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일본 사이타마현에 있는 오가노마치의 마을회관. 대나무 우산인 와가사(和傘)를 쓴 오가노중학교 학생들이 무대 위에서 가부키 공연 연습 중이었다. 가부키는 전업 배우들의 몫이지만 오가노마치는 에도시대부터 일반인들이 스스로 공연하고 즐긴 축제 문화로 유명한 마을이다. 인구 1만명인 마을에서 가부키 공연에 참가한 경험자만 1000명이 넘는다. 한 시간 연습을 끝낸 고바야시 고토미 양은 “중학교에서 가부키를 공연하는 곳은 일본에서 우리뿐”이라고 했다. 가부키 자랑하느라 들뜬 여중생에게 “매년 인구가 감소하는데 오가노중도 학생이 없어 가부키가 사라지면 어떡하냐”고 물었다.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는지 눈만 껌뻑이던 학생은 한참 후에야 “안 없어질 거예요”라고 답했다. 커다란 눈에 눈물이 가득했다. 오가노중학교는 7년 전 3개 중학교가 통폐합한 학교다. 요시오카 아키라 교장은 “전교생이 298명인데 10년 후엔 3분의 1인 100명 이하로 준다”고 했다.
일본은 30여 년 전 ‘출산율 1.57 쇼크’ 이후 끈질기게 인구 감소와 싸웠다. 합계 출산율은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수다. “북한과 인구는 일본의 2대 국난”이라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말처럼 인구 문제는 좀체 해결 못 한 싸움이었다. 일본엔 소멸 위기의 마을만 3633곳이 있다. 오이타현 나카쓰에 마을처럼 자연 소멸을 택한 곳도 있다. 한때 7500여 명에서 600여 명으로 줄어든 나카쓰에는 이주민을 유치하는 정책을 포기했다. 이주 정착금, 출산 축하금 등 인구에 집착한 지원 대책보다 남아있는 마을 사람들이 편안한 여생을 보내는 데 마을 재정을 쓰겠다는 역발상이다. 아무도 탓할 수 없는 그들의 선택이다.
한국의 인구 감소는 일본보다 더 심각하다. 일본은 2005년 출산율 1.26명의 최저점을 찍고선 1.3~1.4명 선을 지킨 반면, 한국은 작년 출산율 0.81이었다. 한국의 출생아 수는 2015년 43만8400명에서 작년 26만1000여 명으로 급감했다. 대책을 안 세운 건 아니다. 2005년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출범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 초기엔 인구 문제에 관심이 컸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대한민국 근간이 흔들리는 인구 위기 상황이며 지금이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 타임”이라며 “골든 타임을 살려내는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 9월 국무회의에서 “인구 위기에 기회가 다신 없단 각오로 임해 달라”고 했다. 다들 맞는 말을 했지만 단숨에 V자 회복이 불가능한 인구 문제는 5년 임기 대통령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십상이었다. 우리 10대에게서도 가부키 소녀의 눈물을 보게 될까. 윤 대통령의 말의 무게는 다른 정치인과는 다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