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은 새해 첫날 신사를 방문해 소망을 빌고 동전을 함에 넣는 풍습이 있다. 사진은 도쿄 한 신사의 모습. /성형주 기자

1월 1일이면 일본인들은 신사(神社)를 찾아 새해 소망을 빌며 사이센(賽銭·새전, 참배 때 올리는 돈)을 함에 넣는다. 신년 연휴에 신사를 방문하는 일본인은 대략 9000만 명이 넘는데 지난 1일 찾은 도쿄 시부야구 메이지진구(明治神宮)에도 아침 일찍부터 수천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참배객들은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다. 일본인들은 대부분 100엔(약 970원)이나 10엔 동전을 함에 넣고 합장했다.

소망을 비는 데 금액이 크게 중요하진 않지만, 요즘 일본 신사들은 동전 고민에 빠졌다. 8만 곳이 넘는 일본 신사 상당수가 새전이 주요 수입원인데, 사실상 수수료를 떼어가는 존재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4년 전부터 잔돈 입금 때 수수료를 받기 시작한 은행이다. 최근 일본 군마현의 한 신사는 ‘새전은 100엔 동전으로 해달라’는 표지판을 달았다가 참배객의 비난을 받았다. 도쿄신문은 “일부에서 물가 인상의 영향을 받아 신사마저도 새전을 올렸다고 비난하지만 실제로는 신사 탓이 아니라 은행의 정책 변경 탓”이라고 보도했다.

신사들은 참배객에게 새전으로 받은 수천~수만개의 동전을 보통 은행에 입금하고 운영비로 사용했다. 2019년 일본 3대 은행인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이 “동전 300개까지는 괜찮지만, 그 이상은 입금 수수료를 받겠다”고 정책을 바꿨다. 다음 해 미즈호은행과 미쓰비시UFJ은행도 동전 무료 입금 정책을 폐지했다. 은행 창구에서 동전을 수령하는 데 들어가는 인건비 탓에 입금 수수료를 받겠다는 것이다. 3대 은행이 변심한 뒤, 신사의 마지막 보루였던 우체국은행인 유초은행마저 작년 초 동전 입금 시 수수료를 받기로 했다. 예컨대 미즈호은행은 동전 100개까지 무료지만 이후 동전 종류에 상관 없이 101~500개는 수수료 550엔(약 5300원), 501~1000개는 1320엔(약 1만2800원)을 받는다.

1엔 동전은 입금하면 원금보다 수수료를 더 내야 할 때가 많아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말이 나온다. 5엔이나 10엔짜리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100엔 이상만 새전으로 넣어달라’는 요청이 나온 배경이다. 절박한 일본 신사는 5엔 동전을 다시 참배객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5엔’의 일본어 발음은 ‘인연’이란 단어와 같은 ‘고엔’이라, 참배객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1엔짜리는 뾰족한 방법이 없어 그냥 모아두는 신사가 대부분이다. 한때 일본 우익의 정신이라던 일본 신사가 ‘인건비 절감’이라는 은행의 변신 앞에서 쩔쩔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