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64) 전 외무상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73) 총리를 잇는 일본의 차기 지도자로 확정됐다. 기시다는 29일 스가의 임기 만료로 치러진 자민당 새 총재 선거의 결선투표에서 전체 429표 가운데 과반수를 넘는 257표를 얻어 새 총재에 당선됐다. 그는 다음달 4일 임시국회의 지명 투표를 거쳐 일본 100대 총리로 선출된 뒤 새 내각을 발족해 곧 다가올 중의원 총선거에 대비한다. 자민당과 공명당 연립여당이 의회 과반을 차지하고 있어 선출은 확실한 상황이다.
이날 기시다는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전체 764표(국회의원 382표·당원-당우 382표) 중 256표를 얻으며 1위에 오르는 이변을 연출했다. 기시다는 국회의원과 당원·당우로부터 각각 146표, 110표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1차 투표 1위가 유력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고노 다로(河野太郞) 행정규제개혁담당상은 국회의원 86표, 당원·당우 169표 등 총 255표를 확보하는 데 그쳤다.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2위 후보가 결선투표를 치른다는 자민당 총재 선거 규칙에 따라, 고노와 기시다는 국회의원 382표와 지방 47개 도도부현(都道府県) 지부 47표를 두고 다시 맞붙었다. 기시다는 결선 투표에서 257표를 획득해 획득해 고노 다로(河野太郞) 행정규제개혁담당상(170표)을 87표 차이로 눌렀다. 고노의 당선을 저지하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67) 전 총리 등 보수 주류 세력의 표가 기시다에 결집하면서 기시다가 당선된 것으로 분석됐다.
아베 내각에서 4년 7개월간 외무상을 지낸 기시다는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주도한 인물이다. 그런만큼 위안부 및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국제법과 국제 합의를 준수해야 한다”며 “한·일 관계 개선의 공은 한국에 있다”고 강조한다. 기시다 내각은 미·일 관계와 가치 공유 국가 간의 외교 주축으로 하는 아베 외교 노선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다만 기시다가 자민당 내에서 아시아·태평양 외교를 강조하는 유서 깊은 파벌 고치카이(宏池會)를 계승하고 있어 “기시다 내각이 올 중의원 선거와 내년 참의원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거두고 안정된다면, 장차 한·일관계 개선도 기대해볼만 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고치카이는 전통적으로 한국·중국 같은 주변국과 벌이는 외교를 중시한다.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과 한일 국교 정상화를 처음 논의한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김종필-오히라 메모’의 당사자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태평양 전쟁에 대한 반성과 책임을 주장한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전 총리 등이 대표적인 고치카이 출신 총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