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송이가 150만엔(약 1405만원)에 팔린 적이 있는 일본의 고급 포도 ‘루비로망’의 묘목이 한국으로 유출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7일 아사히신문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일본 이시카와현은 지난 8월 서울 시내 백화점과 마트 등 3개 점포에서 ‘루비로망’ 포도 세 송이를 구입해 감정을 의뢰했다. 감정 결과 이시카와현에서 생산한 루비로망과 유전자형이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루비로망은 이시카와현이 14년에 걸쳐 독자 개발한 품종이다. 현은 2007년 일본 농림수산성에 품종 등록을 신청해 인가를 받았다. 선명한 붉은색과 단맛이 특징이다. 당도는 18도 이상이고, 포도 한 알의 무게는 20g을 넘는다.
일본 내에서도 인기가 높으며 총리 관저에도 종종 납품되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코로나 감염으로 요양할 당시 루비로망을 먹었으며, 아베 신조 전 총리도 즐긴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7월에는 경매에 나온 루비로망 한 송이가 150만엔(약 1405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이시카와현은 계약 농가에게만 루비로망 묘목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품종 등록을 하지 않은 한국에서 루비로망이 팔리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유출 사실을 알게 됐고, 실사에 나선 것이었다. 정확한 유출 경위는 알려지지 않았다.
아사히신문은 “생육 기간을 미뤄볼 때 5년 전에 묘목이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한국에서 팔리는 루비로망은 일본산보다 색깔과 모양이 고르지 않다고도 했다. 당도 역시 현지 출하 기준에 못 미치는 16.7도였다.
국제적으로 신품종을 보호하려면 ‘국제식물신품종 보호에 관한 국제조약’(UPOV)에 따라 출시된 지 6년 이내 각 나라에 품종 등록을 하면 된다. 그러나 이시카와현은 이 기간이 지난 뒤에도 한국에 품종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농가는 루비로망 재배를 늘려나갔다. 올해 8월까지 국립종자원에 ‘루비로망’으로 생산‧판매 신고등록을 한 농가는 20여곳이 넘는다.
이시카와현은 루비로망 상표 출원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에서는 등록을 마쳤고, 한국 등 47개국에서는 상표 등록 출원을 준비하고 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국내에서는 전남의 한 업자가 2019년 ‘루비 로망’에 대해 상표 등록을 했다. 하지만 특허심판원은 지난 8월 “선사용상표로 인식되는 ‘이시카와현 루비로망’과 표장이 동일·유사해, 일반 수요자에게 상품의 출처에 대한 오인·혼동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업자가 보유하고 있던 상표권을 무효화했다.
일본은 또 다른 고급 포도 품종인 샤인머스캣 때도 품종 등록을 하지 않은 적 있다. 현지 당국은 샤인머스캣이 2016년쯤 해외로 무단 유출되면서 연간 100억엔(약 953억원) 이상 손실을 보고 있다고 추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