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최근 극비리에 우크라이나 방문하면서 언론의 눈을 피하기 위해 호텔의 자재 반입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몰래 호텔을 나왔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또 우크라이나 비공개 방문을 사실상 반대한 일본 외무성에 대해 강하게 질책하고 화를 냈다는 이야기도 보도됐다.
27일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기시다 총리의 우크라이나 극비 방문 비하인드 스토리라며, 전체 과정을 보도했다. 3월 20일 오후 7시쯤, 인도 뉴델리에서 기시다 총리를 수행한 일부 경호원, 의무관 등에게 ‘지금부터 우크라이나로 간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준비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당시 기시다 총리는 인도를 방문해 정상회담을 마쳤고, 당초 일정대로라면 다음날인 21일에 일본으로 복귀할 예정이었다. 급작스런 통보가 수행원에게 내려진 것이다. 우크라이나행(行)을 기시다 총리와 같이 한 건, 기하라 세이지 관방부장관, 아키바 국가안전보장국장 등 고위급과 경호원·의무관 등이다. 모두 합쳐도 10명 선이었다고 한다.
20일 오후 8시에 집결한 총리 일행은 식자재 등을 실어 나르는 자재 반입용 엘리베이터를 탔다. 당시 인도 정상회담을 취재하기 위해 동행한 자국 언론사의 눈과 귀를 따돌리기 위해서다. 일본 정부는 총리가 빠져나가는 동안, 같은 호텔에서 동행 취재 기자들을 모아놓고 짧은 백브리핑도 가졌다.
호텔을 몰래 빠져나온 총리 일행은 10인승 차량을 타고 뉴델리 공항으로 갔다. 극비였기 때문에 별도 교통 통제를 할 수 없었다. 마침 폭우가 쏟아져, 교통 체증이 생겼고 공항까지는 30분 이상 걸렸다. 오후 8시 56분, 기시다 총리 일행을 태운 전세기가 폴란드를 향해 이륙했다.
같은 날 오후 11시 41분(현지 시각), 폴란드 남동부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시간은 7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총리 일행은 우크라이나 국경에 가까운 프셰미실역으로 차로 이동해 기차로 갈아탔다. 기시다 총리는 이때 자민당 고위 간부 등에게 우크라이나 방문 사실을 알렸다.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에서 총리 일행은 모두 스마트폰을 끄고 전파를 차단하는 ‘쉴드박스’ 장비에 넣었다. 휴대전화 전파를 활용한 추적을 막기 위해서다.
일본 외교가를 잘 아는 관계자는 “3번 정도 우크라이나를 가려다가 실패하고 네 번째에 전격 방문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작년 12월 방문하려다 사전에 정보가 새는 바람에 못 갔고, 기시다 총리가 외무성을 질책했다. 기시다 총리가 “보안을 철저히 할 수 없다면 외무성 따위 필요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지난 2월 말에는 외무성의 고위급에게도 화를 냈다. 외무성 측이 ‘비공개로 방문하기 어렵다’는 보고를 했기 때문이다. 기시다 총리로선 지난 2월 20일 미국 바이든 대통령과 21일 이탈리아 멜로니 총리가 잇따라 우크라이나를 방문하면서 G7 정상 가운데는 유일하게 본인만 현지 방문을 못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