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일본 교토지법에서 ‘교토 애니메이션(교애니) 화재 사건’의 방화범 아오바 신지(靑葉眞司·45)에 대한 첫 공판이 열렸다. 아오바는 2019년 7월 18일 오전 10시 31분, 교토시 후시미구 교애니 제1스튜디오에 불을 질러 직원 36명이 숨졌고, 33명이 중경상을 입힌 인물이다. 최근 30년간 벌어진 살인 중에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사건이었다.
아오바는 당시 방화로 자신도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4년여가 지나서야 공판이 열린 것도 치료 탓에 계속 연기됐기 때문이었다. 사건 당시 오사카 긴키대학 병원에서 일하던 화상 전문 의사 우에다 다카히로(上田敬博·52)씨는 병원으로 이송된 아오바를 처음 본 순간을 회고하면서 지난 5일 NHK·후지뉴스네트워크(FNN) 등 현지 언론에 이렇게 말했다. “전신 93%에 육박하는 화상, 예측 사망률 97.45%… 도저히 살아날 수 없을 걸로 보였다.” 그런데 동시에 우에다에게 이러한 생각이 스쳤다.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죽음으로 도망치게 내버려둬선 안 된다.’
우에다는 아오바의 목숨을 살리려 수술을 시작했다. 화상으로 괴사한 조직을 네 차례에 걸쳐 제거하고 콜라겐과 ‘자가 배양 표피’ 이식을 진행했다. 수술에 꼬박 하루가 걸렸다. 자가 배양 표피는 수술이 끝나고도 3~4주가량 관리에 전념해야 해 그동안 아오바의 혈압 유지와 감염 차단에 온종일 매달려야 했다. 쪽잠을 자고 일어날 때면 심한 현기증과 피로가 우에다의 온몸을 감쌌다고 한다. 우에다는 약 4개월에 걸친 치료로 아오바의 목숨을 살렸다. 수술 2개월 후 대화를 나눌 정도로 호전된 아오바는 당시 의료진에게 “나처럼 아무 가치 없는 사람을 왜 열심히 치료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후 아오바는 교토 소재 병원으로 옮겨져 사건 10개월 만인 2020년 5월에야 살인 방화 등 혐의로 경찰에 정식 체포됐다. 교토로 떠나기 전 우에다와 마주한 아오바는 “내가 죽는다고 아무도 슬퍼하지 않으니 어떻게 되든 상관없단 생각이었다”고 했다. 이에 우에다가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느냐”고 묻자,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하려고 한다. 죄송했다”고 답했다고 한다.
우에다가 지난 1월 오사카 구치소에 구금된 아오바를 면회하러 갔을 때엔 아오바가 옷 단추를 채우는 모습을 보이며 “이것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우에다는 “심술궂지만 (아오바에게) 조금은 후회를 시키고 싶었다”고 했다. 자신의 치료로 살아난 그가 ‘인생엔 나의 적들만 있는 게 아니구나’ ‘많은 사람이 희생하지 않아도 되었구나’ 깨달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제 치료로 생명의 무게를 깨닫고, 그처럼 소중한 생명들을 자신이 앗아갔음을 비로소 느꼈을 거라 생각해요.”
아오바는 지난 5일 공판에서 “내가 저지른 일임이 틀림없다”고 혐의를 인정했다. 검찰은 라이트노벨(재미를 추구하는 가벼운 소설)을 쓰던 그가 교애니 소설 공모전에 지원했다가 탈락한 것을 계기로 악감정을 품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일본 재판부는 최고재판소가 1983년 내놓은 살인 형량 관련 판례(4명 이상 죽이면 사형)를 대부분 지키고 있다. 다만 아오바 측 변호인은 피고가 아홉 살 때 부모가 이혼하고 아버지에게 학대당한 성장 배경 등을 감안해 “심신 상실로 무죄나 형 감경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존 판례대로 아오바에게 사형이 선고되면 집행을 피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현지 언론들은 화상으로 죽을 위기에 처했던 아오바가 ‘법의 틀’ 안에서 처벌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우에다의 치료 덕분이라고 전하고 있다. 아오바에 대한 판결은 내년 1월 25일에 나온다. 교애니 방화로 부상한 33명 중 상당수는 아직도 고통 가운데 치료를 받고 있다.