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AFP 연합뉴스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인 일본 니가타현 사도(佐渡)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추천을 놓고 일본 정부가 막판까지 고심 중인 가운데 아베 신조 전 총리 등 자민당 보수파 의원들이 “한국과 ‘역사 전쟁’을 피할 수 없다”며 추천을 주장하고 나섰다. 정식 추천하더라도 한국 등의 반발로 심사를 통과해 등재될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신청 보류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진 기시다 정부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아베 전 총리는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도광산 추천을) 내년으로 미루면 등록 가능성이 높아지는지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며 “(한국 등이) ‘역사 전쟁’을 걸어온 이상 피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총리 재임 시절 군함도(하시마·端島) 등 메이지 산업유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해 등재한 사실도 언급했다. 당시에도 신중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추천을 미룬다고 사태가 변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등재까지 성공했다는 것이다.

/아베 신조 페이스북 캡처

강경 보수파에 해당하는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정조회장은 지난 24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사도광산 추천 문제는) 국가 명예와 관련된 사태”라며 “반드시 올해 안에 추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에 대한 외교적 배려는 일절 없다’는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 발언을 거론하며 “일본 정부도 올해 추천할 수 없는 이유는 없다고 생각 중”이라며 공세를 펼쳤다. 사토 마사히사 자민당 외교부회장, 하나즈미 히데요 니가타현 지사도 인터뷰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한국의 근거 없는 중상비방에 의연히 대응하겠다”면서도 추천 여부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외무성 내에서는 추천을 한 해 보류하자는 신중론 기류가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외무성 관계자는 26일 기자회견에서 “추천서 제출 전 당사자 간 대화를 촉구하는 세계문화유산 관련 지침이 지난해 7월 채택됐다”는 점을 거론했다. 이 지침은 가맹국이 반대할 경우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지 않도록 개정한 조치의 후속 조치다. 이 기록유산 절차 개정을 일본이 주도했다. 이 때문에 한국의 반발에도 추천을 강행할 경우 심사에서 탈락해 재추천이 어려워지고, 국제 사회의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큰 것으로 전해졌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추천 마감일은 2월 1일이다.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을 유네스코에 추천하려면 각의(국무회의)를 거쳐야 하는데, 마감까지 예정된 각의는 이달 28일과 다음 달 1일뿐이다. 기시다 총리는 미리 입장을 밝힐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전해졌다. 결론이 어느 쪽이든 ‘마지막까지 고심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