존재는 내게 큰 위안이자 자랑거리였다”며 “누구보다 먼저 조문을 하고 싶어 나왔는데, 새벽부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올 줄은 몰랐다”고 했다.

날이 밝자 조문객들의 발길은 더욱 늘어나 줄의 길이는 어느새 수백m에 달했다. 오전 8시가 되자 9시에 시작하는 교황의 운구 의식을 보려는 이들의 성베드로 광장 입장이 허용됐다. 줄의 맨 뒷부분에선 “성베드로 대성전 입장까지 서너 시간 걸릴 수 있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선종 때는 10만명이 넘는 참배객이 몰리면서 수㎞의 줄이 늘어섰고, 조문까지 평균 여섯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오전 10시쯤 성베드로 광장과 그 주변엔 이미 수만 명이 운집했다. 10시 30분, 교황 운구 의식을 보려 광장 맨 앞에 앉아 있던 5000여 명을 시작으로 대성전 입장이 시작됐다. “드디어 문이 열렸다”며 곳곳에서 박수와 환성이 터져 나왔다. 이내 광장 뒤쪽에서 대기하던 1만여 명도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줄을 잘 못 선 이들이 급한 마음에 울타리를 뛰어넘어 달려가기도 했다.

앞서 오전 9시, 성베드로 대성당으로 향하는 교황의 첫 운구가 시작됐다. 교황의 관은 바티칸 의전 요원 14명이 직접 어깨에 메고, 교황이 선종 직전까지 머물던 산타 마르타의 집을 빠져나왔다. 이어 케빈 패럴 교황청 궁무처장(추기경)과 성직자들, 아르헨티나에서 온 교황의 가족·친척들의 안내를 받아 로마 순교자 광장과 종루 아치를 지나 성베드로 광장으로 들어온 뒤, 중앙문을 통해 대성당 내부로 옮겨졌다. 광장에 미리 입장한 1만여 명의 신도들은 이 장면을 지켜보며 박수를 쳤다.
교황의 관은 예수의 열두 사도 중 첫째이자, 초대 교황인 성 베드로의 무덤 앞에 자리를 잡았다. 바로 위에는 높이 20여m의 기둥 네 개가 받치는 화려한 청동 구조물인 ‘발다키노(천개·天蓋)’가 있다. 발다키노가 덮은 ‘고백의 제대’는 이 성당의 주 제대로, 오직 교황만이 사용할 수 있다. 교황의 권위와 역사를 가장 잘 상징하는 장소다.
붉은색 융단(벨벳)으로 감싸진 교황의 관은 살짝 기울어진 목재 받침대 위에 놓여 있었다. 이전 교황의 시신은 정면을 향해 기울어진 허리 높이의 단상(카타펠케)에 올라갔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를 원치 않았다. 의식을 가능한 한 간소하게 하자는 취지였다. 이어진 ‘말씀의 전례‘에서 패럴 추기경은 시편과 요한 복음의 구절을 낭송하고 “주님, 당신의 종 프란치스코를 평화의 품에 받아주소서”라고 기도했다.
교황을 조문하려는 수많은 신도의 발걸음은 느린 강물처럼 천천히 발다키노 쪽을 향했다. 교황의 관과 발다키노 주변은 둥글게 울타리가 쳐졌다. 조문객들은 이곳에서 교황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성호를 긋고 짧은 기도를 올렸다. 붉은색 제의와 흰색 주교관을 쓴 채 눈을 감고 누워 있는 교황의 모습은 88년에 걸친 고단한 지상 여행을 이제야 겨우 마쳤다는 듯, 고요하고 평안했다. 조문을 마치고 나온 페데리카(39)씨는 “너무나 슬프지만, 교황님의 마지막 모습을 뵐 수 있었다는 감동이 교차하는 묘한 느낌”이라고 했다.
교황은 이날 오전부터 장례 미사 전날인 25일 오후 7시까지 만 사흘 밤낮 동안 세계 각국에서 온 신자들을 만나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성당 밖에는 조문객들이 가져온 꽃과 예물, 편지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를 비롯, 전 세계에서 방문한 외교 사절단 100여 명도 금요일 저녁 이곳을 찾을 전망이다. 로마시 당국은 “장례 미사 참석을 위해 바티칸에 20만명 이상이 운집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