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5일 윤석열 대통령실이 유엔총회를 앞두고 “한일 정상회담을 갖기로 해 구체적 일정을 조율 중”이라고 밝혔던 것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고 21일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이날 신문은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 기시다 총리가 당시 “그렇다면 만나지 않겠다”고까지 반응했었다고 밝혔다. 당시 일본 당국은 한국 측 발표에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발표를 삼가달라”며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같은 항의의 배경엔 기시다 총리의 직접적인 불만 표시가 있었다는 것이다.
기시다 총리의 이 같은 반응은 양국 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한국 정부가 합의 없이 먼저 발표했다는 인식 때문인 것으로 풀이됐다. 정상회담 개최 계획은 통상 양국이 확정 이후 동시에 발표한다. 아사히신문은 “(이러한 상황 탓에) 기시다 총리와 윤석열 대통령이 만나더라도 단시간에 그치고 말 것”이라고 외무성 관계자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한편 아사히신문은 전날(20일)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과 박진 외교부 장관이 미국 뉴욕에서 만나 ‘징용공 문제’(일제 강제동원 노동자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기 위한 협의 의사를 나눴지만, 뚜렷한 진전은 없었다고 밝혔다. 하야시 외무상은 이 문제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서 해결됐고, 앞으로의 문제는 한국 측 책임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기존 일본 당국 입장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진 장관은 민관합동 협의체를 구성하는 등 한국 정부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내용을 전달하면서 일본 측에도 ‘성의 있는 호응’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사히신문은 “기시다 총리와 윤 대통령이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했지만, 두 정부 간 온도 차가 두드러져 회담이 열릴 전망이 나오지 않는다”고 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21일 “일본 정부는 ‘징용공 문제’ 등에 대한 해결책을 한국 측이 제시하는 게 (정상회담 개최의) 전제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기시다 총리의 이 같은 반응은 최근 지지율에 고전을 면치 못하는 기시다 내각이 자민당 지지 기반인 보수층을 의식하면서 한일 관계 개선에 소극적으로 나서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기시다 내각은 이달 일본 언론 매체들의 여론조사에서 ‘지지하지 않는다’가 ‘지지한다’를 넘어서는 역전 현상이 일제히 나타났다. 자민당과 옛 통일교 간 유착 논란과 아베 신조 전 총리 국장(國葬)에 대한 반대 여론, 고환율·고물가와 불경기 우려 등 악재가 겹치고 있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