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교토부 우지시 이세다쵸 우토로 51번지에 문을 연 우토로 평화기념관의 표지석. 그 뒤로 과거 조선인 노동자들이 짓고 살던 판자집의 모습이 보인다. 평화기념관에 이설된 판자집을 둘러보던 한 주민은 “예전엔 판자조차 제대로된 것을 구하기 어려워 벽마다 틈이 많았다. 밤에 전기를 켜면 남의 집 안도 훤히 들여다보였다”고 회상했다./우지=최은경 특파원

교토역에서 재래식 전철로 30분 가량 떨어진 우지시 이세다역. 한가로운 주택가를 10여분 걸으면, 우지시 이세다쵸 우토로 51번지에 도달한다. 일제강점기 일본군 비행장 건설에 동원됐다 방치된 조선인과 그 후손들이 판자집을 짓고 모여 살던 이른바 ‘우토로 마을’이다.

지난 수십년 굴곡진 자이니치 조선인 역사의 상징처럼 통하던 이 우토로 마을에 면적 461m²(약 140평)·지상 3층 높이의 번듯한 새 건물이 들어섰다. 재단법인 우토로민간기금의 ‘우토로 평화기념(祈念)관’이 지난 30일 정식 개관한 것이다. 다가와 아키코 우토로 평화기념관장은 “개관까지 지난 77년간 정말 많은 어려움이 있었기에 정말 기쁜 마음”이라며 “한국과 일본의 많은 사람들이 우토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 덕분에 맺은 결실”이라고 했다.

우토로 마을은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간 동포들의 한과 눈물이 서린 공간이다. 일본은 1940년 교토부 우지시에 약 100만평에 달하는 군사용 교토비행장을 짓기 시작했는데, 이 기초 토목 공사에 조선인 약 1300명이 동원됐다. 우토로 주민들의 과거 증언에 따르면 비행장 건설 현장에 온 조선인 대부분은 “비행장 사업은 국책 사업이어서 징용을 피할 수 있다” “살 곳을 마련해 준다” 등의 말을 믿었다. 전쟁터·탄광 등으로의 징용을 피하려 일부러 비행장 건설 현장을 찾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들은 공사장 인근에 ‘함바’로 불리는 판자집을 짓고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야 했고, 일제가 패망한 1945년 8월 이후에도 우토로에 그대로 방치됐다. 토지 소유주에 퇴거를 요구당하는 상황에서 상·하수도 시설 정비조차 미뤄져, 1980년대까지 지하 펌프로 물을 끌어올리고 장마철마다 안방에 차오른 물을 퍼내는 생활을 반복했다. 조선인, 그리고 우토로 출신이라는 이중 낙인도 따라다녔다.

30일 개관한 우토로 평화기념관 2층 한켠에 복원된 자이니치 1세대 김군자 할머니의 방. 생전 사용하던 좌식 탁자와 달력 등은 물론 비가 올 때 무너지지 않도록 지붕을 받치던 철봉도 재현돼있다./우지=최은경 특파원

1987년부턴 우토로 마을 일대 토지가 부동산 사업체에 새로 매각되면서, 우토로 마을에서 살고 죽겠다는 주민과의 갈등이 더욱 깊어졌다. 일본에선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이 결성됐다. 2000년대부턴 한국 시민사회의 모금과 지원도 이어졌다. 결국 한국 정부가 2007년 우토로 마을을 위해 30억원을 지원하면서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새로운 우토로 마을 만들기’ 사업이 시작됐다. 한국 정부 지원 아래 우토로민간기금 등이 2010년부터 일대 토지 5600㎡를 사들였고, 인근엔 지자체 우지시가 기존 주민을 위한 시영주택 건물을 세웠다. 바로 옆엔 우토로 평화기념관이 만들어졌다.

이날 문을 연 평화기념관엔 우토로 토지를 두고 벌인 주민들의 소송 기록, 자필로 써내려 간 토지 매각 요청서, 모금 운동에 쓰인 통장, 주민들의 생활 사진 등이 빼곡히 전시됐다. 조선인 노동자의 판자집 원형, 비가 올 때마다 무너지는 천장 때문에 철근 지지대를 세워뒀던 우토로 주민의 방도 그대로 재현했다. 평화기념관에 이설된 판자집을 둘러보던 한 주민은 “예전엔 판자조차 제대로된 것을 구하기 어려워 벽마다 틈이 많았다. 밤에 전기를 켜면 남의 집 안도 훤히 들여다보였다”고 회상했다. 둘러보던 마을 정비 과정에서 우토로 주민들이 실제 살던 집은 대부분 철거됐다. 일부 남아있던 주택조차 지난해 혐한의 방화 사건으로 불타기도 했다.

우토로 마을 주민 정우경(81)씨는 “70년 전 우토로 마을로 이사와 다다미 6장, 4장 반짜리 방 두 개에 간이 부엌이 하나 딸린 집을 얻어 가족 6명이 먹고 살았다”며 “우물물을 길어 나르고 장마물을 퍼내던 날이 지나고 이렇게 훌륭한 기념관이 생겨 많은 사람이 찾아와 기쁘다”고 했다. 지난해 방화사건 발생지 바로 인근에 살던 정씨는 혐한으로 인한 이른바 ‘헤이트 크라임(증오 범죄)’을 해소하는 데도 평화기념관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한·일 양국의 젊은이들, 특히 자이니치 동포에 대한 잘못된 증오심을 가진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과거의 역사를 다시 살피고 공부하길 바란다”는 것이다.

다가와 우토로 평화기념관장 역시 “과거 우토로는 ‘우토로에 살고 우토로에 죽겠다’는 투쟁의 장이었지만, 이젠 ‘우토로에 살고 우토로에서 만나자’는 교류의 장으로 거듭났다”며 “국경이나 생각의 차이를 뛰어넘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새로운 만남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다가와씨의 말대로 이날 평화기념관 개관식에는 조성렬 주오사카 총영사, 마쓰무라 아키코 우지시장과 재일대한민국민단교토부본부, 재일조선인총연합회교토부본부 간부 등이 참석해, 국경과 이념을 뛰어넘어 축하의 뜻을 전했다.

교토부 우지시 우토로마을에서 70년 넘게 살고 있는 주민 정우경(81)씨가 30일 우토로 평화기념관에 걸린 사진에서 부친의 흔적을 찾아 설명하고 있다. /우지=최은경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