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선주자 디샌티스 만난 기시다 - 24일 일본 도쿄 총리 공관에서 론 디샌티스(가운데) 미국 플로리다 주지사가 기시다 후미오(오른쪽) 일본 총리와 악수하는 아내 케이시 여사 쪽을 바라보고 있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미 공화당의 차기 대선 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23일 열린 일본 보궐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이 5석 가운데 4석을 얻으면서, 집권 3년 차인 기시다 총리가 ‘중의원 해산’ 승부수를 통해 장기 집권 기반을 닦을 가능성이 일본 정치권에서 제기됐다. /로이터 뉴스1

일본 집권 여당인 자민당이 23일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5곳 중 4곳에서 승리하면서 집권 3년 차인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장기 집권 계획에 청신호가 켜졌다. 기시다 내각에 대한 중간 평가 성격이 강했던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이 선전하면서 기시다 총리가 ‘중의원 해산’이라는 승부수를 통해 장기 집권의 기반을 닦을 가능성이 일본 정치권에서 급부상하고 있다.

양원제인 일본에서 중의원은 4년 임기제지만 총리가 각의(국무회의)에서 해산을 의결하면 전원이 의원 지위를 상실하고 선거를 치러야 한다. 국가에 중대한 정책을 결정할 때 국민에게 선거를 통해 의사를 묻는 의미가 있다.

자민당이 ‘4승 1패’ 한 이번 보궐선거 결과에 대해 일본 정치권은 ‘기시다의 승리’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2021년 10월 취임 후 방위비·한일 문제·우크라이나·저출산 등 ‘어려운 숙제를 뒤로 미루지 않는다’는 기시다식(式) 정치에 대한 일본 국민의 지지가 높아지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기시다 내각은 지난해 말 방위비 5년간 2배 증액 계획을 발표했고, 3월엔 도쿄에 윤석열 대통령을 초청해 정상회담을 개최해 한일 간 소통 채널을 열었다. 또 전쟁터인 우크라이나의 키이우를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했다. 러시아의 반발이 있었지만 안보 우선이란 원칙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은 것이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보궐선거 승리에 대해 “여당인 자민당이 중요 정책 과제를 제대로 추진하라는 질책과 격려를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중의원 해산론에 대해선 “지금은 해산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짧은 코멘트로, 일단은 선을 그었다. 총리의 고유 권한인 ‘해산’을 언급하는 순간, 정치권이 해산 선거 국면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신중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기시다 총리의 발언에도 24일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은 ‘자민당의 보궐선거 승리가 기시다 총리의 중의원 해산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보도했다. 기시다 총리에게 중의원 해산은 장기 집권을 위한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자민당 총재의 임기는 3년인데 다음 선거인 내년 9월엔 해산 없이 연임을 장담할 수 없다. 2년 전 총재 선거 때 기시다 총리는 소수 파벌인 모테기파·아소파와 3자 연대해 승리했지만, 당시 최대 파벌인 아베파가 파벌 내 후보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시각도 있다. 내년 총재 선거 때 3자 연대가 무너지거나, 아베파에서 새로운 파벌 수장이 옹립돼 후보로 나올 경우엔 단명으로 끝난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처럼 물러나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시다 총리로선 2021년 10월의 중의원 선거와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연속으로 연립정당인 공명당과 함께 과반 의석을 확보한 데다 중간 평가인 보궐선거까지 승리한 만큼 해산해도 과반수 확보는 수월히 달성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자민당의 한 전(前) 중의원은 “내부에선 보궐선거 이전부터 5승 전승이면 무조건 해산, 4승 1패일 경우엔 해산 가능성이 높고, 3승 2패면 당분간 해산 없다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음 달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 정상 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뒤, 국회 회기가 끝나는 ‘6월 21일’에 중의원 해산을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오는 6월 발표 예정인 저출산 대책이 중의원 해산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지난 3월부터 상승하기 시작한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도 큰 요인이다. 요미우리신문이 이달 중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내각 지지율은 47%로, 전월보다 5%포인트 상승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3월 말 여론조사에서도 지지율은 48%로, 전달보다 5%포인트 상승했다. 지난 2월만 해도 정권 유지의 위험 수위라는 20%대까지 추락했던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이 반전에 성공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 정치권에선 ‘어려운 일을 먼저 한다’는 기시다 총리의 지론이 여론에 먹히기 시작했다고 해석한다.

장기 집권 계획의 걸림돌은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이 아니라, 간사이 지방에서 바람을 일으키는 일본유신회다. 기시다 총리에 대한 테러 시도가 있었던 와카야마 보궐선거에서 일본유신회는 하야시 유미 후보를 당선시켜 자민당에 1패를 안겼다. 자민당은 보수 성향의 일본유신회가 오사카 이외의 지역으로 세를 넓히지 못하도록 막으려 와카야마 보궐선거에 공을 들였다. 기시다 총리는 와카야마시에 지원 유세를 갔다가 연설 직전에 폭발물이 터지는 사고까지 당했지만, 의석을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다.

일본유신회의 바바 노부유키 대표는 이날 “개미도 단결하면 코끼리를 쓰러뜨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일본유신회가 오사카에서 와카야마·나라·효고 등으로 세력을 넓히면, 자칫 중의원을 해산했다가 이 지역의 의석을 잃을 위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