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유세 중 피격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국장(國葬)을 두고 일본이 두 쪽으로 갈라질 조짐이 일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지난 14일 아베 전 총리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한 직후엔 이번 사태로 인한 충격이 큰 탓에 반대 여론이 잠잠했지만 점차 ‘아베 전 총리의 공과’를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일본의 법률에는 국가가 주관, 모든 비용을 대는 국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기시다 내각은 2차 세계 대전 직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체결한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에 이어서 아베 전 총리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이즈미 겐타 대표는 16일 “국장이 적절한지 신중하게 토론해야 한다”며 여당인 자민당에 ‘국장 심사회’ 개최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재검토를 요구한 것이다. 일본공산당과 사민당, 레이와신센구미 등 진보 색채의 3당은 반대 입장을 밝혔다. 자민당과 연립 여당인 공명당도 국장과 관련해선 “정당으로서는 코멘트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적극적으로 자민당 편을 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18일 일본의 포털인 야후재팬 ‘기사 랭킹(댓글 기준)’에선 10위권 내에 아사히신문의 ‘아사히 센류(川柳)’ 코너와 관련된 기사 3~4건이 올라 뜨거운 찬반 논쟁이 일었다. 논란을 일으킨 아사히 센류는 아사히신문이 일본 고유의 정형시인 센류를 독자에게서 투고받아 게재하는 코너다. 센류는 하이쿠(俳句)와 유사한 정형시로 주로 세태 풍자를 할 때 활용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16일 자에서 ‘아베 국장 반대’를 노골적으로 밝힌 센류 7편을 게재했었다. 예컨대 ‘의혹 많았던, 그런 사람이 국장(國葬), 이런 나라였나’(후쿠오카현 요시하라씨), ‘동기를 들으니, 테러는 아니었다, 라고 하네요’(가나가와현 아사히로씨), ‘아아 무섭다, 이렇게 역사란 게, 만들어지네’(후쿠오카현 이시씨)와 같은 식이다.
아사히신문은 선정 이유에 대해 ‘국회 허위 답변만 118회. 왜 국장인가. 테러란 정치적인 목적으로 폭력을 쓰는 행위’라고 썼다. 아베 전 총리가 8년 8개월이라는 일본 최장수 총리지만, 그 기간에 국회서 허위 답변만 118회나 했고 사망 이유도 민주주의에 대한 테러가 아닌, 특정 종교 단체에 대한 복수의 희생양이었을 뿐이란 주장이다. 아베 전 총리의 집권 기간 내내 맞섰던 아사히신문이 사실상 그의 국장에 대해 반대한 것이다.
야후재팬의 랭킹 1위 ‘라살 이시이, 아사히신문의 센류를 인용해 아베 전 총리의 국장 반대’라는 기사에는 9000개 안팎의 댓글이 달렸다. 개그맨인 라살 이시이(본명 이시이 오키오)가 “아사히 센류는 훌륭하다”며 ‘아베 신조의 국장 반대한다’고 쓴 트위터를 전한 인터넷 기사다. 댓글에선 아베 전 총리에 대한 모욕이라는 격한 비난이 쏟아졌지만 일부에선 표현의 자유를 압박하지 말라거나, 아베만 반대하면 벌 떼같이 몰려드는 우파를 비난하는 댓글도 보였다.
마이니치신문은 16일 자 사설에서 “국가가 전액을 지불하는 국장은 많은 국민의 이해를 얻을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국장의) 법적 근거는 패전과 함께 사라졌고,1967년 요시다 전 총리의 경우엔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을 조인해 일본을 국제사회에 복귀시킨 업적을 인정, ‘예외’로 국장으로 치렀다”고 썼다. 교토신문도 같은 날 사설에서 “아베 전 총리는 국론이 나뉜 안전보장관련법이나 특정비밀안보법을 강압적으로 밀어붙인 인물”이라며 “국장으로 하면 나쁜 면에는 눈을 감고, 그의 행동을 미화할 우려가 있다”고 썼다.
현재로는 국장 지지의 목소리가 반대보다는 많다. 반대론은 ‘신중히 국장 여부를 정하자’는 수준이지만, 국장 지지층 사이에선 ‘아사히신문 폐간’과 같은 거친 주장이 터져나오고 있다.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에 있는 아베 전 총리의 사무실에는 연일 수백 명의 조문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세계 259곳의 지역과 국가, 국제기관에서 2000건 넘는 조의가 왔다”며 “아베 전 총리가 국제사회에 보여준 탁월함에 걸맞은 예우를 해야 한다”며 국장 지지론을 폈다.
국장과 관련한 국론 분열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보수 신문인 요미우리신문에서도 나오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최근 사설에서 “국장이란 형식에 이론(異論)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불의의 죽임을 당한 전 총리의 추도식을 둘러싸고 일본 내부에서 논쟁이 일면, 국제사회의 눈에는 어떻게 비치겠는가. 그런 상황은 유족들도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