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일본 만화 ‘슬램덩크’의 배경이 된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코코마에역 앞 건널목에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최원국 특파원

지난 24일 오후 일본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의 가마쿠라코코마에역(鎌倉高校前駅) 앞 철길 건널목. 기차가 다가온다는 경고음이 울리자 기다렸다는 듯 수십명의 관광객들이 일제히 기찻길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기찻길 진입을 막기 위해 내려온 허리 높이의 차단봉 근처까지 다가가 포즈를 취했다. “기차까지 잘 나와?” “조금 더 뒤로 가봐” 등 한국말도 곳곳에서 들렸다. 카메라를 들고 차도(車道) 한가운데까지 들어간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이른바 ‘슬램덩크 성지순례’를 온 관광객들이었다. 이곳이 만화 슬램덩크 시작 부분에 나오는 철길 건널목 장면의 배경이 된 장소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만화 슬램덩크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최근 아시아권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일본의 작은 도시 가마쿠라가 한국과 중화권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도쿄에서 전철로 약 1시간 30분 거리인 가마쿠라는 조용한 해안가 마을이다. 그동안 일본 팬들이 종종 찾는 곳이었지만 최근엔 해외 관광객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날도 해외에서 온 팬들은 주인공 강백호가 어깨에 가방을 메고 건널목에서 기다리는 장면을 똑같이 연출하려고 차도에 난입했다. “주택가에는 들어오지 마세요”라는 안내판이 있었지만 관광객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진을 찍기 위해 구석구석을 누볐다. 한 지역 주민은 “뒤에서 차량이 오는데 모든 관광객이 촬영을 위해 기찻길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항상 사고가 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닛폰테레비는 “슬램덩크 영화 개봉 후 성지로 불리는 가마쿠라에서 관광객들이 차도에서 사진을 찍느라 구급차 같은 긴급 차량을 세워버리는 아찔한 순간들이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위험천만하게 철길 옆 난간에 붙어 기차를 향해 셔터를 눌러대는 이들도 많았다. ‘기차를 촬영하기 위해 노란 선을 넘지 마십시오’ ‘기관사를 향해 플래시를 터트리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입니다’ 등의 경고문이 한국어와 중국어, 영어로 번역돼 붙어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기차를 기다리면서 주택가에서 흡연하는 관광객들도 보였다.

가마쿠라시와 에노덴 전철 회사는 팬들에게 관광 예절을 지켜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후지뉴스네트워크는 “가마쿠라시는 주민 불편이 계속될 경우 경비원을 늘리는 등 대책 강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