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최은경 특파원

일본 교토역에서 전철로 30분가량 떨어진 우지시 이세다역. 주택가를 10여 분 걸으면, 우지시 이세다초 우토로 51번지에 도달한다. 일제 시대 군사용 비행장 건설에 동원됐다 방치된 한국인과 그 후손들이 판잣집을 짓고 모여 살던 이른바 ‘우토로 마을’이다.

지난 수십년간 굴곡진 재일동포 역사의 상징처럼 통하던 이 우토로 마을에 ‘우토로 평화기념관’이 지난 30일 정식 개관했다. 다가와 아키코 우토로 평화기념관장은 “한국·일본의 시민과 행정부가 ‘우토로를 지켜달라’는 이야기를 들어줬다”며 “우토로는 앞으로 다양한 사람이 교류하는 ‘만남의 장’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했다. 조성렬 주오사카 총영사도 “평화기념관이 우토로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것을 넘어 인권과 평화, 한일 민간 협력의 새로운 상징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평화기념관의 입구 한편엔 ‘우토로에서 살고 우토로에서 만나다’라고 적힌 입간판이 섰다. 과거 ‘우토로에서 살고 우토로에서 죽으리라’라는 구호가 이렇게 바뀐 것이다.

우토로 마을은 1940년 일본군 교토비행장 건설 사업에 동원됐던 조선인 약 1300명이 모여 살던 판자촌에서 출발했다. 대부분은 “비행장 사업은 국책 사업이어서 징용을 피할 수 있다” “살 곳을 마련해 준다” 등의 말을 믿고 모였지만, 빈곤한 판자촌 생활을 해야 했다. 1980년까지 상·하수도도 없어 우물을 긷고 장마마다 집에 차오르는 물을 퍼내는 생활을 반복했다. 2000년엔 일본 사법부가 강제 퇴거 명령을 내려 쫓겨날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우토로 마을은 한국 정부가 2007년 30억원을 지원하며 반전을 맞았다. 정부 지원으로 매입한 토지엔 일본 지자체 우지시가 우토로 주민을 위한 5층짜리 시영주택 건물을 지어줬다. 1호 건물엔 2018년부터 40가구가 입주했고, 2호 건물도 내년 봄 완공될 예정이다. 바로 옆에 문을 연 면적 461m²(약 140평)·지상 3층 높이 평화기념관엔 우토로 마을을 두고 벌인 주민들의 소송 기록, 자필로 써내려 간 토지 매각 요청서, 주민들의 사진 등이 빼곡히 전시됐다. 조선인 노동자들이 생활하던 판잣집, 비가 올 때마다 무너지는 천장 때문에 철근 지지대를 세워뒀던 1세대 우토로 주민 김군자 할머니의 방도 옮겨 놓았다.

주민들은 한일 양국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70년 넘게 우토로에서 지낸 주민 정우경(81)씨는 “우토로에 훌륭한 기념관이 생기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날이 올 줄 꿈에도 몰랐다”며 “우토로 주민만으로는 불가능했다. 한국과 일본의 많은 사람이 도와준 덕분”이라고 고마워했다. 한복을 차려 입고 기념관을 찾은 강도자(83)씨 역시 “차별받고 고립됐던 가난한 우토로를 이제는 다들 평범하게 찾아온다”며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 특히 한국과 일본의 젊은 사람들이 우토로를 계속 찾아와 우리 역사를 기억하고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