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언론 매체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의 이야기를 주로 정치나 경제, 굵직한 사회 이슈에 한해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에서 교환 유학을 하고, 일본 음식을 좋아하고,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기자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 일본에서 진짜 ‘핫’한 이야기를 전달해드립니다.
‘방구석 도쿄통신’, 지금 시작합니다.
‘꿈과 마법의 나라’ 디즈니랜드에 가보셨나요? 일본 지바현 우라야스시(浦安市)에는 미국 이외 지역에서 최초로 건설된 디즈니 테마파크 ‘도쿄 디즈니랜드’가 있습니다. 다양한 놀이기구와 디즈니 작품들에서만 나오던 볼거리를 자랑하며 내국인뿐 아닌 일본을 찾는 외국인 여행객들에게도 인기 관광지로 꼽히죠.
그런 도쿄 디즈니랜드가 올해 설립 40주년을 맞았습니다. 1983년 4월 15일 세워진 이후 40년 동안 도쿄 디즈니랜드를 방문한 사람은 무려 8억명이라고 합니다. 코로나 이전(2018년)에는 연 3256만명이 이곳을 찾았는데요. 365일로 나누면 하루 9만명이 방문한 셈입니다.
그런데 최근 이 도쿄 디즈니랜드를 둘러싼 일본 국민들의 여론이 심상치 않습니다. 성인 일일권 티켓 가격을 오는 10월부터 1만900엔(약 10만원)으로 인상하기로 했기 때문이죠. 당초 가격은 9400엔이었는데, 1만엔을 넘어서는 건 사상 처음입니다. 처음 개장한 1983년 가격(3900엔)과 비교하면 세 배 가까이 뛰게 됐습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테마파크로 디즈니랜드와 쌍벽을 이루는 오사카 유니버설스튜디오도 이달(8월)부터 성인 티켓값을 1만400엔으로 올린 상태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종식’된 올해, 단골 관광지인 테마파크들이 연달아 입장료를 인상하고 나서자 평소 물가 상승에 민감한 일본인들 사이에선 ‘과도하다’는 비판이 쏟아집니다. “디즈니랜드가 정말 갈 수 없는 ‘꿈의 나라’가 되어버렸다”는 반응까지 나오죠.
“너무 비싸졌지만 어쩔 수 없지 않으냐”며 반쯤 포기하는 반응도 있지만, 더는 디즈니랜드를 방문하기 어려워졌다는 뉘앙스이지 호의적인 의견은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역으로, 디즈니랜드 티켓값 인상을 받아들이는 일본인들의 반응이 글로벌 인플레이션 추세를 이해하지 못하고 일본을 더더욱 저성장 국면에 처하게 만든다는 ‘자조 섞인 비판’이 일각에서 제기됐습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일본인들은 일상과 가까운 상품이나 서비스일수록 가격 인상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현지 대표적인 회전초밥 체인점 쿠라스시(くら寿司)의 다나카 구니히코(田中邦彦) 사장은 지난해 그릇 당 가격을 창업 이래 처음으로 5~55엔씩 인상하며 “재료 값 상승이 급속 진행되면서 끝이 안 보인다. 기업 측의 노력엔 한계가 있다”고 직접 사과했습니다.
프랜차이즈는 물론,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동네 식당에서도 라멘 한 그릇 값을 100엔씩만 올려도 길게는 한 달, 짧게는 2주 전부터 가게 입구에 손님들이 납득할 만한 근거가 담긴 장문의 사과문을 게시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작성 양식까지 자영업자 사이들에선 공유되죠. 이러한 사과문과 별개로, 가격이 오른 가게엔 손님들의 발길이 당분간 끊기는 것이 일본에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도쿄 디즈니랜드를 운영하는 일본 오리엔탈랜드도 이러한 소비자들의 반응을 당연하게도 예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6월 발표에서 초등학생 이하 아동들의 입장료는 동결한데다, 일부 놀이기구에 한해 대기 없이 입장할 수 있었던 ‘패스트패스’ 서비스를 종료한 것이 이용객들에게 티켓값 인상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만든 전초 단계였다고 현지 언론들은 평가하고 있죠.
그런데 애초에 일본 디즈니랜드 티켓값은 미국, 중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히 저렴한 수준이었습니다. 엔화 기준, 미 플로리다 입장료는 1만5500엔~2만7000엔 수준인데다 일본 다음으로 싼 축인 홍콩도 가장 저렴한 티켓이 1만1000엔입니다.
이에 현지 언론들은 “디즈니랜드 티켓 값이 1만엔을 넘어선다는 게 너무 비싸단 반응이야말로 일본을 저성장하게 만든 고질적 원인”이란 지적을 제기합니다. 일본 매체 IT미디어비즈니스는 “소비자들이 가격 인상을 비판하는 마음은 알겠으나 이런 발상 탓에 일본이 가난해진다”며 “인기 있는 상품과 서비스, 시설이라면 값이 오르는 게 ‘세계의 상식’이다. 일본만 무리한 염가를 요구하고 있다”고 짚었죠.
다만 이처럼 물가 상승에 대한 예민한 반응을 국민들의 개개인 정서 탓으로 돌리기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그 근저엔 수십년 째 동결 수준인 임금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인데요.
실제로, 일본 경제매체 겐토샤에 따르면 지난 2021년 현지 근로자들의 평균 연봉은 443만엔으로 전년보다 2.4%(약 10만2000엔) 오르는 데 그쳤습니다. 소비자물가지수가 올 들어 매달 3~4% 안팎으로 상승하는 것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죠. 게다가 이는 어디까지나 평균치로, 급여소득자 5270만여 명 중 최다인 17.4%는 연간 300만~400만엔의 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물가 상승에 걸맞은 임금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재 일본인들이 처한 상황입니다. 상품에 대한 가격 인상은 국민들의 거부감을 부르니, 경영진은 원자재 값 상승 등 글로벌 인플레이션이란 위기를 소비자가 아닌 직원들에게 전가하죠.
즉 회사는 근로자에게 동결 수준 급여를 제공하고, 직원들은 회사 밖에서 소비자 입장에 서면 공급자들에게 똑같은 수준의 값과 서비스를 요구하는 악순환이 펼쳐집니다. ‘블랙 기업(ブラック企業)’이라는, 급여와 비교해 과한 노동을 요구하는 직장을 꼬집는 용어가 일본에서 처음 유래한 것도 이러한 현상이 반영된 사례입니다.
IT미디어비즈니스는 도쿄 디즈니랜드의 방문자 수가 일본을 찾는 관광객 증감과 무관하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고, 특히 재방문객이 절반 이상이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꾸준한 설비 투자로 예전보다 나은 시설로 성장시키는 것이 경영적으로는 지극하게 당연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하지만 일본인들은 가격 인상을 불쾌하게만 받아들인다”며, “이 같은 발상이 얼마나 비정상적인가를 세계 제일의 방문객 수를 자랑하는 디즈니랜드의 사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8월 30일 두 번째 ‘방구석 도쿄통신’은 도쿄 디즈니랜드의 티켓 값 인상과 일본 ‘장기 저성장’ 사이의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상관관계에 대해 다뤄보았습니다. 다음 주에도 일본에서 핫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방구석 도쿄통신’을 놓치셨던 분들을 위해 아래 링크도 남깁니다.
“日여행 앞뒀다면 필독! 당분간 이 ‘교통카드’ 발급 안됩니다”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3/08/23/3U4W2IQGMZGINAG2EJQDHMD5QI/
‘방구석 도쿄통신’은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관심 있는 분이라면 하단의 ‘구독’ 링크를 눌러주세요. 이메일 주소로 ‘총알 배송’됩니다.
이번 한주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다음 주 수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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