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북부의 도치기(栃木)현에서 새벽 4시 첫차 타고 아침 7시에 도착했는데, 벌써 100명 넘게 줄을 서 있네요.”
1일 오전 10시 도쿄 미나토구 주일본 한국대사관 영사부 앞. 햇볕이 따가운 초여름 날씨 속에 일본 시민 400여 명이 250m가량 긴 줄을 만들어 서 있었다. 영사부가 이날 오전 9시부터 2년 만에 관광비자 발급을 재개하자, 한국에 최대한 빨리 가려는 일본인들이 몰려 장사진을 이룬 것이다. 30대 여성 가네코 메구미씨는 “비자 발급에 4주 정도 걸린다고 해서 7월 둘째 주 항공권을 예매했다”며 “무조건 첫날 오전 (비자를) 신청하려고 왔다”고 했다.
이날 관광비자 발급 신청 서류를 가장 먼저 제출한 사람은 전날 밤 7시쯤부터 영사부 앞에서 밤을 새워 기다렸다. 새벽 4시 50분에 도착한 한국 여행사 관계자가 54번째였다. 오전 9시를 넘어서자 대기자가 400명을 넘어섰다. 영사부 관계자는 “선착순 200명까지만 접수할 수 있다”며 뒤쪽 대기자 일부를 돌려보냈다. 하지만 번호표를 받지 못하고도 “일단 기다려보겠다”며 줄을 서는 시민이 계속 늘어났다. 종일 기다리던 일부 시민은 “내일 접수하겠다”며 밤샘 채비를 했다. 이런 사람이 오후 7시쯤 30여 명이었다.
한국으로 여행을 떠나려는 일본인들의 열기는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라쓰’, 한국 아이돌 BTS 등이 일본 사회에서 큰 인기를 끌며 한류 열풍이 확산하고 있음을 증명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행 업계 관계자는 “관광비자 접수 절차가 복잡한데 이 정도로 몰릴 줄은 몰랐다”고 했다. 대사관과 지방 총영사관 관계자들도 “새벽부터 수십명이 줄을 선 모습을 보고 솔직히 깜짝 놀랐다”고 했다. 현재 한국 관광비자를 받으려면 신청 서류와 여권 사본, 증명사진, 항공 예약 확인서 등을 준비해 영사부를 직접 방문해야 한다. 접수하고 난 후 2~4주가량 기다려야 한다.
한국관광공사 도쿄지사가 지난달 26~29일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1500명 응답)에서 ‘(무비자 관광 재개 전에) 관광비자를 발급받아서라도 한국에 가겠다’는 응답이 22%로 나타났다. 정진수 한국관광공사 도쿄지사장은 “관광비자 신청 열기가 이 정도라면, 무비자 방문 재개 시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은 폭발적인 수준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관광비자 접수를 위해 줄을 선 일본인 중 90%는 여성이었다. 이들 대다수는 K팝 등 한류 문화의 열성 팬으로 “아이돌 그룹 DKZ에 일본에도 팬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한국 아이돌 서울 콘서트를 이미 예매해뒀다”며 신속한 비자 발급을 희망했다. 한 여성은 “BTS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한국에 가고 싶어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비행기 티켓 여러 장을 예매했다”고 했다. 비자가 나온 뒤 최대한 빨리 출국하기 위해 티켓을 버릴 각오로 시기별로 사뒀다는 것이다. 최근 엔저 현상(엔화 가치 하락)으로 2019년 한때 100엔당 1150원까지 치솟았던 원·엔 환율이 960엔대까지 떨어졌다. 인천~나리타 항공권 가격은 6만엔대까지 올랐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 여행을 오래 기다려왔다”며 “비용은 큰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항공 업계는 늘어나는 한국행 수요에 대비하고 나섰다. 아시아나항공은 한·일 항공노선에 A321(180석) 대신 좌석이 더 많은 A330(290석) 기종을 투입했다. 대한항공은 일주일에 10편 운항하던 인천~나리타 항공편 증편을 준비하고 있다. 주일 한국대사관은 대행 접수 등 비자 발급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새벽부터 100여 명이 몰린 오사카 총영사관은 이날 오후부터 방문 예약제를 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