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원자력발전소의 운전 기간을 최대 10년 더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내년 말까지는 현재 가동 중단 상태인 원전 7기에 대해 재가동을 승인할 방침이다. 차세대 신규 원전의 건설도 검토에 들어간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전 세계가 에너지난에 직면할 조짐을 보이자 한때 ‘원전 제로’ 정책을 폈던 일본이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24일 그린 트랜스포메이션(Green Transformation) 실행회의를 열고 이 같은 원전 부활 정책을 결정했다. 요미우리신문 등에 따르면 이날 일본 경제산업성은 도쿄전력의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전 6·7호기 등 내년에 재가동을 승인할 원전 7곳을 확정했다. 7곳은 모두 일본원자력규제위원회의 안전 검사를 통과했지만, 추가적인 안전 대책 공사나 현지 지역 주민의 동의 절차에 막혀있는 상태다. 지역 주민의 동의를 얻는 일을 지자체에만 맡겨두지 않고 정부가 전면에 나서 내년에는 원전 7곳을 추가로 재가동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은 현재 가동 가능한 원전을 총 33기 보유하고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원전 57기 전체의 가동을 중단, 안전 점검을 실시해 이 가운데 24기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나머지 33기는 철저한 안전 점검을 통과했다. 하지만 지역 주민 동의와 같은 각종 절차 탓에 재가동 승인을 받은 곳은 10기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원전 3기는 정기 점검 중으로, 실제 가동되고 있는 원전은 7곳에 불과하다. 일본 정부는 내년에 7곳의 재가동 승인을 확보해 총 17기의 원전을 가동한다는 목표를 내건 것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원전 17기가 제대로 가동하면 약 1조6000억엔(약 15조7000억원)의 국부 유출을 막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화력발전 연료가 되는 액화천연가스(LNG)나 석탄 등 화석 연료를 거의 전량 수입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원자력 발전 1기를 가동하면 약 100만t에 달하는 LNG를 수입하지 않아도 된다고 추산했다.
일본은 보유 원전을 순차적으로 가동 궤도에 올려놓는 동시에 현재의 원전 운전 기간을 늘리는 방안도 추진한다. 원전 운전 기간의 산정 방식을 수정해 최대 10년 연장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원전 가동 기간이 원칙적으로 40년이며, 최장으로도 60년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원전 운전 기간을 산정할 때 실제 가동하지 않고 가동 심사를 받는 기간을 제외할 방침이다.
예컨대 벌써 10년 가까이 가동 심사를 받고 있는 홋카이도 전력의 도마리(泊) 원전 1·2·3호기는 최대 10년의 기간 연장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건설 완공 때부터 계산하면 최장 70년이 되는 셈이다. 2030년까지 원전 10기에 대한 설계수명을 연장해야 하는 우리나라도 심사 기간을 운전 기간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년 4월에 설계수명이 끝나는 고리 2호기의 경우 연장 심사를 위해 1~2년간 중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10년을 연장해도 실제 가동 기간은 8~9년밖에 안 될 수 있다. 심사 기간을 빼면, 연장 기간만큼 가동할 수 있게 된다.
기시다 내각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 생긴 ‘신규 원전을 건설하지 않는다’는 불문율도 깰 방침이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회의에서 “차세대형 원자력 발전소의 개발과 건설에 대해서도 검토하라”고 내각에 지시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전력 부족은 기존 원전의 재가동만으로도 가능하지만, 탈탄소라는 목표까지 가려면 원전의 추가 건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기존 원전보다 안전성을 높인 개량형 경수로를 개발해 2030년대에는 차세대형 원전을 신규 건설·운영한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기시다 총리는 “국민을 위해 충분한 전력을 확보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라며 원전 부활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여름 전력 부족에 시달려 ‘전력 수급 핍박(逼迫) 주의보’를 내리기도 했다. 충분한 전력을 확보하지 못하자, 국민에게 전기를 절약해달라고 요청했다. 전력 수요가 공급량을 넘어 ‘블랙 아웃(blackout·대규모 정전 사태)’이 올지도 모르는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급하게 가동을 중단했던 지바현의 화력발전소(60만㎾)를 재가동하는 등 화력발전소에 의지하면서, 화력발전 비율이 80%에 육박할 정도로 늘었다. 일본은 현재 3% 정도인 원전의 전체 전력 공급 중 비율을 2030년 22%까지 늘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