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3일 자민당 임시 간부회의에서 당 총재 선거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돌발 선언이었다. 자민당 실세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도 “오늘 처음 들었다. 깜짝 놀랐다”고 했다. 일본 언론들은 스가 총리가 전날까지만 해도 니카이 간사장을 만나 총재 선거 출마 의향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스가는 지난해 9월 건강상 문제로 사임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뒤를 이어 총리가 됐다. 당시 아베 총리의 임기가 이달 30일까지였다. 그가 총리직을 연임하려면 이달 총재 선거에서 당선된 뒤, 가을 중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을 승리로 이끄는 두 개의 문턱을 넘어야 했다. 하지만 스가는 도쿄올림픽 강행과 코로나 확산에 따른 인기 추락을 극복하지 못하고, 첫 문턱에서 좌절했다.

스가 내각 지지율 추이

스가 내각 지지율은 올 들어 폭락을 거듭했다. NHK에 따르면 스가 내각 지지율은 지난해 9월 출범 당시 62%에서 올 8월 29%로 1년 사이 반 토막 났다. 일본 언론들은 올림픽과 코로나를 둘러싼 판단 미스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올 상반기 일본 대부분 지역에 긴급사태가 선언될 정도로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올림픽 개최는 위험하다”는 국민 여론이 높아졌다. 하지만 스가는 ‘올림픽에서 일본 선수가 활약하면 여론도 반전될 것’으로 보고 올림픽을 강행했다.

올림픽 폐막 전후 코로나 신규 감염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도 발목을 잡았다. 델타 변이 영향으로 지난달 20일엔 하루 2만5868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역대 최다 기록이다. 병상 부족으로 코로나 감염자가 병원에 입원도 못 하고 집에서 숨지는 사례도 이어졌다. “도쿄는 사실상 통제 불능”이라는 진단까지 나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스가는 “8월에는 사태가 정말로 진정될 줄 알았다”고 주변에 토로했다고 한다.

위기 상황에서 부족한 소통 능력도 비판을 받았다. 올림픽 전엔 “안전·안심 올림픽 개최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만 기계처럼 반복하는 태도로 빈축을 샀다. 영혼 없는 대답을 둘러대고 곤란한 질문을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이어진 델타 변이 확산 국면에도 긴급사태 확대만 거듭할 뿐, 이렇다 할 대응책이나 메시지를 내놓지 못했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선 “남이 써준 원고를 기계처럼 읽기만 한다” “자기 자신의 말이 없다” “인간적 매력이 없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마이니치신문은 “총리 본인의 ‘설명 능력 부족’이 당내 구심력 저하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내각 지지율이 추락하자 올가을 중의원 총선거를 앞둔 자민당 의원들이 동요했다. “스가 체제로는 올가을 중의원 총선거에서 싸울 수 없다”는 말이 돌았다. 지난달 22일 스가의 지역구 요코하마 시장 선거에서 오코노기 하치로 전 국가공안위원장이 패배한 게 컸다. 스가와 45년 인연을 자랑하는 최측근이 10%p 차이로 참패하자 젊은 의원들 중심으로 위기감이 폭발했다.

자민당 특유의 파벌(계파) 정치도 작동하지 못했다. 아베 전 총리의 영향력이 큰 자민당 최대 파벌 호소다파를 이끄는 호소다 히로유키 회장은 이미 지난달 스가 총리 연임 지지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스가에 대한 파벌 차원의 지지는 이끌어내지 못했다. 지난해 선거에서 호소다파 의원들이 일제히 스가 총리에게 투표한 것과 대조적이다. 아소 다로 재무상이 이끄는 아소파, 니카이 간사장이 이끄는 니카이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작년 총재 선거에서 경쟁한 기시다 후미오 전 정조회장의 출마 선언도 스가에게 악재였다. 기시다 전 정조회장이 5년째 연임 중인 니카이 간사장을 겨냥해 “당 간부 임기를 최대 3년으로 제한하겠다”고 하자 당내 여론이 더욱 술렁였다. 수세에 몰린 스가는 지난달 31일 자신의 지원군인 니카이 간사장을 포함해 당 간부 교체 인사를 오는 6일 단행하겠다고 승부수를 던졌다. 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이조차도 아베 전 총리 측근인 아마리 아키라 세제조사회장이 “당 간부 인사는 총재 선거에 이긴 새 총리의 몫”이라고 반발하는 등 역풍을 불렀다. 결국 파벌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한 스가는 당 간부 교체 카드까지 잃으면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게 됐다는 게 일본 언론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차기 총재 후보로는 이미 출마 의사를 밝힌 기시다 전 정조회장, 여론조사에서 차기 총리 후보 1·2위를 다투는 고노 다로 행정·규제개혁상,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 등이 거론된다. 고노 다로 개혁상은 이날 오후 총재 선거 출마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