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우려되는 러시아발(發) 액화천연가스(LNG) 대란을 막기 위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힘을 합치고 있다. 유럽은 미국으로부터 LNG 수입 물량을 대폭 늘리며 재고를 비축하기 시작했다. LNG 최대 수입국인 일본은 미국의 유럽 지원에 동참하는 의미로 일부 LNG 물량을 유럽 국가에 양보하기로 했다.
9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의 지난 1월 LNG 수입량은 1100만여t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4배로 늘어났다. 러시아산 LNG 조달이 어려워질 상황에 대비해 본격적인 재고 비축에 나선 것이다. 유럽의 새로운 에너지 공급원으로 떠오른 건 미국이다. 당초 유럽은 천연가스 소비량의 3분의 1 수준을 러시아에서 조달했지만, 지난달의 경우 러시아 국영에너지 기업 가스프롬에서 수입한 가스는 600만t가량에 그쳤다. 작년 1월과 비교하면 40% 감소한 수치다. 반면 미국에서 조달한 LNG 물량은 지난 석 달간 3배 증가, 지난달엔 러시아와 유사한 수준에 도달했다.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미국 등 국제사회가 러시아에 대한 대규모 경제제재에 나서고, 러시아는 보복 조치로 유럽에 수출하던 LNG 공급을 중단하는 시나리오를 우려한다. 이에 따라 유럽은 미국산 LNG를 대규모로 확보, 이번 겨울을 넘긴다는 계획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유럽은 베이징올림픽 이후 러시아가 공급을 완전히 중단하더라도 미국 조달을 현 수준으로 유지한다면 4월 중순까지 재고 5%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과 유럽은 LNG 수입국인 일본·한국·인도 등에도 확보한 LNG 여유분을 유럽에 융통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일본은 9일 미국의 요청에 부응해 자국 수요 물량을 확보한 뒤 남는 LNG를 유럽에 공급하겠다는 방침을 공식 발표했다.
일본은 오스트레일리아⋅말레이시아⋅카타르 등 3국에서 천연가스 소비량 65%를 조달해 러시아발 에너지 대란의 직접적 영향에선 벗어나 있지만 재고가 165만t으로 넉넉하진 않다. NHK에 따르면 일본은 전력 76.3%를 화력발전에 의존하는데, 이 중 약 39%가 LNG를 사용한 것이다. 지난해 1월엔 난방용 전력 수요가 높아지며 전력 수급 부족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본 언론들은 이번 결정을 “지극히 이례적인 대응”이라고 분석하며 유럽에 보낼 물량이 많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일본 정부 결정으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도 더욱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 정부 역시 미국의 요청은 받았지만 국내 LNG 수급 문제로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에너지를 두고 러시아와의 갈등이 장기화할 경우 유럽과 아시아 각국의 LNG 조달 경쟁이 심화, 가격이 급등하고 수급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미국 LNG 수출량에서 유럽의 비율은 지난해 초 37%에서 61%로 상승했다고 니혼게이자이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