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이르면 24일부터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일본은 ‘처리수’로 표기)를 태평양으로 방류한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22일 각료 회의를 열고 이 같은 방류 계획을 의결했다. 오염수 방류는 앞으로 30년 이상 지속될 예정이다. 일본 어민들은 여전히 공식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중국 등 이웃 국가들의 반발이 거센 가운데 기시다 내각은 당초 방침인 ‘올해 여름 방류’를 강행한 것이다.
일본의 오염수 방류는 2021년 4월 스가 요시히데 당시 총리가 오염수 처분 방식으로 해양 방류를 공식 결정한 지 2년 4개월만에 이뤄지는 것이다. 오염수 발생의 원인이 됐던 동일본대지진(2011년 3월 11일)으로부터는 약 12년만이다.
22일 아사히신문·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각료 회의에서 “현재 시점에서 준비할 수 있는 안전 확보와 풍평(소문) 피해 대책, 어민 지원책 등을 모두 확인했다”며 “기상 상황이나 해상의 조건에 문제가 없으면 이달 24일 해양 방류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어민들이 갖고 있는) 여러 불안에 대처할 수 있도록, 설령 앞으로 수십 년이 걸리더라도 처리수의 처분이 완료될 때까지 정부로서 책임지고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날 회의에는 마쓰노 관방장관, 니시무라 경제산업상, 하야시 외무상, 와타나베 부흥상 등이 관련 각료들이 참석했다. 기시다는 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과학적 근거에 기초한 대응에 폭넓은 지역·국가로부터 이해와 지지 표명이 이뤄져 국제사회의 정확한 이해가 확실히 확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어민들의 피해 대책에도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현지에선 ‘의외의 속전속결’이란 반응이 나온다. 현지 외교가의 한 관계자는 “일본에서 통상 ‘여름’은 9월 중순까지를 의미하기 때문에 기시다 내각이 어민들이나 주변 국가와 협의할 시간은 충분히 남아있었다”면서 “지지율 하락에 시달리는 기시다 내각이 다소 반발이 있더라도, ‘악재’인 오염수 방류를 더는 끌지 않기로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30년 이상 걸리는 방류 계획을 현지 주민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강행하는 ‘개문발차’”라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예상보다 이른 시점인 24일 해양 방류하는 이유에 대해 ‘후쿠시마현 어민들을 위한 배려’라는 입장이다. 다음달 1일 후쿠시마현 앞바다에서 저인망 어업이 시작되는 점을 고려해, 휴어(休漁) 기간인 이달 중에 방류를 개시한다는 것이다. 24일부터 방류하면 ‘바다에 아무런 악영향이 없다’는 해수 등의 감시 데이터를 어업 개시 전에 확보·공표할 수 있다. 일본의 한 관료는 “후쿠시마현 앞바다에서 고기잡이가 한창일 때 방류하는 건 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시다 내각 입장에선 여당인 자민당의 지지기반인 전국 어민들의 동의를 무시하고 강행하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기시다 총리는 앞서 21일에 도쿄의 총리관저에서 전국어업협동조합연합회 사카모토 마사노부 회장과 면담해 ‘방류에 대한 동의’를 구했다. 사카모토 회장은 “반대 입장은 변함이 없다”면서도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는 이해는 어민들 사이에서도 더욱 깊어졌다”고 말했다. 방류 반대라는 입장은 그대로지만 적어도 어민단체가 조직적으로 자민당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란 이해는 얻었다는 평가다.
아사히신문은 “일본 정부는 어민들이 ‘반대하지만 방류를 이해하고 있다’고 해석했다”고 보도했다. 반대만 하면 결국 폐로도 늦어지고 후쿠시마현의 재건도 늦어진다는 점을 어민들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대신 일본 정부는 ‘어민 지원책’만큼을 철저하게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일본 정부는 2001년과 2022년에 각각 300억엔과 500억엔의 어민 지원기금을 만들었다. 오염수 방류 탓에 소비자들이 수산물 구입을 기피해 어민들의 수입에 피해가 발행할 경우에 800억엔(약 7300억원)의 기금으로 돕겠다는 것이다. 해외 수출이 감소하는 경우도 합리적인 범위내에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중국과 한국 등 주변 국가에서는 이미 일본산 수산물 수입량이 감소하고, 현지 판매 가격도 급락하고 있다.
니시무리 야스토리 경제산업상은 “설령 수십년에 걸리더라도 (어민의 피해 대책은) 책임지고 지속할 것”이라며 “(해외 수산물 수출 감소도) 적절한 타이밍에 지원을 발동하기 위해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후쿠시마 오염수의 방류는 기시다 총리가 주무부처인 경제산업상에 맡기지 않고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주변에 ‘내가 직접 나서, 진심을 보여야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 19일 귀국한 기시다 총리는 20일에 후쿠시마 원전 현장을 시찰한뒤 21일 어민단체 대표와 면담했고 22일에는 각료 의결을 이끌었다. 일본의 한 전직 국회의원은 “기시다 총리는 눈앞의 숙제를 먼저 한다는 리더십이며, 실제로 방위비 증액이나 저출산 대책 등 정권의 과제를 차례로 결론내고 있다”고 말했다.
초점은 해양 방류 이후의 기시다 내각 지지율이다. 기시다 총리는 5·6월만 해도 50%대의 높은 지지율이었지만, 일본판 주민등록증인 마이넘버카드 오류 문제가 부각되면서 지지율이 급락했다. 현재는 20%대로 정권 유지에 위험한 수준까지 내려온 상황이다. 일본 NHK방송이 최근 조사한 여론조사에서는 처리수 해양 방류와 관련, ‘적절하다’가 53%, ‘적절하지 않다’가 30%였다.
일본 정부의 결정에 따라 후쿠시마 원전 운영회사인 도쿄전력은 이날 “해양방류 준비작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도쿄전력은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거쳐 탱크에 보관돼있는 오염수를 바닷물과 희석해 해저터널을 통해 방류할 계획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는 현재 133만t 이상의 오염수가 1000여 개의 대형 탱크에 나뉘어 보관되어 있다. 도쿄전력은 30~40년에 걸쳐 하루 최대 500t가량의 오염수를 처리 후 방출한다는 계획이다.
ALPS 설비는 오염수를 다양한 필터에 통과시켜 세슘을 비롯한 62종의 방사성 물질을 걸러낸다. 다만 방사성 물질의 하나인 삼중수소는 ALPS로는 물에서 분리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도쿄전력은 배출 기준에 맞춰 대량의 바닷물로 희석하는 방법을 택했다. 희석 작업 후 삼중수소를 포함한 방사성 물질의 농도를 최종적으로 확인해 기준치를 넘어설 경우 추가로 희석이 이뤄진다. 기시다 총리는 “향후 수십년의 장기에 걸쳐 오염수 처분이 완료될 때까지 정부로서 책임감을 갖고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IAEA는 지난달 발표한 최종보고서에서 ALPS로 처리한 오염수에 100배에 달하는 해수를 섞어 희석 후 방출하면 삼중수소의 농도가 1L당 1500Bq(베크렐) 이하로 떨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삼중수소의 음용 기준은 1L당 1만Bq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