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소학교에 입학하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대부분 골든위크(4월 말~5월 초 약 열흘간 이어지는 일본 최대 연휴) 기간에 미리 주문합니다. 지금이 주문량 피크입니다. 지금보다 더 미루면 자녀들이 원하는 색이 품절될 수 있고, 배송일이 몇 달씩 밀려서 불안할 수 있거든요.”

5일 오후, 도쿄 긴자의 한 초등학생용 가방 ‘란도셀’ 전문 매장엔 어린이날을 맞아 자녀와 함께 ‘란카쓰(ラン活)’를 하러 온 부모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란카쓰란 ‘란도셀’과 구매 활동을 뜻하는 한자 ‘카쓰(活)’를 합친 말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자녀에게 사줄 란도셀을 찾는 걸 뜻한다. 학부모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이 매장의 인조가죽 란도셀 가격은 5만3800엔(약 52만원). 이보다 더 인기 있는 소가죽 상품은 6만8800엔, 가장 단단하고 매끄러운 말가죽 상품은 9만3800엔에 달한다. 하지만 이날 당장 결제해도 여아용 최고 인기 제품인 연보라색 소가죽 란도셀은 8월 하순에야 배송이 가능했다. 한정판 ‘로즈 핑크’는 매진 상태였다.

아사히신문 등 최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초등학생들이 6년간 메는 이 란도셀을 둘러싼 ‘란카쓰’가 매년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란카쓰 시작 시점은 계속 빨라지고, 란도셀 가격은 물가가 안 오르기로 유명한 일본에서 급격히 오른다.

2000년대 입학식(4월) 직전 1~3월쯤 사곤 하던 란도셀을 요즘 학부모들은 입학 1년 6개월 전부터 찾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인기가 높은 수제 가죽 란도셀 업체에 미리 신상품 카탈로그를 신청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이후 업체들이 카탈로그를 발송하고 입학 1년 전쯤인 3월부터 주문을 시작하면, 그때부터 매장을 직접 방문하며 본격적인 란카쓰를 개시한다.

실제 일본 란도셀공업회의 자체 조사 결과, 란카쓰를 시작하는 시점은 최근 몇 년 사이에도 급격히 빨라졌다. 2018년 조사에선 란카쓰 시작 시점이 입학 전년 4~8월로 분산돼 있었지만, 2021년엔 ‘입학 1년 전 4월’과 ‘입학 2년 전 12월’ 순으로 가장 높게 나타난 것이다. 란도셀 평균 가격 역시 2011년 3만6500엔에서, 2021년 5만5300엔으로 10년 사이 2만엔 가까이 뛰었다.

이 같은 란카쓰 과열 양상은 저출산에 따른 역설적 현상이다.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자녀를 1~2명만 낳는 경우가 늘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부모 2명과 친가·외가 조부모 4명이 귀한 자녀·손자를 위해 최고의 란도셀을 찾아 시간과 돈을 쏟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식스 포켓(6 pocket)’ 현상이다. 실제 일본의 올해 4월 1일 기준 15세 미만 어린이 숫자는 1465만명(11.7%)으로, 1950년 집계가 시작된 이래 최소 인구를 기록했다. 다만 일본에선 란도셀을 반드시 메야 하는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과한 돈과 시간을 들이는 부모 때문에 아이들 가방이 양극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