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16일 도쿄전력 등 전력회사 7곳이 신청한 14~42%의 전기요금 인상안을 승인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절전(節電) 캠페인으로 조명 밝기를 낮춘 일본 도쿄 경제산업성 복도. 당시 경제산업성은 에너지 가격 상승과 전력 수급 위기로 건물 전체에 절전을 권고했다./교도 연합뉴스

도쿄 고토구에 사는 30대 사토 하루카씨는 “올여름 ‘전기요금 월 2만엔(약 20만원) 지키기’ 계획에 돌입했다”며 “‘N쿨’ 시트·베개·이불 등을 모두 세트로 구입해 잠잘 때 에어컨을 틀지 않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N쿨’은 피부에 닿으면 시원한 느낌을 주는 소재다. 3인 가족인 사토씨는 “작년처럼 생활했다가는 올여름에 전기료가 2만~3만엔은 나올 것 같아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했다.

일본은 다음 달부터 지역별로 전기료가 최대 42% 오른다. 일본 정부는 16일 물가대책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도쿄전력 등 전력회사 7곳이 신청한 14~42%의 전기료 인상안을 승인했다. 화력발전소에서 사용하는 연료인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상승분을 전기 요금에 반영한 것이다.

일본은 도쿄전력·간사이전력·도호쿠전력 등 10곳의 대형 전력 회사가 지역별로 각 가정에 전기를 공급한다. 전력회사 7곳은 28~48%의 인상을 요구했지만 일본 정부는 인상 폭을 재조정해 14~42%로 확정했다. 도쿄전력이 14%를 올리는 것을 비롯해 홋카이도전력(21% 인상), 도호쿠전력(24%), 후쿠리쿠전력(42%), 오키나와전력(38%), 주코쿠전력(29%), 시코쿠전력(25%) 등이 인상을 결정했다. 한전에 따르면 도쿄의 경우 2021년 초 이후 전기료가 이미 86% 올라, 이번 결정으로 인한 추가 인상이 반영되면 같은 기간 요금이 두 배 수준으로 상승하게 된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석유·천연가스 가격이 배 이상 치솟은 탓에 전기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전력회사 7곳의 입장을 수용했다. 화석 연료 조달 비용이 급증해 도쿄전력은 지난해 4~12월에 6509억엔(약 6조4000억원)이라는, 역대 최대 적자를 냈다. 화력 발전 비율이 77%(2021년 기준)인 도쿄전력은 석유·천연가스 가격 폭등에 속수무책이었다. 반면 원자력 발전소를 각각 5기, 4기를 운영하는 간사이전력과 규슈전력은 이번에 요금 인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이번 인상분을 반영하는 오는 6월부터 일본 대부분의 지역에서 일반 가정 평균 전기료는 9000~1만엔(약 10만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신문은 “요금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일반 가정의 전기료 기준으로 6월부터 2078~5323엔(약 2만780~5만2300원)이 한꺼번에 오른다”고 보도했다.

일본 시민들은 전기료 부담을 줄이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서는 분위기다. 도쿄 스미다구에 사는 나카지마 쓰바키씨는 “지난 1월 3만7000엔이 찍힌 전기료 고지서를 보고 너무 놀라 전기 절약 계획을 세웠다”고 했다. 그는 “예전엔 많이 나와도 1만엔이었는데 3만엔대 요금은 난생처음 보았다”며 “화장실 변기 시트의 온도를 ‘고온’에서 ‘저온’으로 낮추는 등 전기 사용을 줄일 수 있는 대로 줄여보려 한다”고 했다.

재일교포인 김모씨는 “예전에 살던 집은 욕탕에 물을 데우는 기기, 전기레인지 등 전기 제품을 많이 썼는데 최근 이사하면서 (연료비가 덜 드는) 가스레인지를 쓰기로 했다”며 “첨단 전자 기기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이지만 요금 폭등 탓에 가스레인지로 돌아가고,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쓰겠다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고 말했다.

절약 문화가 일반화된 일본은 이미 겨울철 집안 실내 온도가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로 꼽힌다. 한겨울에도 집안에선 두꺼운 옷에 보온 양말을 신고 지내는 경우가 흔하다. 지난 2년간 전기료가 오르면서 겨울철 집안 온도를 더 낮추는 집이 많아졌다. 게이오대학이 지난해 말 일본 2200개 주택을 표본 조사한 결과 44개 지자체 가운데 4곳을 제외한 40곳의 실내온도가 18도 미만이었다. 실내온도가 가장 낮은 가가와현은 평균 13.1도일 정도였다.

지난해 여름 국민에게 절전 요청을 했던 일본 정부는 올해도 비슷한 캠페인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일본 정부는 에어컨은 실내 온도를 28도에 맞추고 냉장고는 온도 설정을 ‘강’에서 ‘중’으로 변경해달라고 당부했다. 하기우다 고이치 당시 경제산업상은 “가정에선 각자 방에서 에어컨을 사용하지 말고 한 방에 모여서 1대만 켜고, TV도 집마다 한 대만 켜고 모여서 봐달라”고 말했다. 당시 경제산업성이나 도쿄도청 등 관공서는 전등을 끄고 업무를 보았다. 전기료 인상이 계속되자 최근 트위터엔 “(전기료 인상으로) 올해 여름엔 지난해보다 열사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어르신이 많이 나올 것” 등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