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콘텐츠 약진이 멈추지 않는다. 한국 콘텐츠 산업이 일본을 압도하는 모양새다.”
새해 초부터 한국 문화 콘텐츠의 세계적인 성공을 조명하는 기사가 일본 언론에서 보도되고 있다. K팝, K드라마가 주도하는 한류 콘텐츠 수출 규모가 아시아 콘텐츠 강국으로 꼽히던 일본을 멀리 따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일 관계의 냉각과 코로나 장벽 속에서도 최근 ‘4차 한류(넷플릭스 등 온라인 플랫폼을 중심으로 확산한 한류)’가 일본인의 생활 속에 자리를 잡으면서, 일본에선 한류 콘텐츠의 글로벌 인기를 따라잡으려는 시도까지 나오고 있다.
◇日 언론 “한류 산업, 일본 따돌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4일 “한국의 2021년 문화콘텐츠 수출액이 5년 전의 두 배에 달할 전망”이라며 “한국이 콘텐츠 산업에서 일본을 멀찌감치 앞서나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21년 한국 문화콘텐츠 수출액은 전년보다 7%가량 늘어난 115억6000만달러(약 13조8315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5년 전(약 60억1000만달러)의 2배에 육박하는 수치다. 일본에서 인기를 끄는 드라마 등 방송 콘텐츠 부문에 대해선 “기준이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렵다”면서도 “2019년 한국의 방송 콘텐츠 수출액(770억엔)이 같은 해 일본 수출액(530억엔)을 웃돌았다”고 했다.
신문은 드라마·음악·만화 등 각 분야의 한·일 양국 콘텐츠 산업 현황도 조목조목 비교했다. “전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킨 오징어게임이 공개된 지난해 10월 이후 넷플릭스의 비영어 프로그램 시청 랭킹 톱 10엔 한국 작품이 3~4개씩 꾸준히 들고 있다”며 이런 성공이 다른 한류 콘텐츠 인기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K팝에 대해서는 “방탄소년단을 필두로 블랙핑크 등 다른 인기 가수가 계속 나오고 있다”고 했다. 일본이 자랑하는 콘텐츠인 ‘만화’도 한국의 픽코마(카카오)·라인망가(네이버) 등 ‘웹툰 플랫폼’이 약진하며 자리를 내주고 있다고 짚었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스마트폰으로 읽는 웹툰 패권 경쟁을 벌이면서 세계의 만화가가 두 회사 플랫폼에 작품을 투고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생활 속에 자리 잡은 ‘한류 열풍’
일본 언론 반응에 대해 이영훈 한국콘텐츠진흥원 일본비즈니스센터장은 “4차 한류가 전 세대에 걸쳐 폭넓은 범위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일본이 콘텐츠 산업에서도 한국에 뒤진다’는 위기 의식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진흥원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일본이 뒤처진다는 기사에 대한 반응도 과거는 발끈하는 게 주를 이뤘지만, 요즘은 공감한다는 게 대세”라고 했다.
이 때문에 최근 일본에서는 아이돌 그룹이 노골적으로 한국 아이돌 그룹을 모방하거나, 아예 한국 연예 제작사를 끌어들여 일본인으로 한국식 아이돌 그룹을 구성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JYP엔터테인먼트와 소니뮤직의 걸그룹 ‘니쥬(NiziU)’, CJ E&M과 요시모토흥업의 제이오원(JO1)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가을엔 한국처럼 드라마 본편을 방송한 직후 넷플릭스에 공개하는 방식을 도입한 방송사도 등장했다. 일본 엔터업계에선 처음이었다.
‘한류 붐’이 K팝이나 K드라마를 넘어 일상으로 확산하면서 일본 곳곳에선 그 영향력을 체감할 수 있다. 대형 체인 서점이 해외 도서 코너에 ‘한국 도서 코너’를 별도로 마련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 됐다. 방탄소년단·레드벨벳 등 인기 한국 아이돌 그룹이 추천한 ‘나는 나답게 살기로 했다’ ‘82년생 김지영’ 등 책이 번역돼 인기를 끈 것이 시작이었지만, 최근엔 이와 무관하게 한국 베스트셀러 작가의 작품이 폭넓게 소개되고 있다. 한국 포장마차를 그대로 본뜬 듯한 음식점이 젊은 층이 모인 시부야부터 ‘샐러리맨의 성지’로 불리는 신바시까지 곳곳에서 문을 열었다. ‘한국식 뚱카롱(뚱뚱한 마카롱)’을 판매하는 매장이 도쿄 최고 부촌가 긴자에 진출하기도 했다.
젊은 층은 아예 ‘한국풍(風)’이라는 단어를 이곳저곳에 붙이고 있다. 소셜미디어에는 ‘한국풍 카페’ ‘한국풍 인테리어’ 같은 단어가 일상적으로 통용된다. 마에다(22)씨는 “한국풍은 인스타그램에서 볼 수 있는 한국의 세련된 분위기를 통칭하는 단어”라며 “미용실에 가기 전에 꼭 ‘한국풍 헤어’를 검색해보고 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