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오는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드는 프로젝트에 본격 돌입했다. 민간 기업들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모아 땅속 깊은 곳에 묻는 사업에 속속 뛰어들고 있고, 정부는 이런 기업에 보조금을 주고 관련 법령을 제정하기로 했다. 특히 이런 ‘탄소 중립’ 목표를 위해 전국 곳곳에 대형 지하 저장 공간을 조성, 거의 모든 이산화탄소를 자국 내에 매장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6일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모아 지하에 저장하는 ‘CCS(Carbon dioxide Capture and Storage)’ 프로젝트에 3개 기업 연합군이 동시에 뛰어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언급된 기업군은 무역 회사인 이토추상사와 정유기업 이데미쓰고산, 석유화학기업 에네오스(ENEOS) 등이 주축이다. 이토추는 미쓰비시중공업, 다이세이건설 등과 함께 선박으로 이산화탄소를 저장 장소까지 운반하는 사업에 진출할 예정이다. 이데미쓰고산은 홋카이도전력, 석유자원개발(JAPEX)과 함께 CCS 기술 연구와 이산화탄소 재활용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에네오스는 다음 달 전력회사인 J파워, JX석유개발 등과 함께 CCS 공동 조사 회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도 팔을 걷어붙였다. 경제산업성은 올해 중 가칭 ‘CCS사업법’을 마련키로 했다. 민간 기업이 이산화탄소 저장소를 운영하다 누출 사고와 같은 문제가 생겼을 때 무한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지하에 이산화탄소를 묻은 뒤 모니터링하는 기간도 규정할 방침이다. 일본 정부는 또 올해부터 민간 사업 3~5개를 선정해 보조금도 지원할 계획이다. 일본 정부는 건설비와 운영비의 거의 100% 가까운 금액을 보조금으로 주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CCS 프로젝트는 2단계로 진행된다. 1단계로 2030년까지 총 600만~1200만톤을 매장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로 했다. 1200만톤 저장소는 화력발전소 3기가 1년에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를 담을 수 있는 규모다. 최종 단계인 2050년에는 연간 1.2억~2.4억톤의 이산화탄소를 담을 저장소를 완성할 계획이다. 2050년까지 전기차 보급 등 화석 연료 사용량을 최대한 줄이고, 그래도 남는 이산화탄소는 모두 포집해 지하에 묻겠다는 것이다. 굴착 비용만 2.4조엔(약 22조원)이 필요한 대규모 프로젝트다.
국제사회는 지난 2015년 파리협약을 통해 오는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순(純)배출량을 제로로 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과 유럽, 일본 등 25국이 ‘탄소 중립’을 공식 선언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 기준으로 포집·매장해야 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76억톤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중 일본이 책임질 몫은 최대 2.4억톤이다.
탄소를 땅에 묻는 방식은 1970년대부터 석유업계가 폭넓게 활용해 왔다. 유전에서 천연가스 등을 뽑을 때 갈수록 압력이 낮아지는데 그 빈 공간에 이산화탄소를 넣어 압력을 높이는 용도였다. 이 때문에 현재 전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200여 개의 CCS프로젝트는 엑손모빌, 셸, 셰브론 등 글로벌 석유 회사들이 주도하고 있다. 주로 미국과 유럽 등이 앞장서고 있다.
일본이 특히 주목을 받는 것은 유전이 없는데도 국내에서 저장 가능한 지층을 찾아 저장소를 만든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는 이미 지층 조사를 진행해 총 160억톤의 이산화탄소를 저장할 수 있는 지층 11곳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위치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도 CCS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지만 국내에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은 제한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프로젝트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하는 과제도 있다. 이산화탄소 발생·포집 장소와 이를 저장할 곳의 거리가 멀수록 운송 비용이 증가하고, 지하 1㎞ 이상 파야 해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일본은 현재 1톤당 1만3000~2만엔(약 19만원) 정도인 비용을 오는 2050년까지 60% 이하로 낮추는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일본이 필사적인 이유는 CCS를 제대로 구축 못하면 20~30년 후에 해외에서 막대한 돈을 주고 탄소배출권을 사와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유럽연합(EU)의 탄소배출권 가격은 톤당 80~90유로(약 12만원)로, 2019년(톤당 7.83유로)보다 10배 이상 급등했다.
☞CCS(Carbon dioxide Capture and Storage)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땅속에 저장하는 기술이다. CO2가 빠져나갈 틈새가 없는 지하 암석층 빈 공간까지 파이프를 뚫은 뒤 CO2를 주입하는 방식이다. 통상 원유를 채굴한 빈 공간에 CO2를 넣기 때문에 산유국이 아닌 국가는 저장 가능한 암석층을 찾는 게 최대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