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학생 이주천의 관동대지진 목격담을 실은 조선일보 1923년9월8일자 신문. 이주천은 시나가와에서 조선인 300명이 살해됐다는 호외를 봤다고 증언했다./조선DB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일어난 조선인 학살과 관련해 일본 정부가 20년 전 자국 법조계로부터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하라는 권고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교도통신이 26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 관계자는 일본 변호사연합회가 2003년 8월 25일 정부에 제출한 관동대지진 권고서와 관련해 “20년 전 일이라 어떻게 처리됐는지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고 답했다. 당시 권고서가 발송된 이후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았던 일본 정부가 이제는 오래전 일이라 모르겠다는 취지로 답했다는 것이다.

앞서 1999년 일본 변호사연합회는 조선인 학살을 목격한 고(故) 문무선 씨가 인권 구제를 요청하자 조사에 나섰다. 연합회는 조선인 학살과 관련해 정당방위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당시 상황과 증언들을 고려했을 때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를 바탕으로 2003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에게 “국가는 책임을 지고 피해자와 유족에게 사죄하고, 학살의 전모와 진상을 조사해서 원인을 분명히 해야한다”는 내용의 권고서를 보냈다.

당시 권고를 주도했던 변호사연합회의 회원 아즈사와 가즈유키 변호사는 교도통신에 “옛 식민지 출신 사람에 대한 차별을 심각하게 반성하지 않으면 다시 중대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 유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100주년을 맞은 학살 사태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점과 관련해 “국가는 확정 판결의 보존과 공개에 힘써야 한다”며 “조사에 힘을 쏟는다면 자료가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 사건은 1923년 9월 벌어진 일이다. 관동대지진으로 인한 대규모 화재와 인명 피해로 불안이 확산하는 와중에 당시 일본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다거나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유언비어가 퍼지기 시작했다. 이후 민간인들이 조직한 자경단(自警團)이 조선인들을 죽창과 몽둥이 등으로 무차별 학살해 수많은 조선인이 사망했다. 지금까지도 사건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진상 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한편, 아사히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가 다음 달 1일 열릴 조선일 학살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한데 대해 “행정 수장으로서 책임을 자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설은 “교훈을 가슴에 새겨야 할 시점에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왜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가”라며 “학살 여부를 분명히 말하지 않는 자세는 사실을 부정하는 주장을 용인하고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했다.

고이케 지사는 취임 첫해인 2016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문을 전달했으나, 2017년부터 보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