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저녁 일본 도쿄에 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국 외교장관이 모였다. 미국과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 동맹의 제1선으로 평가되는 3국이 모인 ‘쿼드(Quad)’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 자리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중국 공산당의 착취, 부패, 억압으로부터 파트너를 지켜야 한다”며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메콩, 히말라야, 대만해협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 일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쿼드’는 2007년 4국이 처음 열었던 ‘4자 안보 대화(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의 맨 앞부분만 따서 4각 협력체를 지칭하는 말이다. 작년 9월 미국 뉴욕에서 첫 회의가 있었지만, 당시는 유엔 총회를 계기로 열린 번외 회의였다. 4국 외교장관의 만남을 위해 별도 회의를 개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상이 주최한 이번 회의 참석을 위해 폼페이오 장관, 머리스 페인 호주 외교장관,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 인도 외교장관은 코로나 와중에도 도쿄를 방문했다.
회의에서 4국은 ‘법치에 기반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목표로 코로나 이후의 경제 회복을 포함해 세계와 역내의 다양한 도전에 함께 대응할 것을 다짐했다. 중국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공동성명 등을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해양 안보’와 ‘주권의 존중’을 강조해 사실상 중국 견제에 한목소리를 냈다. 4국이 민주주의, 인권, 경제 개발, 안보, 인적 유대 등 ‘공유하는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중국을 겨냥한 단합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회의에 앞서 지난달 16일 취임한 스가 총리가 자국을 찾은 외교장관들을 만나 환영했다. 특히 폼페이오 장관과는 4국 회의 전에 별도 면담 시간을 잡았다. 폼페이오 장관은 당초 4~8일 일본, 몽골, 한국을 순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 2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코로나 확진 이후 몽골과 한국 일정을 취소하고 일본만 방문했다. 한국 방문은 뒤로 미뤄놓고, 스가 총리와는 두 번이나 만난 것이다.
이처럼 역내 문제 논의에 쿼드가 부각되고 한국이 사라지는 현상은 최근 두드러지고 있다. 쿼드 4국은 4국이 모두 모이지 않더라도, 다양한 역내 문제에 대해 수시로 양자 혹은 삼자 협의를 하고 있다. 예컨대 미·일 양국은 지난달에만 ‘전략적 에너지 파트너십(JUSEP) 공동성명’(30일) 등 세 분야의 협의 결과를 공동성명으로 발표했다. 지난달 1일엔 호주, 인도, 일본 3국 경제 장관이 코로나 이후 인도·태평양 지역의 공급망 강화를 위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같은 기간 한국이 이 나라들과 발표한 공동성명은 없었다.
쿼드 4국은 이 협력체에 한국과 뉴질랜드 등을 포함하는 ‘쿼드 플러스’ 구상도 추진 중이다. 폼페이오 장관도 4자 회의 후 가진 NHK 인터뷰에서 “세계는 너무 오랫동안 중국의 위협에 노출돼 왔다”면서 “아세안 등 가치관을 공유하는 지역 전체로서 중국에 대항해야 한다”고 했다. 쿼드 4국 간 군사협력이 증진되면 인도·태평양 지역의 나토(NATO) 같은 다자 안보 협력기구가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의 외교 사령탑이 일본에서 핵심 동맹국 외교장관들과 4자 회의를 갖는 자리에 한국은 없었다. 한국 외교부는 이날 쿼드 회의와 관련해 어떤 공식 입장도 내지 않았다. 외교가에선 “현재 최대 국제 이슈인 ‘미·중 전쟁’과 직결된 미국 주도 협의체 ‘쿼드’가 2시간 거리인 도쿄에서 열리는데 한국은 아무 말 없이 불참한 채 ‘바다 건너 불구경’하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일각에선 정부가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로 일관하다가는 양측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우방인 미국이 북한·북핵 문제의 핵심 당사국인 한국을 빼놓고 다른 나라들과 대북 정책을 논의하는 상황 자체가 예전 같지 않은 한·미 관계를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 8월 한·미·일 국방장관 회의에도 코로나를 이유로 불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