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전통을 자랑하는 일본 NHK의 연말 특집 가요 프로그램 ‘홍백가합전(紅白歌合戰)’이 갈림길에 놓였다. 시청률과 위상이 해마다 떨어지는 데 반해 프로그램의 기본적인 진행 방식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사히신문은 “NHK의 홍백가합전이 출연진을 남녀 성별에 따라 두 팀으로 나누는 기존 방식을 고수해도 좋은지 여부를 두고 논의를 거듭하고 있다”고 27일 보도했다. 보아나 트와이스 등 인기 아이돌이 출연해 한국에도 알려진 홍백가합전은 1951년 첫 방송을 시작해 올해로 70년째를 맞는 NHK의 대표 음악 방송이다. 그해 일본의 인기 가수가 총출동해 12월 31일 저녁 7시 30분부터 밤 11시 45분까지 이어지며 한 해 마지막 날을 기념한다. 1970~80년대에는 시청률이 60~80%를 넘나들었고, 온 가족이 함께 시청하며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 전통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최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TV 외에도 즐길 콘텐츠가 많아지면서 시청률이 30~40%까지 떨어졌다. 방송 진행 방식에 대한 비판도 높아졌다. 홍백가합전은 여성 가수와 남성 가수를 각각 홍조(紅組)와 백조(白組)로 팀을 나누고, 이들이 노래로 대결하는 틀을 유지해왔다. 사회자로 선정된 여성과 남성 유명 인사가 각각 ‘홍조 사회’ ‘백조 사회’ 역할을 맡았다. 마지막에는 심사위원단과 시청자 투표를 종합해 어떤 팀이 승리했는지 발표한다. 노래로 치르는 남녀 대항전인 셈이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 이른바 ‘젠더(gender) 감수성’이 높아지면서 성별을 기준으로 팀을 나누는 데 대한 반발이 커졌다. 트랜스젠더 등 성적 소수자가 늘어난 사회적 배경도 영향을 미쳤다. 유럽에선 이 같은 비판을 수용해 독일의 베를린 국제영화제, 영국의 브릿어워드(음악)가 배우나 가수를 남녀로 나누어 시상하던 관례를 폐지하기도 했다. 홍백가합전을 담당하는 NHK 총괄제작팀은 “올해에는 출연진을 홍조·백조로 나누되, 사회자는 따로 구분하지 않기로 했다”고 아사히에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