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 우에다 가즈오(72) 총재가 지난 4월 취임 후 첫 글로벌 공개 행사에 나와 ‘셀프디스(자조)’ 농담을 연발, 폭소가 이어졌다. 우에다 총재는 28일 포르투갈 남부 소도시 신트라에서 열린 유럽중앙은행(ECB) 통화정책 포럼에서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 앤드루 베일리 영국 중앙은행 총재와 함께 패널 토론에 참석했다.
중앙은행 총재들의 토론은 통상 지루하고 묵직한 경우가 많다. 이날도 다른 패널 세 명은 시종일관 경직된 표정으로 진지하게 답했다. 하지만 우에다 총재만은 능숙한 영어로 여러 차례 유머를 날리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우에다 총재는 최근의 엔화 약세 원인을 묻자 “통화 가치는 외부적인 요인에도 영향을 받는다”며 다른 세 명의 총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여기 오신 이 세 분도 (엔저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미국·유럽·영국 등이 인플레이션을 잡으려고 기준 금리를 계속 올리는 바람에 엔화의 상대적 가치가 내려갔다는 뜻이다.
이어 진행자가 “통화정책이 효과를 보이기까지 시차가 얼마나 걸릴까”라고 묻자 우에다 총재는 ‘썩소(썩은 미소)’를 띄우고 답했다. “내가 (기준 금리를 결정하는) 일본은행 심의위원을 맡고 있었던 25년 전 기준 금리가 (매우 낮은) 0.2~0.3%였죠. 지금은 -0.1%입니다. 정책이 효과를 내려면 적어도 25년은 걸린다는 얘깁니다.” 30년 가까이 ‘제로 금리’ 정책을 펴는데도 저성장·저물가를 벗어나지 못하는 일본 경제를 자조하는 듯한 이 발언에 관중은 박장대소했다.
디지털 전환이 유난히 늦은 일본의 실상도 농담 소재로 삼았다. “중앙은행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란 질문에 “다른 중앙은행들은 디지털 화폐 같은 것을 추진한다고 하더라. 우리는 반대로 내년에 새 지폐를 출시해서 신뢰를 끌어올릴까 한다”고 말해 또 한 차례 웃음바다를 만들었다. 일본은행이 실제로 내년 4~9월 사이 새로운 도안의 지폐와 500엔 동전을 내놓을 예정인데, 이 또한 농담 소재로 삼은 것이다.
“요즘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미국·유럽·영국 중앙은행장은 결연한 표정으로 “나에게 주어진 일이다. 할 일을 할 뿐”이라고 ‘뻔한 정답’을 말했다. 하지만 우에다 총재는 “중앙은행장 되면 이렇게 출장과 기자회견이 많을 줄 몰랐다”고 답해, 또 웃음을 유발했다.
우에다의 첫 글로벌 ‘데뷔’에 대해선 전형적인 학자 스타일로 침착하고 차분한 전임 구로다 총재와 완전히 다른 인상을 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요미우리신문은 “우에다 총재가 유창한 영어로 예상치 못했던 농담 섞인 답변을 내놓자, 토론 참석자들은 일제히 손뼉을 치며 폭소했다. (포럼 뒤에도) 기자실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펼쳐졌다”고 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구로다 하루히코 전 총재 역시 영어엔 능통했지만 우에다 총재의 영어는 발음에 일본인 특유의 억양이 없고 어휘도 풍부했다”고 평가했다.
우에다 총재는 1974년 도쿄대 이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3년부터 도쿄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했고, 1998~2005년 일본은행 정책위원회 심의위원으로 일했다. 지난 4월 경제학자 출신으론 최초로 일본은행 총재직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