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90년대 인기를 끌었던 패션과 카메라, 휴대전화 등이 최근 일본 젊은 층 사이에서 재유행해 ‘헤이세이 레트로’란 신조어까지 생겼다고 요미우리신문이 지난 2일 보도했다.
헤이세이 레트로는, 제125대 일왕이었던 아키히토의 재위 기간(1989년 1월~2019년 4월)을 일컫는 연호 ‘헤이세이(平成)’와 ‘복고풍’을 뜻하는 영단어 ‘레트로(retro)’를 합성한 말이다. 1990~2000년대에 태어나 레이와(令和) 시대(2019년 5월~현재)를 살고 있는 젊은 세대가 2000년 전후에 유행한 문화를 찾는 현상을 뜻한다. 당시 유행했던 필름 카메라, 가상 반려동물 육성 게임기 ‘다마고치’, 헐렁한 양말을 비롯한 ‘Y2K(2000년)’ 패션, 심지어는 구릿빛에 가까운 화장과 화려한 스타일로 주목받은 ‘갸루(소녀를 뜻하는 ‘걸’의 일본식 발음)’ 스타일링까지 다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일본인들이 많이 쓰는 소셜미디어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 헤이세이 레트로’를 검색하면 관련 게시글이 5만건에 이른다. 과거 유행한 ‘프리쿠라(스티커 사진)’를 친구들과 찍어 수첩에 스크랩해 올리거나, 최신 아이폰을 부모 세대가 사용하던 ‘피처폰’처럼 꾸민 모습 등 헤이세이 레트로를 즐기는 방법도 가지각색이다. 폴더, 슬라이더 방식의 피처폰은 ‘가라케(갈라파고스와 휴대전화의 합성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인기다. 1997년에 제조된 ‘헬로키티’ 장식 폴더폰은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3만엔(약 27만원) 선에 팔리고 있다.
일본 현지 기업들도 헤이세이 레트로의 유행을 공략하고 나섰다. 세계적인 햄버거 프랜차이즈 맥도널드의 일본 지사는 지난 5월 ‘헤이세이 버거의 대부활’을 발표하면서 1990~2000년대 출시된 ‘다마고(계란) 더블’, ‘로스팅 참깨 새우 필레오’, ‘쥬시 치킨 블랙페퍼’ 등 3개 메뉴를 재출시했다. 맥도널드 관계자는 “레이와 5년을 맞이한 지금, 헤이세이 시대를 떠올리는 분위기에 따라 그 시대만의 에너지를 전달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헤이세이 시대에 유행했던 필름 카메라가 최근 재유행하자 일본 시장에서 철수했던 카메라 업체 야시카는 올 들어 필름 카메라 판매를 재개했다. 리코이미징도 퇴직한 과거 기술자들을 찾아 모으면서까지 필름 카메라 사업을 다시 하려고 나섰다.
1986년 발매돼 ‘국민 카메라’로 불린 후지필름의 일회용 카메라 ‘우츠룬데스’는 지난 7월 판매 대수가 전년 동월보다 50% 늘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멀리 있는 사물을 확대해 찍는 기능도 없고 초점 맞추는 것도 불가능해 스마트폰 카메라보다 성능이 훨씬 떨어지지만, 특유의 색감·화질이 젊은 층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역주행’ 인기를 끌고 있다. 2000년대 디지털 카메라 보급과 함께 사실상 단종됐었는데, 최근 재유행해 카메라 판매점뿐 아니라 편의점에서도 팔고 있다. 폭발적인 인기에 일부 점포에선 ‘1인당 1대’로 구매 수량을 제한하고 있다. 폴라로이드 카메라 ‘체키’의 판매량도 최근 3배 이상 늘어나자, 후지필름은 20억엔을 투입해 체키용 필름 생산을 늘리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헤이세이 레트로에 대해 “‘디지털 네이티브’인 10~20대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디지털 사회에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아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요미우리는 이른바 ‘헤이세이 문화 연구가’를 인용해 최근 일상에서 쓰이는 제품 대부분은 디자인이나 사용법이 획일화돼 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헤이세이 시절 젊은이들은 제품을 손에 넣으면 자기 나름의 사용법과 장식으로 개성을 표현했다”며 “레이와 시대 청년들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에너지가 ‘헤이세이 레트로’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